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2025년, 9월의 불꽃놀이

by 코끼리

복잡하거나 사람이 많은 건 좋아하지 않는다.

최대한 단순하게 살아가기 위해 필요하지 않은 것들을 덜어내고자 한다. 그러나 인생이 어디 뜻한 대로, 원하는 대로 흘러가기만 하는가? 세상에 좋아 보이는 것들이 넘쳐나고 볼 때마다 그게 마치 내가 진짜 원하는 것인듯한 착각이 수시로 든다.


여러모로 9월까지 올해는 조금 바빴다.


회사생활에서 상사와의 관계가 좋지 못했고 승진에서도 밀려났다. 여러 가지 이해가 가지 않는 상황이 있었고, 마음이 아팠다. 나는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일들을 어떻게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나름대로 발판으로 삼고 발전할 수 있는지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 당시 무작정 퇴사는 도망이라고 생각했다. 그 이유로는 첫째, 운이 좋게도 직장 동료들과 고민을 털어놓고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둘째, 수년간의 감사노트와 명상으로 훈련(?)해 관계의 힘듦은 정신적으로나 체력적으로 버틸 수 있는 수준이었다. 셋째, 조직 자체는 마음에 들었다. 사명감과 적당한 수준의 복리후생 그리고 워라밸이 확실했다. 고작 한 사람, 그것도 회사에서 평판이 좋지 못한 사람과의 트러블로 내 인생의 중대한 '퇴사'라는 결정을 하기에는 너무 이유가 하찮게 느껴졌다.


그렇게 나는 객관적인 이유를 생각해 보며 나를 갉아먹지 않는 수준에서 밥벌이를 하면서 버틸 수 있었다. 세상에 힘들지 않은 사람은 없다. 각자 다 다름대로의 고민을 가지고 살아간다. 당면한 고민과 문제를 슬기롭고 현명하게 흘려보내는 것만이 내 몫이었다. 나는 한 발 물러나기를 선택했다.

우선 머물기로 결정하고부터는 잘 지내고 싶었다. 욕심일 수도 있겠지만 일도 관계도 잘 해내고 싶었다. 그저 생각 없이 버티기만 하기에는 내 인생이 시간이 아깝지 않은가? 버티기 기술 하나라도 얻어가야지.

나는 진심으로 상대를 이해해 보려고 노력했다. 왜 그럴까 하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생각해 보면 나는 인간으로서 이해하기보다는 그저 '10년 차 조직의 리더'라는 직급에 맞췄던 거 같다. 그저 그에 맞는 리더십과 업무 지시, 방향성을 원하기만 했고, 먼저 다가가고 관찰하며 이해해 보려는 노력이 부족했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일보다는 분위기나 말투 등 다른 요인들에 쉽게 기분이 오르락내리락하는 사람이었고, 그 수많은 부수적인 요인을 잘 파악해야 했다. 나는 그런 면에서 정말 둔했다. 목적 지향적이라 하고자 하는 일이나 관심사 외에 일에는 주의를 잘 기울이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내가 부족한 점에 대해 다른 주변 사람들에게 진심 어린 피드백과 도움을 청하기도 했다. 나름대로 각자만에 이 분을 상대하기 위한 팁이 있었고, 서로 공유하는 계기가 되었다.


솔직히 정말 쉽지 않았지만, 존경까지는 못해도 감정을 덜어내고 상대를 존중하고 이해해 보려고 노력했다. 역시나 그러한 노력의 결과였을까? 상황은 늘 나쁘게만 흘러가지 않았고, 흐름은 순간순간 좋은 쪽으로 방향을 틀기도 했다. 그렇게 이곳에서 2025년 9월이 된 것이다.


나는 중간중간에 틈틈이 영어 시험을 다시 보고, 경쟁력을 확인해 보기 위해 다른 회사에 면접을 보러 가기도 했었다. 계중에는 최종 합격한 회사들도 있었다. 그렇게 조금씩 나름대로 관계로 인해 직장에서 인정받지 못함에 대한 자존감을 회복하며, 이곳에서의 퇴사가 '도망'이 되지 않게끔 좋은 기억을 가지고 마무리하기 위해 노력했다.


나만의 뜨거웠던 여름이 가고 날씨가 많이 선선해졌다.

푸르른 하늘과 낙엽의 희미한 향이 섞여 불어오는 선선한 바람이 기분을 상쾌하게 해 준다. 조금은 편안한 마음으로 주말을 맞이하면서 여전히 일상에서 나의 부족함을 채우고자 꾸준히 움직인다.


그런데 어제 오후 7시 30분 갑자기 "지금 여의도 불꽃놀이 하고 있겠네?.."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급하게 네이버 지도를 켰다. 우리 집에서부터 불꽃놀이의 숨은 명당이라는 노량진까지 25분이 걸렸다. 고민 없이 자리를 박차고 나섰다. 매년 사람 많이 몰리는 행사는 절대 근처에도 가지 않았는데, 그날은 왠지 모르게 그냥 직접 보고 싶었다. 부랴부랴 8시 조금 넘어서 도착했다. 그렇게 나는 올해 마지막 한국팀의 불꽃놀이를 현장에서 보게 되었다.


엄청난 소리와 어두운 밤하늘을 수놓는 화려한 불빛 그리고 인파 속에서도 무심한 듯 지나가는 사람들과 여전히 제시간에 출발하고 멈추는 버스와 지하철이 한 공간에서 펼쳐졌다. 무척이나 아름다웠다. 나는 그날 혼자였지만 이상하게도 그 자리에 함께 했던 불꽃과 화려함과 감탄을 내뱉는 사람들이 위로해 주는 것처럼 느껴졌다. 지금까지 고생했다고 앞으로 축하받을 일이 생길 테니 걱정하지 말라고, 잘했다고 잘해왔다고 그렇게 말하는 것만 같았다. 나도 잘 몰랐는데 힘들긴 했었나 보다.


2025년 9월의 불꽃놀이는 나에게 위로였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서른 _ 여행 메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