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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한 살, 운동 방랑자

by 코끼리

내 인생 31년 운동의 역사는 너무나 하찮다.

어릴 때부터 시작했던 수영은 강제 다이빙에 물을 잔뜩 먹고 제일 두려운 스포츠가 되었고 엄마 따라 유튜브로 요가 동작을 하다가 삐끗하는 바람에 흥미를 잃었다. 고등학교 졸업하고 뚱뚱해진 몸을 되돌리고자 무작정 시작했던 헬스는 며칠 하지도 못하고 돈만 날렸다.


내 삶에 운동이 있을까 생각했던 지난날들을 뒤로하고 시간이 흘러 직장인이 되었다. 살찌는 체질이 아니라 평소 운동을 해야 할 필요성을 전혀 느끼지 못했던 나의 몸은 알게 모르게 체력이 기하급수적으로 떨어져 있었다. 어느 순간 체력적으로 운동이 필요함을 느끼는 날이 찾아왔고 나는 살아가기 위해 다시 운동을 시작하게 되었다.


그렇게 대학을 졸업하고 난 뒤에 처음으로 시작했던 운동은 헬스였다. 우선은 시간이나 운동 방법 등을 내 마음대로 할 수 있어서 좋았다. 누구랑 같이 하는 운동보다는 혼자 스케줄에 맞춰 할 수 있는 운동을 선호했다. 유산소와 함께 거북목과 굽은 어깨 그리고 허리를 주력으로 근력운동을 시작하고자 찾아봤다. 선생님과 일대일 PT는 너무 부담스럽고 민망했기에 열심히 유튜브를 찾아보며 나름대로 시뮬레이션을 돌려보고 헬스장을 찾았다. 처음에는 뻘쭘하고 어색해서 자꾸 다른 사람들을 의식하는 모습이 싫었다. 그래도 이왕 하기로 마음먹고 6개월 결제한 나는 무조건 버텨보자 하는 생각에 꾸준히 나갔다. 다행히도 헬스가 점점 즐거워지기 시작했다. 땀을 빼고 샤워를 하고 나면 개운하고 하루가 보람찼다. 체력도 늘었고 자세도 조금씩 나아졌다. 이때 나는 운동 자체에 대한 거부감이 줄어들었고 조금 더 다른 운동도 함께 도전해 보기로 마음먹었다.


그 무렵 한 호텔에서 진행했던 1박 2일 워크숍에서 사람들이 새벽시간에 수영을 하러 가는 걸 볼 수 있었다. 나는 공짜로 그 좋은 수영장을 이용할 수 있는 기회가 있음에도 물이 무서워서 기회를 걷어차버리는 게 아까웠다. 동시에 재작년에 휴양지에서도 수영을 못해 물 밖에서 바라만 보았던 야외의 아름다운 수영장의 모습도 스쳐 지났다. 이제는 배워보자 해서 다시 3개월을 등록했다. 나는 몸에 물이 닿으면 자동으로 몸이 굳어버린다. 그냥 물이 좀 무섭다. 그럼에도 시작했기에 또 악착같이 버텼다. 정말이지 수영은 배움이 더뎠다. 당시에 2달이 지나도 초급반인 사람은 나밖에 없었던 거 같다. 남들 5바퀴 돌면 3바퀴만 돌면서 열심히 3개월을 채웠지만 여전히 어려운 수영이었다. 그리고 강습 연장은 하지 않았다. 그로부터 1-2년 뒤 다시 수영에 등록했고 나는 다시 초급반으로 갔다. 또다시 3개월을 끊었지만 아쉽게도 횡단보도에서 넘어져 인대가 늘어나는 바람에 한 달 만에 그만두었다. 아직도 완벽하게 혹은 자신 있게 수영은 못하지만 적어도 물에 대한 두려움 그리고 공포의 감정은 완전히 덜어냈다. 이번엔 여기서 만족하고 추후에 다시 도전해 볼 예정이다.


겨울이 되자 몸이 너무 무거워졌고, 자연스럽게 운동을 다시 시작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선택한 운동은 복싱이다. 집 근처 큰길에서 광고를 하는데 원하는 시간과 요일에 아무런 준비물 없이 가면 된다는 점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 그래서 무작정 들어가 상담을 받아보니 선생님들이 상주해 계셔서 정해진 일정에 따라 체력운동을 하고 자세를 꼼꼼하게 봐주신다고 하셨다. 복싱이긴 한데 약간 크로스핏 느낌이 많이 나는 운동이라 부담이 없었다. 숨이 차도록 글러브를 끼고 원투 펀치를 날리고 발로 뻥뻥 킥을 차다 보면 스트레스도 풀린다. 전체 코스는 하루에 1시간 정도 하면 끝나는데 밀도가 있는 거 같아서 마음에 든다. 지루하지 않고 새롭고 배우는 게 많아서 즐겁다.


물론 운동에 소질이 없는 나는 배우는데 오래 걸렸다. 역시나 이것도 쉽지 않다는 걸 느꼈지만 지금의 나는 운동의 즐거움을 알고 있는 상태이기 때문에 쉽게 포기하지는 않을 것이다. 동시에 언젠가 다른 기회에 다른 곳에서 복싱을 배울 기회가 생길 수도 있으니까 잘 배워놔야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운동은 절대 내 삶에 없을 것 같다고 생각했던 내가 이렇게 즐거움을 느끼고 꾸준히 도전을 해나가는 것이 새삼 놀랍기도 하고 신기하다. 여전히 운동에 있어 방랑자의 느낌이 강하지만 언젠가 정착하게 되는 날이 있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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