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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겁쟁이 공작새 Dec 05. 2019

깊은 흉터를 사랑하는 법에 대하여

철지난 영화리뷰 -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

철지난 영화리뷰 -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

※철지난 영화이기에 스포일러 상관없이 썼습니다. 스포일러가 싫으신 분들은 뒤로가기를 누르시거나 영화가 영화관에 있을 때 제 때 보고 오세요


향수(鄕愁)를 뜻하는 영단어 '노스텔지어Nostalgia'는 그리스어로 '과거로부터의 상처'라는 의미를 어원으로 한다고 한다. 과거에서 오는 상처는 이미 깊이 박혀 지울 수 없는 흉터다. 우리는 흉터 때문에 가끔 찌릿한 통증을 느끼기도 하고, 혹은 흉터를 보며 이미 지난 과거로 되돌아가기도 한다. 흉터는 상처이자 과거를 향하는 도화선인 것이다. 

흉한 상처를 유머로 극복하는 것은 분명 대단한 일이다

과거의 흉터를 대하는 방법은 사람마다 다르다. 누군가는 흉터가 등이나 허벅지처럼 보이지 않는 곳에 있어 인지는 못하고 가끔씩 느껴지는 통증만으로 흉터를 인식한다. 누군가는 흉터 그 자체를 받아들이곤 그대로 둔다. 그리고 누군가는 흉터 위에 커버링 타투를 새기고는 과거의 상처가 상처로만 남지 않게 적극적으로 변화시킨다.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는 흉터 위에 타투를 새기는, 그런 영화다.  


나는 기본적으로 시대극을 좋아하는 편이다. 이동진 평론가가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에 남겼던 한 줄 평처럼, 시대극을 보고 있자면 살아본 적 없는 시대에 대한 향수가 느껴진다. 특히 그 중에서도 현대의 시작이면서도 현대와는 분명히 다른, 6080년대에 대한 이야기를 보고 있자면 애틋한 기분, 이제는 느끼지 못할 낭만에 대한 멜랑콜리를 느끼곤 한다.  이 영화는 바로 그 시대를 살아가던 두 남자와 한 여자, 그리고 그 시대를 바라보는 영화 감독의 이야기다. 


샤론 테이트, 비극의 여주인공. 그녀를 알게 된 건 못해도 십 년 전쯤 서프라이즈에 나온 사연을 보면서였다.  광신도, 임산부, 착각, 우연이라는 온갖 비극적 요소가 그녀의 죽음으로 형상화된 듯 해 보였고, 당시 어리던 내겐 큰 충격이었다. 그래서 이 영화가 나온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도 쉽사리 영화의 배경인 사건에 대해 기억을 떠올릴 수 있었다. 이 비극은 히피문화의 몰락을 가져왔고, 미국인들의 큰 흉터로 남았다.  


하지만 감독은 이 커다란 흉터를 다루면서도 흉터를 영화에 중심에 두지 않는다. 오히려 저 멀리 보이는 배경 정도에 불과하다. 샤론 테이트는 극의 주연 두 명과는 극 마지막 직전까지 아무런 접점도 없이 혼자만의 이야기를 진행한다. 파티에 가 친구들과 즐기고, 영화관에서 자신의 영화를 보는 관객들의 반응에 기뻐하며, 임신에 우울해하는 사랑스런 여인의 이야기를 말이다. 그렇다고 그녀의 이야기가 영화 자체에서 완전히 붕 떠있는 것은 아니다. 그녀라는 배경무대가 있기에 관객들은 릭 달튼과 클리프 부스라는 가상의 인물들을 받아들이고 자연스레 '가상의' 60년대에 빠져들게 된다.  


퇴물이라 하기엔 여전히 간지가 철철 넘치는 두 형님. 하지만 많이 늙은 게 보여 서글펐다


늙어 퇴물이 된 배우와 배우 전용 비서처럼 살고 있는 스턴트맨. 이 둘은 퇴물이다. 그나마 릭 달튼은 자기 부둥부둥 띄워주는 클리프라도 있지, 클리프는 뭔가? 사실상 배우가 되기란 요원한 일이고, 제작자들에게는 찍히기까지 했다. 이 릭과 클리프의 관계는 분명 일반적인 영화에서 나오는 파트너십 관계와는 전혀 다른, 굉장히 특이한 관계다. 배우와 스턴트맨이라는 비즈니스적 관계라 하기엔 달튼은 부스를 집사 마냥 부리고 있다. 그러면서도 그를 진정한 친구로 여긴다. 이 설정만 봤을 땐 영화 좀 봤다 하는 관객들은 부스가 달튼에게 열등감을 가지고 있거나 둘 사이에 갈등이 촉발될 거라고 생각을 할 것이다. 그런데 그런 일은 없다. 부스는 달튼을 정말 전적으로 지지해주는 친구의 역할이다. 이게 뭐야, 대체? 어떤 식으로 전개가 되는 거지? 그리고 샤론 테이트는 뭐야? 수많은 관객들의 혼란과 함께 60년대의 하루는 흐르기 시작한다.

히피들과의 대치는 총 든 서부극 이상의 긴장감을 이끌어냈다

샤론 테이트라는 흉터로 생성된 가상의 과거 속에서, 달튼은 좌절과 재기의 하루를 보내고, 부스는 권총없는 서부극을 찍는다. 달튼은 오랜만에 하는 영화촬영에 초반에는 대사를 잊고 절기도 하지만 이내 자신감을 되찾고 스스로 감탄할 연기를 선보인다. 반면 부스는 끝까지 스턴트맨으로 남는다. 


배우와 스턴트맨. 관객이 보는 얼굴과 실제로 액션을 하는 사람. 이 낯선 관계는 영화 연출에서도 메타적으로 다루어진다. 과거 이소룡을 그린호넷의 사이드킥 케이토라고 놀린 부스였지만, 아무리 이소룡이 영화 상에서 우스꽝스럽게 나올지언정 그는 전설이 되었다. 그러나 부스는? 케이토의 역할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아니, 케이토는 이름이라도 남았지 그는 사람들이 존재조차 모를 스턴트맨이다. 설령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의 액션씬 대부분이 부스의 차지일지라도, 배우로 이름을 날리는 것도, 테이트와 친교를 맺는 것도, 가장 클라이막스인 화염 방사기 장면을 가져가는 것까지, 영화의 플롯과 연출은 의도한듯이 달튼을 주인공으로 내세운다. 스턴트맨은 조용히 얼굴을 배우에게 넘겨주고 물러날 뿐이다.  이 둘의 관계가 타란티노 본인과 영화의 관계를 은유적으로 표현한 것이란 말이 있지만, 필자는 타란티노라는 개인에 대해선 아는 게 없으므로 이상의 해석은 넘어간다.  


다시 돌아와, 샤론 테이트 살인사건이라는 흉터를 뒤덮은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라는 이름의  커버링 타투를 보자. 타투는 썩 짜임새가 꼼꼼하게 보이진 않는다. 오히려, 다소 조악한 색감과 구도로 보이기도 한다. 타투 자체로만 보면 영 떨어지는 모양새다. 심지어는 타투 자체만 봤을 때는 대체 뭘 말하고자 하는 건지 이해가 안 가기도 한다. 하지만, 커버링 타투는 흉터와 함께 봤을 때 그 멋이 더해진다.  감독은 찌르는 고통이 아닌 짜릿함으로 타투바늘을 흉터 위에서 놀린다. 흉터의 가장 흉한 부분을 흉하기에 멋있는 부분으로 바꾸어 놓는다.  


이 영화를 본 대부분의 관객들은 테이트 사건을 알고 영화관에 들어섰을 것이다. 감독은 이 점을 기가 막히게 이용한다. 사람들은 한치 앞도 알 수 없는 미지에 대한 두려움에는 익숙하지만 다가오는 비극을 바라보기밖에 할 수 없는  기지(旣知)에 대한 두려움은 익숙하지 않다. 극이 행복으로 흘러갈 수록 기지의 두려움은 더욱 커진다. 피할 수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감독은 언제든 비극이 일어날 듯한 화려한 분위기를 조성하며 영화를 끌고 간다. 그리고 기지의 불안이 극에 달했을 때, 타란티노는 본인이 가장 잘할 수 있는 방법으로 영화의 클라이막스를 터뜨린다. 일어나야 할 비극이 일어나기는 커녕 오히려 통쾌하게 뒤엎어지는 것이다. 깊고 짙었던 흉터는 타란티노의 거친 손놀림으로 커버링 된다. 타투가 조금 못생기면 어쩌랴. 그 짜릿함과, 상처를 이겨냈다는 승리감이 이리도 통쾌한데.








하지만, 역시 흉터는 없어지지 않는 상처다. 타투를 새긴 처음엔 멋드러지게 변한 흉터를 보며 기뻐하지만, 이내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원래의 몸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아무리 영화를 통해 통쾌한 복수를 했을지라도, 샤론 테이트는 바꾸지 못할 흉터다. 영화 속에서 달튼은(사실상 부스가 다 한 거지만) 침입자들을 모두 물리치고나서 선망하던 샤론 테이트와 만나게 된다. 완벽한 승리와, 성공의 결말이다. 그러나 승리의 모습에 깔리는 배경음악은 쓸쓸하기 그지 없다. 노스텔지어, 과거로부터 오는 상처와 같은 쓸쓸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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