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듄 2가 흥행몰이 중이다. 파묘에 이어 2위 관객수다. 백만을 돌파했다. SF영화의 장인인 Denis Villeneuve가 감독했다. 그의 이름은 "드니 빌뇌브"라고 읽어 주는 게 정확하겠다. 데니스 로드맨이라고 악동 농구선수를 기억하는지? 북한의 김정은과 친하다는, 그 데니스다. 그러나 듄의 감독은 프랑스계 캐나다인이다. 드니라고 읽어야 한다. 빌뇌브는 영어로는 New Town이라는 뜻이다. 신도시 출신이라는 건데, 아마도 조상이 캐나다 땅에 정착을 하면서 자기 이름도 "신도시"로 개명하고 새롭게 시작하려고 한 것 아닐까? 물론 뇌피셜이다.
듄을 이동진 영화평론가가 극찬하길래 보고 싶었다. 아들을 꼬셨다. 고1 아들은, "러닝 타임 2시간 40분은 에반데..." 하더니, 재밌어 보였나 보다. 순순히 예매를 진행시키란다. 극장 중간 가운데 명당자리로 2장을 예매했다. 아들 표는 캡처해서 문자로 보내주었다. 아들은 영화에 팝콘과 콜라가 없으면 안 된다. 그래서 콤보 쿠폰도 하나 사서 보냈다.
요즘 테니스를 배우고 있는데, 레슨이 끝나고 나니 영화 시작까지는 시간이 꽤 남았다. 극장 옆 카페에서 기다렸다. 영화는 4시25분 시작이었는데, 시계를 보니 5분 전이다. 아들이 연락이 없어 전화를 했다.
"아들, 어디냐?"
"집 근처 자이 아파트"
"그래? 알았어. 얼른 와"
"시간 맞춰 갈게"
그 아파트에서 극장까지는 아들 걸음으로 15분은 걸린다. 자전거 타고 올려나? 반반 팝콘과 콜라 2개를 샀더니 한가득이다. 시계를 본다. 4시 반이 넘었다. 왜 안 오지? 전화를 하기 시작한다. 두 번, 세 번, 네 번... 응답이 없다. 슬슬 화가 치밀어 오른다. 시간은 4:45. 영화는 이미 시작을 하고도 남았을 시간이다.
엉거주춤 팝콘과 콜라를 끌어안고 상영관으로 향한다. 육중한 상영관 문을 어찌할 수 없어 팝콘과 음료수를 바닥에 내려놓는다. 문을 빼꼼히 열고 발 앞꿈치로 붙잡은 다음 바닥의 팝콘과 콜라를 들고 안으로 들어간다. 깜깜해서 아무것도 안 보인다. 잠시 서서 스크린을 바라봤다. 천천히 눈이 적응을 한다. 만석은 아니다. 가운데 빼고는 양 옆으로 자리가 비어있다. 출입구 바로 옆 빈자리에 일단 앉는다. 영화를 보다가 밝아지는 순간이 있어 예매한 자리를 쳐다봤다.
익숙한 뒤통수가 보인다. 어라? 아들이 앉아서 태연히 영화를 보고 있다.
이 놈이? 속이 부글부글 끓기 시작한다. 아들 왼쪽으로는 4명이 앉아 있다. 영화는 초반부터 극적인 장면의 연속이다. 좀 헐렁한 장면이 나올 때까지 기다린다. 그래야 비집고 들어가도 민폐가 덜할 테니까. 이때다 싶은 때 슬그머니 일어난다. 내 콜라는 마시는 둥 마는 둥하고, 아들 콜라만 챙긴다. 고개를 푹 숙이고 아들 자리로 향한다. 앉아있는 관객들을 비집고 들어간다. 관객들 무릎과 내 다리가 부딪힌다. 나는 말도 못 하고 연신 고개를 주억거리며 들어간다. 팝콘도 사람들 무릎에 흘린다. 도로 나갈 순 없다. 일단 들어가야 한다. 그 몇 초의 시간이 왜 이렇게 길게 느껴지던지. 마침내 아들과 조우했다. 아들은 순간 내 얼굴을 보더니 반가움에 환해진다. 그러곤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이 콜라와 팝콘을 흡입한다.
영화는 재밌었다. 이 정도면 몇백만은 찍어야 하는 것 아닐까 싶을 정도로 말이다. 끝나고 나와보니 아들이 안 보인다. 둘러보니 벌써 몇 걸음 앞서 밖으로 나가고 있다. 아들 이름을 부르니 도망치듯 혼자 빠져나간다.
집에 들어오니 아들이 제 방에 있다. 불러 냈다. 취조 시작.
"아빠랑 영화 시작 직전에 통화했으니 극장에 왔으면 전화해야 하는 거 아니냐?"
"나는 그냥 아빠가 보내준 표 자리로 곧장 가서 앉았는데?"
"전화는 왜 안 받아?
"민폐 끼칠까 봐 무음으로 해놓았지."
"아빠가 네 옆자리일 거라는 생각은 안 했냐? 팝콘 들고 올 거라는 것도?"
"아빠 자리가 어딘지 나한테 알려준 적도 없고, 나는 팝콘 사달라고 한 적도 없는데?"
"콤보 쿠폰 보내줬잖아."
"어차피 돈 없어서 나는 결제도 못하는데 뭐."
순순히 백기투항할 줄 알았는데, 이거 우크라이나 같은 녀석이네. 나름 화력도 있고 논리적인데? 아들의 새로운 면을 보았다. 요즘 버럭하는 일이 많은 고딩 아들이다. 아들에게 잠재된 오이디푸스 콤플렉스가 살짝 드러난 것일까?
오이디푸스 콤플렉스(Oedipus complex)는 심리학자 지그문트 프로이트가 창시한 용어다. 유래는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영웅 오이디푸스다. 테베의 왕이었던 그는 어느 날 자신이 아버지를 죽이고 왕이 된 후 어머니와 결혼한 저주받은 운명의 소유자라는 끔찍한 진실을 마주하게 된다. 오이디푸스는 스스로 눈을 찌르고 왕위를 버린 채 눈먼 떠돌이 거지가 된다. 프로이트는 남자아이가 어머니를 독차지하려고 하는, 혹은 아버지를 경쟁 상대로 보고 콤플렉스를 느끼며 증오하는 심리를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라고 했다.
넓은 의미에서 이 세상의 모든 아들들은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의 소유자 일지도 모른다.
영화 듄 2편도 사실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연상케 하는 장면이 나온다.
듄 1편에서 아트레이더스 가문의 수장이었던 레토 공작(주인공 폴의 아버지)은 죽임을 당하고 가문은 통째로 멸문지화를 겪는다. 2편은 간신히 살아남아 도망친 레토 공작의 부인 제시카와 아들 폴(저 세상 외모의 티모시 살라메)의 등장으로 시작한다. 모래언덕(듄)으로 가득 찬 아라키스 행성에는 토착민 프레멘 족이 살고 있다. 그들에게 외계인이나 다름없는 두 모자는 생존을 위해 프레멘 부족의 삶으로 섞여 들어간다.
여기서 눈여겨볼 점은 엄마 제시카와 아들 폴의 갈등관계다. 제시카는 아들을 보호하려는 모성애로 똘똘 뭉친 평범한 엄마다. 그러나 그녀는 본처도 아니었고 레토 공작의 첩이었다. 또 마녀와도 같은 능력을 지닌 "베네 게세리트 자매단"의 일원이기도 하다. 이러한 배경 탓에 그녀는 일찌감치 전략적 행동의 중요성에 눈떠 있었고, 권력의 힘 또한 잘 알고 있었다.
중요한 점은 1편에서 죽은 폴의 아빠 레토 공작의 빈자리를 엄마인 제시카가 대신 채운다는 것이다.
제시카는 아들 폴이 주적 "하코넨" 가문에 대적하는 새로운 지도자로서 본인의 운명을 받아들이도록 유도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끊임없이 강압적으로 아들을 대한다. 또 프레멘 반군을 이끌며 이들이 아들 폴을 메시아로 추앙하도록 현혹한다. 물론 그녀에게 악의는 없다. 그러나 아들 폴 입장에서는 엄마는 한편으로는 깨부수고 거듭나야 하는 껍질이기도 했다.
또 하나는 하코넨 가문의 빌런 "블라디미르"다. 거구의 초고도비만으로 나오는 그는 자체로 악의 화신이지만, 사실 폴의 엄마 제시카의 생부였다. 블라디미르는 폴의 아버지 레토 공작을 1편에서 가차 없이 죽여버린다. 그러나 제시카와 폴을 직접 죽이진 않는다. 악인인 그라도 딸과 손자에 대한 최소한의 연민은 있었기 때문일까? 영화에서 두 모자를 추적하는 부하들에게, 어차피 이들은 아라키스 행성의 사막폭풍 속에서 저절로 죽을 것이라고, 더 쫓을 필요는 없다고 얘기한다.
영화의 마지막에서 폴은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의 한 장면을 재생한다. 외할아버지 블라디미르를 자신의 손으로 처단하는 것이다. 물론 블라디미르가 자기 아버지를 죽인 원수인 탓이기도 했지만, 폴이 새로운 권력자이자 메시아로서 등극하려면 블라디미르 제거는 필요조건이기도 했다.
오늘, 아들은 언제 싸웠냐는 듯이 문자가 온다.
"오늘 학교 갔다가 끝나서 바로 학원 가고 집에 들어가서 엄마가 만든 이상한 규칙 때문에 하루에 30분 밖에 못 쉬는 불쌍한 아들을 위해 데이터를 나누실 생각이 있나요? 집에 데이터가 고픈 아들이 하나 굶고 있습니다."
반말이었던 아들놈이 갑자기 공손해졌다. 물론 자기가 필요할 때만 그렇다.
"1기가 보냈다. 데이터 아껴서라. 지금 3월 초야."
이렇게 화해는 일단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