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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겁쟁이 공작새 Dec 05. 2019

꼬인 매듭의 사회  

박민정의 '세실, 주희'

매듭을 푸는 자가 아시아의 왕이 되리라는 고르디아스의 매듭 전설 속에선 세가지 유형의 사람을 유추해낼 수 있다. 첫 번째, 매듭을 봐도 풀려는 노력도 하지 않은 채 지나가는 사람이다. 이들은 전설 구전에 언급조차 되지 못한 일반인들이다. 두 번째, 매듭을 풀기 위해 매듭이 꼬인 양상을 유심히 관찰하는 사람이다. 이들은 매듭을 풀기 위해 도전했던 여러 명의 도전자로서 존재가 전해진다. 그러나 그들은 결국 풀지 못한다. 세 번째, 이 전설의 주인공 알렉산더 대왕이다. 그는 매듭을 단칼에 잘라냄으로써 주어진 문제를 우회하여 해결한다. 그 결과 그는 그리스와 중동 아시아 지역을 제패한다.

 

이 전설은 사회에 산재한 문제들을 맞닥뜨린 인간상의 우화로도 볼 수 있다. 매듭을 지나치는 사람은 사회 문제들을 느끼기는 하지만 문제의식을 갖지 못한 채 수긍하고 지내는 사람들이며, 매듭을 유심히 관찰하는 사람은 사회 문제를 풀기 위해 열심히 분석을 하지만 쉽사리 해결책을 내놓지 못하는 학자들이다. 알렉산더는 행동하는 사람의 모습이다. 복잡한 문제를 일일이 하나하나 풀어내지 않고 단번에 개혁을 일으키려 하는 사람이다. 전설과 마찬가지로 현대에도 이름을 남기는 사람은 세 번째, 알렉산더 유형의 사람들이다. 그들은 문제를 보고 머리 아프게 고민하지 않고 바로 해결하기 위한 행동을 한다.

  

그러나 그 해결책이 과연 최선의 해결책이었을까? 매듭을 풀지 않고 잘라낸 알렉산더의 제국은 그의 죽음과 함께 몰락했고, 사회 문제를 하나의 방식으로 해결하기에는 사회는 너무나 복잡하기에 다른 어딘가에서 새로운 문제가 튀어나오기 마련이다. 지독하리만큼 복잡한 사회와, 그에 대한 대응책. 무엇 하나가 옳고 그르고를 정하기란 무척 어려운 문제다. 박민정은 사회라는 복잡한 매듭에 대한 대답으로 『세실, 주희』를 내놓는다. 


『세실, 주희』에는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맞닥뜨리는 여러 개의 문제들이 곳곳에 배치 돼 있다. 마르디 그라 축제에서 원치 않는 성희롱을 당하고 해외 성인 사이트에 영상까지 올라온 주희. 기업의 전범이력을 인식하지 못한 채 제품이 좋다며 해당 기업의 제품을 쓰는 현 세대.  과거 전쟁을 일으켰을 때의 국수주의적 프로파간다를 비판없이 받아들이는 일본의 역사인식.  그리고 이러한 문제에 대한 비판인식을 다시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시선. 그리고 현대의 우호적 관계와 역사적 사건의 채무간의 문제 등. 서로 연결되기 어려워 보이는 현 사회의 대립점들이 작품 속 무수히 많이 배치되어 있으며, 이는 긴밀한 구성을 통해 소설이라는 통일된 구조로 나타난다. 자칫하면 산만하게 배치되기 쉬운 문제들은 J-주희-세실이라는 세 등장인물의 관계와 행동에 융화되면서 자연스레 소설이라는 매듭 속의 매듭이 된다.


J-주희-세실은 각자가 개성있는 모습을 보이는 가운데에서도 동질성을 가지고 있다. J-주희, 주희-세실로 이어지는 관계 속에서 그들의 동질성은 관계의 반복을 암시하며, 셋이 공통적으로 보이는 ‘무지(無知)’의 양상을 나타낸다.

 

선망은 사람이 꿈을 향해 움직이게 하는 가장 큰 동력이자 그 외의 것을 보지 못하게 하는 가리개이다. J와 세실은 타문화에 대한 선망을 가졌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J는 서구문화, 세실은 유노윤호로 대표되는 한국문화에 선망을 가지고 있다. 이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향해 거침없이 움직이는 자들이다. J는 미국 청년들과 거리낌 없이 대화하면서 그들의 문화에 쉽사리 동화되는 모습을 보이고, 세실은 유노윤호라는 아이콘에 대한 열망 하나만으로 적극적으로 한국어를 배우고, 또 자못 괜찮은 한국어 실력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이들의 선망은 선망의 대상 이외의 것에 대한 시선을 가린다. J는 자신과 어울리는 미국 청년들과 논다며 사라져 주희가 겪게 될 사건을 무시, 혹은 방치한다. 세실 또한 유노윤호만을 위해 광주에 가고 싶다는 대사에서 알 수 있듯 한 대상만을 위해 한국어를 배우는 것이지, 그 역사에 대해선 무지, 혹은 무관심하다. 때문에 그녀의 역사에 대한 순수한 무지는 군국주의 프로파간다의 모순을 인지하지 못한 채 그대로 받아들이게 했고, 이는 소녀상 앞을 아무것도 모른 채 지나가는 모습으로 극대화 된다.


선망으로 인한 무지는 주희에게서도 변주되어 나타났다. 주희는 스스로 ‘성공한 코덕’이라고 할 정도로 화장품에 관련해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그녀의 관심은 화장품 자체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그녀가 쓰고 홍보하는 화장품이 어떤 회사에서 나왔는지는 타인이 알려주기 전까지는 모르는 일이었다. 


J와 주희는 각각 J-주희, 주희-세실의 관계에서 언어문화의 우위적인 권위를 가진다. 미국에 처음 온 주희와 한국이 아직 낯선 세실에게 있어서 J-주희는 의지할 수밖에 없는 대상이다. 그러나 한 문화에 매우 친숙하다는 점은 이방인의 관점을 잘 모른다는 뜻이기도 하다. 마르디 그라 축제를 (정황상)알고 있던 J는 주희에게 여성의 가슴을 까발려 영상을 찍는 문화에 대해 아무런 언질도 주지 않았다. 그저 같이 축제를 가겠냐는 선택지를 주었을 뿐인 그녀는 축제와 함께 사라지고, 그 결과 주희는 이해 못할 상황 속에 방치된다.

 

J-주희의 관계는 주희-세실의 관계에서도 반복된다. 세실은 일제 강점기 시절 한일 관계에 대해 거의 무지하다. 주희는 세실이 가진 군국주의 프로파간다를 인식하면서도 그에 대해 아무런 생색을 내지 않는다. ‘관계가 불편해질까봐’라는 이유에서다. 작품의 결말은 평화 시위를 하는 광장 한 가운데를 지나면서도 세실은 아무것도 깨닫지 못한 채 끝이 난다. 주희는 끝까지 세실이 가진 모순적 인식을 지적하지 않았고, 때문에 언젠가 세실에게도 주희가 맞닥뜨렸던 ‘이해 못 할’ 상황이 오리란 것은 자명해 보인다. 


세 명이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무지를 인식하고 있는 것은 주희뿐이다. 그녀는 J가 자신에게 무관심했다는 것을 알고, 자신이 시사에 무관심했다는 것, 세실이 역사인식이 과거에 머물러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주희는 자신의 무지와 타인의 무지를 인식하고도 변화하는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자신을 축제 한 가운데 두고 떠난 J의 무신경함에 대해서도, 문법과 단어를 신경 써 메일을 보냈는데도 답장을 하지 않는 포르노 사이트 운영자에게도, 모순적인 역사인식을 가지고 있는 세실의 무지에 대해서도, 그 무엇에도 그녀는 소리를 내지 않는다. 그녀는 혁명가가 아닌 방관자이며, 역사적 채무관계를 해결하기 보단 현재의 관계를 유지하려 한다. 그렇기에 언젠가 세실에게 J로써 기억될 인물이며, 그렇기에 현대의 독자들을 현실적으로 반영한다.


처음의 고르디아스의 매듭 설화로 돌아가보자. J와 세실은 결단력 있는 행동력을 보았을 때 알렉산더의 유형으로 보인다. 그리고 사건을 방치하고 관망하는 주희는 매듭을 놓고 풀 노력을 하지 않은 사람의 유형일 것이다. 그렇다면 작가는 무엇을 하였는가? 바로 매듭을 만든 고르디아스다. 박민정은 세 여성의 문제와 그들을 둘러싸고 있는, 혹은 그들이 속해 있는 사회 제반의 문제를 『세실, 주희』라는 매듭으로 엮어내어 독자들에게 풀어보라며 던져주었다. 풀리지 않은 문제들의 구성이 이루는 복잡한 매듭을 보임으로써 고민하게끔 하고 있다. 한 권의 책으로써 계몽과 사회개혁을 이끌어가던 시대는 끝난 지 오래다. 현대의 우리는 우리가 아는 것 사이에서 끊임없이 고민하고 길을 찾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리고 아는 것 뒤에는 무수히 많은 모르는 것들이 있기에 매듭은 더욱 복잡해진다. 자칫 매듭을 잘랐다간 모든 게 헝클어지기 마련이다. 그렇기에 이 시대의 작가는 독자를 더욱 고민하게 해야 한다. 개인의 무지와 한계를 깨닫게 해야 한다.

 그것이 박민정이 『세실, 주희』라는 매듭을 던짐으로써 우리에게  말하는 이 시대의 소설 윤리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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