이제 진짜 월급이 안 들어오는 거야?
백수 1일 차, 서른 춘기의 시작
백수 1일 차, 나는 이제 돈을 벌기 위한 행위를 하지 않는다. 이제 정말 월급이 들어오지 않는단 소리다. 이제 나의 가치는 어떤 숫자로 증명된단 말인가?
백수가 되니 아무래도 돈이 신경 쓰인다. 남편이 햄버거를 시켜 먹자고 해도, 아니야 내가 볶음밥 해줄게 라며 집 밥을 자처하게 되고 11만 원짜리 화장품이 눈에 들어왔지만 고개를 흔들었다. 예전 같으면 ‘아낄까 말까.. 에잇!‘ 하면서 약간의 죄책감과 함께 신용카드로 긁었던 것들을 멈추게 됐다. 지난 10여 년간 꼬박꼬박 받던 월급이란 존재가 사라졌다는 게 지금 당장은 믿기지가 않는다.
결혼 후 남편과 가계부를 써가며 모으던 돈의 숫자도 확 줄텐데, 남편에게 돈 모으는 재미를 빼앗는 것 같아서 여전히 미안하다. 남편이 회사를 다녀준다는 게 고마움과 동시에, 아 남편돈 쓰는 게 눈치 보인다는 게 이런 건가? 이런 기분을 처음 느껴봤다. 남편 앞에서의 약간의 떳떳함도 사라졌다. 의도한 건 아니지만 운전자 보험을 갈아타면서 이전 보험회사에서 준 40만 원의 환급금에 정말, 진심으로 기뻤다. 감사합니다. 삼성.
이제 나는 뭘 하고 뭘로 먹고살아야 할까? 잠깐 쉬다가 비슷한 일을 찾아 다시 시작해도 되지만, 이상하게 아예 다른 길을 가볼까 라는 생각도 들고, 삼십 대 중반에 다시 사춘기를 겪는 기분이다.
나는 고등학생 이후로 한 번도 진로를 고민해 본 적이 없다. 늘 하고 싶었던 게 뚜렷했으며 ‘이것’만 보고 달려온 덕에 벌써 10년 차라는 경력도 쌓였다. 하지만, 지금은 모든 게 다 허상 같다. 그만두던 날을 떠올려보면 나는 이 일을 좋아하는 게 맞는데, 그런데 다시 하고 싶지 않기도 하고 조금 이상하다. 내가 하는 일과, 내가 좋아하는 일 사이의 교집합을 찾아봐야겠단 생각이 든다. ‘네가 진짜로 원하는 게 뭐야’라는 노래 가삿말처럼 정말 내가 원하는 건 뭘까? 앞으론 그런 걸 고민해봐야 할 것 같다.
<내가 좋아하는 것>
0. 적게 일하게 많이 버는 것
1. 쉽게 일하고 일한 것보다 조금 더 받는 보상
2. 누군가 내 이야기와 글에 반응해 주는데서 오는 뿌듯함
3. 새로운 지식을 얻게 되는 것
4. 몰랐던 세상을 알게 되는 것
0번을 구축하기 위해선, 로또에 당첨되거나 로또에 당첨되어야 하겠지만. 노동력을 덜 들이고 수입을 얻는 그런 파이프라인을 구축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생존 본능이었는지 정말 다행히도 나에겐 한 달 100만 원의 추가 소득을 안겨주는 파이프라인이 있다. 이 파이프라인을 구축하기 위해 들인 돈과 시간도 만만치 않지만, 내가 퇴사를 할 때 한 줄기 빛이 되어준 건 분명하다. 이 파이프라인을 복사-붙여 넣기 해 불릴 수 있으면 좋겠지만 아무래도 현실이 녹록지 않다. 하지만 7월 말쯤, 꼭 다시 한번 시도해 봐야지
1번 역시 누구나 꿈꾸는 것이지만, 바라는 대로 살게 된다고, 우주의 기운에게 나의 바람을 보내는 정도로 갈무리해야겠다
그리고 2번, 3번의 일환으로 브런치/유튜브/블로그를 정리해 봐야겠다. 누군가가 봐주고 공감해 준다는데도 의미가 있지만, 내 인생을 한번 정리하고 대나무 마디처럼 한 번 매듭짓고 가는데도 의미가 있을 것 같다
그리고 4번을 위해선 책도 많이 읽어야 하겠고, 여행을 계획하고 있고, 그리고 한 가지는 ‘알바’라는 생각이 든다. 우연히 보게 된 유튜브에서 이런 말이 나왔다 ‘강요받은 변화’ 이상한 단어의 조화지만 나 역시 ‘강요받은 변화’에 놓였고 한 발을 어떻게 내딛느냐가 많은 걸 바꿔줄 것 같다. 지금은 여행 계획 때문에 잠시 멈추었지만 만약 단기 알바가 있다면, 카페 단기아르바이트라도, 청소 아르바이트라도, 펫시터라도 해봐야겠다. 사실 지난 주말 펫시터 아르바이트와, 피아노를 배우고 후기를 써주는 아르바이트에 지원했지만 연락이 오지 않았다. 내 세계를 벗어나니 나는 신생아-초짜와 다름없었다. 조금 막막하고 설레기도 하는 백수 1일 차.
백수 1일 차의 다짐
1. 매일 브런치를 한 편씩 써야겠다. 일 할 때도 이 정도 마감은 했는데, 내 얘기를 쓰는 거고 누구도 가자미 눈으로 보지 않고, 그냥 내일을 쓰는 건데 어려울게 뭐람. 떠 오르는 단상들을 받아 쓰자
2. 남편이 출근할 때 헬스장 가기. 남편을 지하철 역에 데려다주고 나는 헬스장에서 달렸다. 천천히 달리다가 빨리 달라가 깨닫는 생각과 글감들이 많았다. 처음엔 천천히 걷다 보니, 2킬로미터만 걸어볼까? 목표가 생겼고. 1.987km까지 오니 달리게 되었다. 목표가 생기면 달려도 좋지만, 목표를 설정하기 전까진 조금 천천히 걸어야 목표도 생기고 지치지 않는다는 걸 러닝머신 위에서 깨달았다.
이번 글은 온갖 내용이 혼재되어 조금 마음에 들지 않지만, 그냥 <발행>을 눌러야겠다. 더 이상 망설이며 살고 싶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