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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리고 Dec 05. 2022

늦가을 모악산에서

산림청 선정 100대 명산 산행기 제95화 모악산

가을이 갔다.

화려했던 가을이 갔다.

어디로 간 것일까?

세월도 가고, 꽃도 가고, 나무도 가고, 구름도 가고, 사람도 간다.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가는게 세상 이치다.

오직 간다는 것만이 진리인 것처럼...



오늘은 모악산을 오른다.

모악산에 오르기 위해서 금산사 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산길에 들어서자 친절한 이정표가 자세하게 안내를 하고 있었다.

항상 이런 이정표 앞에서는 우리 인생에게도 이처럼 친절한 이정표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하곤 한다.



모악산 산행은 금산사 오른쪽 돌담을 끼고 올라야 한다.

아름다운 운치를 뽐냈을 그 절마당 돌담길 단풍도 어느새 대부분 지고 없다.

이제 그 고운 단풍들은 나뭇가지보다 길가에서 마지막 색감을 뽐내고 있었다.



금산사에서 5분여 만에 청룡사 삼거리를 지나간다.

여기서 모악정 방향으로 올랐다가 청룡사 방향으로 내려올 예정이다.



보물 제 24호 김제 금산사 혜덕 왕사 탑비

청룡사 삼거리에서 모악정 방향으로 100m쯤 진행하자 부도군이 나왔다.

예사롭지 않은 부도군 같아서 가까이 가본다.

역시나 보물급 유물이다.

1,111년에 세워진 것으로 알려진 탑비에는 글씨가 새겨져 있었으나 육안으로는 거의 보이지 않을 정도로 천년 세월의 비바람에 닳아 있었다.



아직은 넓은 마을길.

길가 가로수의 늦 단풍이 꽃처럼 예쁘다.



마을길이 끝나고도 길은 밭길이었다가 대나무 숲길이 었다가 삼나무 숲길로 이어지고 있었다.

금산사에서 1km가 넘는 동안 이런 길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고나서야 본격적인 산길로 접어들었다.

그 산길 옆으로는 적당한 수량의 계곡이 나란히 하고 있다.



그 계곡의 작은 폭포를 이루며 졸졸졸 흘러내리는 물소리가 너무 크지도 않고 너무 작지도 않아서 정겨웠다.



계곡의 대부분은 바위와 큰 돌들로 이루어져 있다.

그 바위와 돌 사이를 굽이치고 떨어지고 튕겨나가는 물소리가 참 아름다운 소릿길이었다.

작은 폭포인양 흐르는 모양도 이쁘고 소리도  청아해서 마치 신비한 악기에서 흘러나오는 자연의 음악 같은 물소리를 들으며 걸을 수 있는 길이었다.



그 호젓한 소릿길을 천천히 걷다보니 어느새 모악정이 나왔다.

새참도 먹을 겸 잠시 쉬어간다.

새참으로 먹는 샌드위치 냄새를 맡았을까?

무슨 새인지, 손가락만큼 작은 새들이 아름다운 소리를 내며 모여든다.

아무튼 덕분에 물소리 새소리를 들으면서 새참을 먹었다.



평일이어서 일까?

호젓한 산길에는 오직 우리 두 부부뿐이다.



산은 어느새 올 한 해를 깨끗하게 정리하고 겨울 채비를 마친 모습을 하고 있었다.

모진 한파를 견디며 또 내년을 준비할 태세를 갖춘 것이다.



산행시작 후 50여분만에 케이블카 승강장을 지나간다.

금산사에서 2.2km를 진행한 상황, 이제 정상까지는 2.6km가 남았다.

케이블카 승강장을 지나면서는 계곡도 멀어지고 본격적인 급경사 구간이 시작되는 지점이기도 하다.

그렇게 고도를 높여가면서 대부분의 등산로는 이제 계단으로 이루어져 있다.

고난의 행군이 시작되는 지점인 셈이다.



떨어지지 않고 나뭇가지에 그대로 말라 붙어있는 단풍잎이 햇볕에 반사되어 단풍처럼 아름답다.

그사이 길은 잠시 꺾이는 듯하다가 다시 가파른 계단으로 이어지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신선대일까?

그렇게 볼거리 없이 지루하게 이어지던 등산로에 모처럼 정겨운 바위군이 나타났다.

바위군은 위압적이지 않은 작은 바위들이 소나무와 어우러져 천혜의 휴식처를 제공하고 있었다.

쉬고 싶은 곳이었지만 휴식을 취한지 얼마 되지 않아서 그냥 그 유혹을 뿌리치고 오른다.



다시 10분쯤 오르자 끝없이 이어지던 데크 계단이 끝나고 드디어 정상부가 조망되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아직도 500m를 더 올라야 정상이다.

그러나 급경사 구간이 끝나고 능선 구간이라서 그렇게 힘들지는 않은 구간이다.



이제 드디어 정상으로 오른다.

그러나 힘들게 오른 정상이지만 여러 구조물들 때문에 실망스러운 정상 풍경이다.



어느새 깔끔하게 정리된 산 능선의 잔주름이 멋있다.

잎이 무성할 땐 볼 수 없는 산주름.

겨울산에서만 볼 수 있는 특별한 풍경이다.



금산사에서 4.8km, 산행 시작 후 2시간 10분 만에 정상에 섰다.

793.5m의 모악산 정상은 사방을 두루 조망할 수 있는 암봉으로 이루어져 있지만 온갖 통신 시설로 어수선했다.



산행.

여러 가지 이유와 목적이 있겠지만 어쩌면 이 조망을 보기 위해 우리는 오르는 것인지도 모른다.

젊었을 땐 산에 오르는 것을 좋아하긴 했지만 즐기지는 못했다.

산 밑에 도착하면 항상 올라야 할 정상부를 보면서 언제 저길 오르나? 하는 한숨이 앞섰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지금은 아니다.

체력은 나이만큼이나 더 퇴보했겠지만 마음만은 느긋해졌기 때문이다.

등산은 체력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는 지혜를 얻은 것이다.

의지와 끈기, 인내로 하는 것이라는 지혜를 얻은 것이다.

"오르고 또 오르면 못 오를리 없건마는ㅡ" 이란 시조의 한 구절.

그걸 터득하기까지 20여 년이 걸린 셈이다.

그래서 지금은 즐기는 마음으로 한발 한발 앞으로 나아간다.

그러다 보면 쉴 곳이 나오고 능선이 나오고 정상이 나온다.



정상에서 내려와 정상 바로 아래 쉼터에서 점심을 먹고 하산길에 든다.

하산은 남봉을 지나 배재에서 청룡사를 거쳐 다시 금산사로 갈 요량이다.



정상에서 300m쯤 내려갔다 다시 올라선 남봉이다.

높이는 낮지만 어수선한 정상보다 분위기가 더 좋다.

여기도 역시 친절한 이정표가 가야 할 길들을 안내하고 있다.

나는 신선바위를 지나 다시 금산사 방향으로 진행할 예정이다.



남봉에서 본 가야 할 방향에 있는 전망대다.



모악산의 이름 유래는 원래 고려사에는 금산이라고 기록되어 있었다고 한다.

크다는 의미의 엄뫼, 즉 큰 뫼라고 부르던 '큰'이 금으로 음역 되고 뫼가 산으로 의역되어 금산이라 불렸다고도 하고 사금이 많이 나와서 금산이라 부르게 되었다고도 한다.

그래서 김제,금평,금구등 이 지역의 이름과 맥을 같이 한단다. 



또 다른 유래는 정상 남쪽 아래 천 길 낭떠러지를 이루며 길게 솟은 쉰길 바위의 모습이 마치 어머니가 아이에게 젖을 물리고 있는 형상이라 해서 엄뫼 , 즉 어머니의 산이라 부르게 된 것을 한자로 바꾼 것이 모악산이라고 한다.



가야 할 능선이다.

저 아래 장근재를 지나 배재에서 금산사로 내려갈 예정이다.



겨울 채비를 완벽하게 끝낸 산줄기다.

이맘때는 그동안 화려한 단풍에 밀려서 존재감이 없던 소나무의 푸른색이 드디어 돋보이기 시작하는 시기다.



하산길에 뒤돌아 본 정상 모습이다.

오늘의 마지막 조망이기도 하다.

이제 여기서부터는 조망없는 능선길을 걸을 걸어야 한다.



이제 온통 회색의 숲길을 걷는다.

푸른 것은 오직 산죽뿐이다.



굴참나무.

숲은 대부분 참나무로 이루어져 있다.

그중에서도 특히 굴참나무가 많았다.

여기서 잠깐 굴참나무에 대해서 알아보자.

굴참나무는 신갈나무, 떡갈나무, 갈참나무, 졸참나무, 상수리나무 등과 함께 '참나무'라 불리는 나무 중 하나다.

껍질의 골이 깊어서 골참나무, 즉 '굴참나무'라 부르게 된 대표적인 참나무다.

껍질은 코르크의 일종이라고 한다.

그래서 2차 대전 끝무렵에 일본군이 우리나라 굴참나무에서 껍질을 채취해가는 만행을 저질렀다고 하는 나무이기도 하다.

뿐만 아니라 보온성이 뛰어나 '굴피집'의 지붕으로 쓰이기도 했다.



낙옆이 바스락거리는 능선길을 얼마나 걸었을까?

50여 분 만에 배재에 도착했다.



배재에서 청룡사 방향으로 능선을 벗어나 내려선다.

여기서부터는 급경사의 비탈길에 산객이 많이 다니지 않아서 길마저 좋지 않다.



그렇게 20여분 가파른 너덜길을 내려서자 비로소 완만한 산길이 나왔다.

아직도 갈길은 멀지만 워낙 음습하고 거친 내리막길을 벗나났기때문에 마치 산행이 끝난 기분이다.



겨울 모드에 접어든 윗쪽과는 달리 산 아랫쪽은 아직 늦단풍이 군데군데 마지막 정렬을 불태우고 있다.



늦가을 정취를 느끼며 10여분 걸어내려오자 청룡사 입구가 나왔다.



그리고 청룡사 입구에 도착하면서 길은 아스팔트 길로 바뀌었다.

여기에서 청룡사는 다시 조금 올라가야 해서 그냥 패스하고 바로 금산사를 향해서 간다.



대부분 잎이 진 나무에 칡넝쿨 잎이 홀로 아름답다.

사실 칡넝쿨은 숲을 황폐화시키는 주범이기도 한데 아무튼 오늘은 홀로 아름답다.



청룡사에서 금산사까지는 1.6km나 된다.

그래도 산골의 늦가을 정취를 즐기며 내려서는 발걸음이 가벼웠다.



오후 2시 50분, 금산사에 도착했다.

오후의 햇살을 받은 금산사 돌담의 단풍나무가 마지막 붉은 정열을 불태우고 있다.

아침 풍경과는 전혀 다른 풍경이다.



이제 시간적인 여유가 있어서 곧바로 금산사 절마당 구경을 한다.

아니 금산사 구경을 위해서 산행코스와 시간을 그렇게 계획한 것이다.

금산사는 서기 600년에 창건된 천년고찰이다.

국보 제62호로 지정된 미륵전을 비롯한 여러 점의 보물과 문화재가 있는 대사찰이다.

그래서 모악산 산행을 계획한다면 금산사를 함께 둘러보는게 정석이다.



*산행코스: 금산사 ㅡ모악정 ㅡ정상 ㅡ남봉 ㅡ장근재 ㅡ배재 ㅡ청룡사 ㅡ금산사(총10.3km, 점심, 사진촬영 포함, 보통걸음 4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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