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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V Story Oct 14. 2019

주 6일에도 버틸 수 있는 베트남 직장인의 여유

베트남 소재 한국 기업은 그냥 한국 기업이지.

얼마 전 베트남 근무 시간 단축에 대한 정책적 논의가 오가고 있다는 기사를 읽었다. 근무 시간 단축이라는 말에 부럽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겠지만, 사실 베트남은 아직도 원칙적으로 주 6일제를 시행하고 있다. 지금 논의 중인 사안은 5.5일 근무, 즉 토요일 오전 근무만 할 수 있도록 조정하겠다는 내용이다. 그런데 그마저도 아직 경제적 수준이 선진국의 시스템을 채택하기에는 부족하다는 의견과 부딪히고 있다.


베트남은 오전 8시에 업무를 시작해 5시면 업무가 종료된다. 하지만 나는 다른 한국인 직원들과 통근차를 타고 7시면 회사에 도착했고, 집에서 회사까지 1시간이 걸리니 여섯 시에는 회사차를 타야 했다. 아침 준비시간까지 고려해 항상 새벽 5시에 기상했다. 이때가 내 인생에서 가장 부지런하게 고통스러웠던 시기였던 것 같다. 주 6일의 베트남에서 불금은 사치다. 불타는 토요일을 잠깐 즐기고, 일요일 느지막이 일어나자마자 다시 반나절도 채 남지 않은 일요일을 아쉬워하는 삶이 반복되었다. 워라벨이 완벽하게 무너져 있는 삶이었다.


하지만 베트남 직원들의 삶은 나와 조금 달랐다. 그들은 회사에서 집까지의 거리도 가깝고 언제든 집에 갈 수 있는 오토바이가 있었다. 출근시간에 한치의 오차도 없었다. 8시 정각에 출근해 점심시간에는 짧은 낮잠시간도 가졌다가, 다섯 시가 되면 주저 없이 집으로 향한다. 나도 다른 베트남 직원들처럼 정시 퇴근을 하고 싶었지만 나에게는 오토바이를 몰 수 있는 자격증이 없었고, 설사 있다 하더라도 왕복 두 시간이 걸리는 거리를 매일 왔다 갔다 할 자신도 없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상사들을 뒤로한 채 먼저 들어가겠다는 말을 할 용기가 부족했다. 베트남 직원들은 정시에 퇴근하지 못하는 나를 안타까워했다. 같은 공간에서 함께 일하고 있었지만 우리가 느끼는 공기의 무게는 달랐다.


한 번은 상사가 다른 베트남 직원들에게 나를 em(동생)이라고 부르지 말라고 경고했다. 나는 다른 베트남 직원들보다 나이도 어리고 경력도 적지만 한국인이라는 이유로 관리자로 분류되었고 위계질서를 위해 동생이라는 호칭을 삼가라는 뜻이었다. 사실 베트남에서 언니, 형, 동생 등의 호칭은 굉장히 자연스러운 호칭이다. 한국에서는 직급으로 동료를 부르지만 베트남에서는 직원이 대표를 부를 때도 직급보다는 나이에 맞는 호칭을 사용한다. 나라별 문화이기 때문에 옳고 그름을 이야기할 수는 없지만, 베트남의 방식이 조금 더 자유롭다는 생각이 들기는 한다.


베트남 직원과 협력사를 방문한 적이 있다. 우리 회사는 박닌의 옌퐁공단에 위치했고, 공단 내에 삼성의 벤더들이 줄지어 들어서 있었다. 협력사는 길만 건너면 도착할 정도로 가까웠고, 나와 함께 협력사를 방문하기로 한 직원은 그 회사에서 우리 회사로 이직한 지 3개월이 채 되지 않았다. 나는 나름 배려를 한답시고 베트남 직원에게 전 직장에 방문해도 껄끄럽지 않겠냐고 물었는데, 베트남 직원은 왜 그런 질문을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사무실로 들어섰을 때, 직원의 전 동료들이 하이파이브로 맞이해 주는 모습을 목격했다. 같은 공단 내, 그것도 바로 앞 회사로 이직을 하는 것은 상도덕에 어긋난다고 생각하는 나와는 달리 베트남 사람들은 쿨했다.


그들에게 직장이란 그런 것이다. 자아실현의 공간이자, 돈벌이의 수단이지만 일과 사람에 치이지 않는다. 주 6일이라는 긴 업무 시간에도 칼 같은 출퇴근을 통해 나름의 워라밸을 완성하고, 직장 동료들과 가족, 친구 같은 관계를 유지하며 위계질서를 타파한다. 더 나은 조건이 주어지면 이직하는 것이 당연하기 때문에 미안해하지 않고, 동료들도 그러한 행동을 나쁘게 보지 않는다. 그들의 여유로움은 직장을 대하는 태도와 사회적인 환경으로부터 형성된 자연스러운 결과물이었던 것이다.


외국계 회사의 한국 지사는 그냥 한국 회사라고 보는 것처럼 베트남에 진출한 한국 회사도 그냥 한국 회사라고 보면 된다. 심지어 자유로움 빼면 시체였던 베트남 직원들이 하나둘씩 한국인 상사 눈치를 보고 있는 걸 느낄 때마다, 위치를 막론하고 한국 기업 문화의 존재감은 어떤 의미에서는 대단(?)한 것 같다. 조금 더 자유로운 환경을 찾아 베트남 취업을 꿈꾸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면, 한국 기업보다는 베트남 기업 혹은 외국계 기업에 도전하는 게 맞지 않냐는 게 나의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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