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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겁쟁이 공작새 Apr 25. 2020

가장 아름답게 행복의 순간을 그려내는 법

<어바웃 타임> 리뷰

모든 이야기는 결핍의 서사이다.

이야기 속 모든 주인공들은 언제나 무언가를 잃거나, 추구한다. 가령 로맨스 영화는 사랑의 결핍에서 충족으로 이어지는 서사를 가진다. 액션 영화는 정의의 결핍을 충족시키는 서사다. 종종 결핍 그 자체로 결말을 맺는 영화들도 있지만, 결국 그 또한 결핍의 서사인 것은 마찬가지다. 독자, 시청자들은 주인공의 결핍이 심화되거나 충족되는 과정을 보며 즐거움,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그 어떤 동화도 '어떻게'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는지 말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결핍의 고통과 그 극복과정이니까

다소 고리타분한 이야기긴 해도 이것이 동서고금 우리가 즐겨온 모든 서사 콘텐츠의 근간을 이루는 구조이다. 만약 처음부터 ‘둘은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답니다’라며 주인공들이 행복한 모습만 보여주는 소설이 있다면 독자들은 금세 질려 다른 책을 펴고 말 것이다.


적어도, 어바웃 타임을 보기 전까진 이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어바웃 타임은 참 이상한 영화다. 굳이 영화 내의 결핍과 충족의 비율을 나누자면 4:6 정도로 행복과 만족의 이야기가 더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 그런데도 영화를 보는 우리는 질릴 겨를 없이 주인공들의 행복한 일상에 미소 짓는다. 영화가 그려내는 충족된 풍경에 우리는 함께 행복해 하고 즐거워한다. 심지어 로맨스 영화는 질색하는 나마저 오글거림 없이 즐겁게 볼 정도로, 찬란한 행복의 광경을 주조해낸다.

 

이 영화에서 제일 부러운 놈

물론 영화의 시작이 결핍에서 시작하는 건 이 영화도 마찬가지다. 주인공 팀은 사랑을 찾아 헤매는 쑥맥이다. 모쏠이다 보니 맘에 드는 여자에게도 제대로 대시를 못하는, 미국영화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찌질이(이게 영국 영화라는 건 일단 넘어가자). 아버지에게 시간을 되돌아가는 혈통의 비밀을 전해 듣고 난 뒤부터 본격적으로 ‘사랑’의 결핍을 충족하기 위한 그의 여정이 시작된다.


보는 사람 당뇨 걸릴 만큼 달달하고 알콩달콩한 사랑을 하는 둘

‘시간 되돌리기’라는 영화의 소재 때문일까, 사랑의 충족은 생각보다 일찍 이루어진다. 이후로는 소소한 유머 코드와 함께 팀과 메리의 완벽히 사랑으로 충족된 일상이 나온다. 즐기고, 웃고, 만족하며, 설령 뭔가 잘못되어도 시간을 돌려 완벽히 충족된 행복을 즐긴다. 내가 매료된 것은 이 아름다운 행복의 묘사들이다.



가히 영화 역사상 가장 아름다운 결혼식 장면이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더없이 행복한 일상과 표정들. 사랑스런 연인과 그들의 티없는 웃음. 보는 것만으로도 함께 행복해지는 충족. 그 어느 영화가 태풍에 엉망진창이 된 결혼식을 이처럼 찬란하게 그려낼 수 있을까. 그 어느 영화가 아버지의 결핍을 유년의 행복한 시절로 행복하게 충족해낼 수 있을까.



솔직히 말해, 서사 구조는 앞에도 짤막히 말했듯 단순한 편이다.

 결핍된 주인공-> 기이한 능력과 사건 -> 결핍의 충족->갈등-> 갈등 극복과 성장.

시나리오 수업에서 들었던 영화의  기본 구조를 그대로 빼다박은 수준이다. 시선도 지극히 영국 중산층의 관점에만 머무른다. 하지만 그런들 무슨 문제랴. 중국집에서 양식을 원하면 안 되듯, 중국집 요리사는 중국요리만 잘 만들면 되는 그만인 걸. 게다가 이 영화는, 이를테면 이연복이 만들어낸 고오급 짜장면 쯤 된다. 자신의 장르 안에서 가장 완벽하게 장르와 메시지, 그리고 연출을 그려냈다.



인생은 모두가 함께 하는 시간 여행이다.
매일매일 사는 동안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최선을 다해 이 멋진 여행을 만끽하는 것이다.


뻔하고 지겨운 메시지.

감독은 이 메시지 위에 세상에서 가장 멋진 순간들을 얹 우리에게 건네주었다.

그러자, 뻔하기에 강력한 메시지가 되었다.

마치 유럽 성당의 종교화를 볼 때 이미지의 경외심으로 림의 메시지  더욱 강하게 느껴지는 것처럼.


충족과 충족과 충족으로 이뤄진 찬란한 순간의 묘사봄으로써, 우리는 결핍의 서사와는 다른 새로운 의지, 감정을 느낄 수 있다.

그렇기에, 많은 이들이 이 영화를 인생영화로 꼽는 것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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