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날이 화창해서 두꺼운 옷을 벗어놓고 가벼운 옷차림으로 외출했다. 그런데 아직 바람이 차다. 봄이 왔지만 나에게는 미처 오지 않은 봄이다. 그래도 날이 좋아 커피 한 잔을 들고 캠퍼스를 걷다가 눈앞에 노란 꽃망울을 보고 걸음을 멈췄다. 정말 반가웠다. 오랜만에 반가운 친구를 만난 것처럼.
살다 보면 우연히 발견하는 아름다움이 있다. 봄이 그렇다. 늘 그곳에 있지만 잊고 살던 것들이 봄이 되면 짠~하고 내 앞에 환하게 웃으며 다가올 때가 있다. 움츠리고 종종 대며 다니는 나에게 '잘 있었냐고, 내가 왔다'며 인사를 한다. 지난겨울 매서운 추위를 이기고 연하디 연한 새싹을 틔어 올린 나무가 그렇고, 앙상한 가지 위로 새하얀 꽃망울을 맺고 있는 꽃나무가 그렇다. 내가 일하는 직장이 이런 자연으로 둘러 싸여 봄 여름 가을 겨울을 볼 수 있는 곳이라는 것이 퇴직하기 전 이 직장의 장점이었다. 특히 봄이 오는 캠퍼스가 가장 좋았다.
오늘 학교에서 발견한 봄은 나를 행복하게 했다. 예전의 설렘을 다시 느끼게 되어 좋았다. 지난주부터 학교에 일이 생겨서 갔는데 그때는 정신없이 일만 보고 가느라 봄이 왔는지 꽃망울을 터트렸는지 안중에 없었다. 그런데 일주일 사이에 조금 여유가 생겼는지 갑자기 캠퍼스의 봄이 내게로 왔다.
# 여전히 따뜻한 아름다움
대학교 캠퍼스는 왠지 모르게 사람들을 설레게 하는 매력이 있다. 코로나 시국이지만 신입생들이 과잠을 입고 옹기종기 모여 이야기하는 모습도 싱그럽고 사랑스럽다. 새 학기를 시작하는 캠퍼스는 분주하게 움직이지만 활기차다. 오랜만에 만나는 반가운 사람들과의 인사는 여전히 따뜻하고 나를 미소 짓게 한다. 내 청춘과 열정을 다한 곳에서 나의 흔적을 발견하는 일이 생각보다 신선한 자극이 되었다. 너무나 소중한 나의 세상이다.
퇴직하는 과정에서 많이 아팠던 직장이었는데 그곳에 나와 함께 일했던 동료들은 여전히 따뜻하고 친절했다. 나의 아픔에 공감해 주고 위로해 주고 토닥이는 그 손길이 부드러웠다. 내가 사는 세상과 내가 보는 사람들이 모두 새롭고 소중하여 고마웠다. 다시 만나도 반갑게 인사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도 행복하고, 내가 좋아하는 일로 누군가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것도 너무나 좋았던 하루였다.
학교 정문 옆에 목련나무는 여전히 서 있다. 아직은 하얀 꽃망울만 올라와 있지만 온 캠퍼스를 환하게 밝힐 그날이 곧 올 것 같다. 코로나로 잊어버렸던 나의 봄을 다시 찾아야겠다. 사람들은 어떤 꽃들을 좋아하는지 잘 모르겠다. 나는 봄 꽃 중에서 목련을 제일 좋아한다. 마치 환한 꽃등을 켜고 나에게 봄이 왔으니 어깨를 펴고 즐기라고 신호를 보내는 것 같아 좋다. 목련은 춥고 힘들었던 나에게 봄이 주는 선물 같다. 올해는 봄날이 정말 기대된다. 이제는 그만 집 밖으로 나와 나를 위해 일어서고 움직이고 있는 봄을 만끽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