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겁쟁이 공작새 Jun 08. 2020

2020년 5월, 인상 깊었던 광고들

소소한 광고리뷰

코로나로 소비는 위축되고 이전만큼 사람들이 나다니지도 않는 상황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자본주의 꽃 광고는 집행되고 있다. 5월, 코로나가 조금씩 풀리고 사람들도 밖으로 나가기 시작한 때. 봄에서 여름으로 넘어가던 때. 유튜브 상에는 어떤 광고가 집행되었나 살펴보았다. 


1. 매일유업 유당불내러 라떼사발 드링킹 영상 - 광고는 공감을 낳는다   

컨셉과 메시지, 비주얼까지 다 좋은데 제목이 짜친 것 같아 살짝 아쉽다

  광고를 비롯한 마케팅은 기본적으로 타겟팅이 중요하다. 제품의 특장점(USP)에 부합하는 세분화된 타겟을 정의하여 이들만을 위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 광고의 정석과도 같은 전략이다. 그런데 이렇게 마케팅을 목적으로 한 커뮤니케이션을 보다보면 인문학적인 시선까지 와닿을 때가 종종 있다. 


  타겟을 세분화하고 또 세분화하다보니 그 시선이 어느샌가 사회 '주류의 시선' 속에 가려졌던 '비주류의 시선'까지 조명되기 때문이다. 뭐, 사실 이 영상이 그렇게까지 무거운 주제를 다루고 있다는 것은 아니다. 남모르는 불편을 가진 사람들의 시선에 공감을 두어 코믹하게 풀어낸 광고라고 보면 된다. 그럼에도, 적어도 난 이 영상을 보며 세상이 더 넓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어렸을 때부터 나는 우유관련 문제를 겪은 적은 한번도 없었다. 초등학교 때 우유를 배급할 때도 맛있게 후루룩 마셨고, 흰 우유는 못마신다는 애들을 바라볼 땐 도무지 이해가 안 갔다. 커서도 마찬가지다. 커피는 무조건 라떼였던 나에게 라떼를 못마신다는 사람들은 존재하지 않는 사람들이었다. 유당 불내증이라는 말은 들어봤어도 실제로 겪는 사람들은 본 적도, 관심가진 적도 없었다. 


  아마 이 광고영상 속 라떼를 사오는 팀장도 나같은 사람일 것이다. 유당불내증에 대해 '그런 게 있구나'하는 피상적 인식을 가진 인물. 그래서 영상은 파격적 컨셉을 도입한다. 유당불내증을 가진 사람에게 라떼는 사약 같은 것이라고. 이러한 컨셉을 통해 유당불내증을 가지고 있지 않던 사람들은 '유당불내증 가진 사람들한텐 함부로 라떼를 주면 안 되겠구나' 경각심을 가지게 되고, 유당불내증을 가진 사람들에겐 제품 어필뿐만 아니라 공감대 형성으로 브랜드 선호도를 높일 수 있다. 


  보기엔 웃기고 단순하지만, 강력하면서 머리 좋은 광고였다.   


  아, 소수의 시선이라고 하니 브랜드인 매일유업 말고도, 그 뒤에서 열심히 일한 광고인들도 언급해줘야 인지상정 아닐까. 이 멋진 광고의 제작사는 '위피피'와 '소년'이다. 


  

2.지그재그 런칭광고 - 처음 보지만 처음은 아닐 때

새삼 생각하는 건데 마켓컬리 전지현급으로 모델 선정 정말 잘 한 것 같다  

  지그재그, 써본 적은 없어도 여러본 들어본 어플이다. 여성들의 무신사 같은 느낌이라고 알고 있다. 이용자 수는 무신사를 넘을 정도이고. 그랬던 앱이, 지금까진 광고를 안 하다 처음 집행한 광고다. 사실 이미 다들 쓰던 어플의 런칭광고이다보니 완전 새로운 비주얼이라거나 신박한 컨셉을 들고 오진 않았다. 그럼에도 이 글에 넣은 것은 순전히 카피가 정말 좋아서다. 

처음 뵙겠습니다만, 감사인사부터 드려요  

  

  크, 멋지지 않은가. 2000만 이용자를 가지고 있던 어플의 자신감과 포부가 담긴 첫 대사다. 처음부터 광고를 내면서 이미지를 구축해내는 일반적인 브랜딩과 달리, 이미 많은 비중을 차지하다가 나중에 광고를 내는 브랜드의 소구는 참 애매하다. '우리가 이런 어플이다'하고 특장점을 자랑하기엔 이미 다들 알고 있는 것이라 신선하지 않고, 전혀 다른 비주얼로 이목을 끌기엔 기존 브랜드와 괴리가 나타날 수 있다. 


  그런데 지그재그는 처음부터 시크한 감사인사를 던진다. 감사인사는 아이러니한 앞문장으로 힘을 얻는다. 처음 보는데 감사인사라니? 아, 이 브랜드는 벌써 2000만이나 사용자가 있는 어플이구나! 어 내가 쓰던 그 어플인데 이제 광고를 내는구나! 하는 식으로 소비자는 이 첫 문장, 첫 카피에 얽혀들어간다. 뒤이어 나오는 의衣욕 드립까지. 카피와 모델이미지, 말투가 모두 다채로이 섞여 광고는 지그재그라는 브랜드 자체가 된다. 


  사족으로, 과거 미원에서 냈던 '기적의 한 꼬집'광고의 카피 '그럴려고 그런 건 아닌데, 그렇게 됐네요'가 생각나는 카피였다. 아이러니 카피의 좋은 예시라 할까.   

 


3. 카스 알짜 맥주 클라쓰 - 광고의 벽을 허물다

백종원 씨는 이미지 소비가 될만큼 됐을텐데도 아직까지 광고 치트키다

   보고 충격을 먹은 광고다. 아니 그전에, 광고가 맞긴 한 걸까? 카스의 알짜맥주클라쓰 - 막맥편은 누가봐도 예능으로 보이는 광고다. 정확히는 채널 콘텐츠를 광고로 집행했다는 것이 맞으려나? 어찌됐건, 기존 광고와는 완전히 다른 형태라는 것만은 분명하다. 


  영상은 광고치트키 백종원과 양세형  양세찬이 나와 '노가리'를 까는 형식이다. 가령 광고로 집행된 막맥편은 서로 술을 까고 마시면서 황금비율이 뭐냐, 막걸리+맥주는 마셔봤냐 하는 식으로 예능토크가 진행되는데, 재밌다. 정말 일반 예능처럼 재밌다. 댓글을 봐도 '일부러 찾아와서 보는 광고는 처음이네', '광고인데 스킵 안 누르고 끝가지 다 봤다' 등 광고를 광고로 보는 게 아니라 하나의 유튜브 콘텐츠로 보는 반응들이 많았다. 


  사실 광고의 유튜브 콘텐츠화는 한참 전부터 있던 일이긴 하다. 당장 유튜브가 나오기 전에도 웃긴 광고들은 사람들에게 바이럴 됐었고, 작년인가에는 빙그레 단지우유 레시피 광고가 광고와 요리 유튜브의 벽을 허물었었다. 그럼에도 이 광고에 내가 충격 먹은 건, 완전히 광고의 형식이 안 보였기 때문이다. 정말 예능을 그대로 광고로 집행한 것이었고, 그게 사람들에게 효과적으로 먹혔다.


  이 시리즈가 전부 광고 집행은 되지 않았지만, 카피라이터를 목표로 하는 내 입장에선 큰 위협이었다. 전혀 다른 것을 합친 발상으로 창의적인 컨셉을 내는 것도 아니었고, 가슴 울리는 카피로 소비자에게 어필한 것도 아니었다. 카피라이터니 아트디렉터니 기존 광고 제작자가 끼어들만한 요소가 보이지 않았다. 내가 만들고 싶은, 추구하는 광고보다 훨씬 더 큰 효과를 냈다. 


  광고의 가능성은 더욱 넓어졌지만, 내 앞길에 대한 불안감은 더욱 커지게 만든, 그런 광고였다.   



4.모닝케어 숙취해소 개념장착 - 숙취개념을 세분화하다

  사람들은 단순한 걸 좋아한다. 어디가 아프면 그냥 타이레놀 하나 먹고 싶어하지 복통용 진통제, 두통용 진통제, 치통용 진통제 따로따로 구비하긴 귀찮다. 오죽하면 화장품에선 올인원 로션까지 나왔을까. 증상을 세분화하고 그 대처도 세분화하는 것은 소비자의 게으름을 정면에서 맞서는 일이다. 그런데 모닝케어는 그 험한 길을 걷기로 마음을 먹었나보다. 광고주가 그리 마음을 먹었으면, 광고주의 바람을 이루는 것이 광고인이다.  

  

  모닝케어 '숙취해소 개념장착'은 그런 면에서 정석처럼 정갈한 광고였다. 광고는 느와르같은 숙취해소 골목길을 비추며 시작한다. 숙취에 시달리는 남자는 가판점에 도착한다. 캔디형, 젤리형, 음료형 등등 제형은 다양하지만 '아무거나 골라도 된다'. 그래도 되냐는 숙취남의 말에 가판대 주인은 현 숙취해소 시장을 대변하듯 말한다.

  기존 숙취해소 시장의 상황을 설명하면서도 '거기서 거기다'라는 말로 부정적 이미지를 부여한다. 그러자 갑자기 조진웅이 나오며 모닝케어를 손으로 장착하고는 총쏘듯 쏜다. 

깨질듯한/ 더부룩한/ 푸석푸석한 으로 숙취를 세분화한 모닝케어

그리고 하는 말 '모닝케어는 다르다. 숙취를 해소하는 개념부터' 


  사실 나는 숙취를 느껴본 적이 없다. 술이 엄청 세서가 아니다. 3~4잔만 마셔도 몸이 알아서 전원을 끄는 바람에 숙취를 느낄만큼 마셔본 적이 없다. 그래서 정말 모닝케어의 말대로 깨질듯한 것과, 더부룩한 것과, 푸석푸석한 숙취가 따로따로 있는지 모른다. 그래도 이 광고를 보며 이 생각을 하긴 했다. '아, 숙취에는 각각에 맞는 숙취해소제를 마셔야 하는구나' 


  주당들, 그리고 숙취를 잘 겪는 사람들이 이 광고를 보고 나처럼 생각했는지 나로선 알 도리가 없다. 그럼에도, 그 어려운 개념의 세분화 마케팅을 '거기서 거기'라는 가판대 주인으로 형상화한 것만큼은 크리에이티브의 승리였다. 그 깐족이 더욱 따로따로 마셔야겠다는 생각을 강화시켜주었으니까. 


이 제품이 정말 소비자에게 먹힐지, 숙취를 따로 보는 인식이 생겨날지 안 날지는 온전히 모닝케어 제품 자체와, 시장의 흐름에 달려있다. 제품의 승리를 예단할 순 없지만 그래도 광고만큼은 승리했다고 칭찬해주고 싶다. 과하지도 부족하지도 않은 적당한 선에서 숙취개념 분화가 필요하다는 메시지를 정갈하게 전달했으니까.      

매거진의 이전글 가장 아름답게 행복의 순간을 그려내는 법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