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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리고 Dec 23. 2022

꽃보다 단풍ㅡ내장산 서래봉

산림청선정 100대 명산 산행기 제73화 내장산 2 

★The buck stops here. (여기서 책임진다.)

모든 책임은 내가 진다.

바이든 대통령이 정상회담 후 윤석열 대통령에게 선물한 명패에 쓰인 글귀라고 한다.

바이든은 그때 이미 윤석열 대통령에 대해서 알았다는 것일까?

아무튼 바이든이 절묘한 선물을 한 셈이다.



이태원에서 158명의 청춘이 죽어간 암울하고 슬픈 날들이지만 자연은 우리에게 잘 헤쳐나가라는 듯 더 밝고 더 화려함을 선사하고 있었다.



먼저 다녀온 지인이 내장산 단풍 소식을 전해준다.

한마디로 "역시 단풍은 내장산이라고..."



그래서 화천의 용화산 산행 계획을 철회하고 새벽 일찍 내장산으로 향했다.




단풍철 내장산에 가기 위해서는 극심한 교통혼잡은 통과의례다.

그래서 교통체증과 주차난을 피하기 위해 새벽길을 달려서 아침 7시 30분에 내장사주차장에 도착했다.

그래도 가까운 공용주차장은 벌써 만차다.

할수 없이 사설 주차장에 10,000원을 선불로 내고 바로 산행을 시작했다.

그런데 조금 올라가자 다시 입장료 4,000원을 받는다.

어느 국회의원이 그 문제를 국회에서 꺼냈다가 홍역을 치른 그 문제의 문화재 관람료다.

종교 앞에서는 왜 법도 기를 펴지 못할까?



단풍철 내장사 들어가는 방법은 두가지다.

셔틀버스를 타고 가든지 걸어서 가든지 둘중에 하나를 택해야 한다.

단풍 구경을 왔다면 당연히 걸어야 제 멋이 아닐까?

내장사 진입로는 내장산과 절을 통틀어서 단풍 구경에 최적화 되어있는 구간이기 때문이다.



이 길을 차로 휙 지나간다고 생각해보자.

얼마나 바보짓인지.



우화정다.

역시 셔틀버스를 타면 볼 수 없는 내장사로 들어가는 중간쯤에 있는 정자다.

정자에 날개가 돋아나서 승천을 했다는 좀 황당한 전설이 있는 정자다.

사진 명소 중 한곳인데 어찌 된 영문인지 주변의 단풍은 벌써 다 지고 없어서 좀 황량했다.



꽃보다 아름다운 단풍길을 걸어서 일주문 앞에 섰다.

여기에서 일주문을 지나 직진하면 정상인 신선봉으로 오르는 내장사로 통하고 옆길로 올라가면 서래봉으로 오르는 벽련암으로 통한다.

우리 부부는 서래봉 산행을 위해서 벽련암으로 향했다.



이제 벽련암으로 오르는 길에 들어섰다.

꽃일까?

단풍일까?

여기도 어느곳을 보아도 화사하다.



붉은색의 향연이 펼쳐지고 있는 숲은 마치 불타는듯 했다.

지금까지 보았던 진입로의 단풍과는 또다른 풍경이다.



그런데 어느 순간 왠지 손이 허전했다.

화려한 단풍에 정신이 팔려서인지 등산용 스틱을 화장실에 놓고 온 것이다.

벌써 2km 넘게 올라왔으니 다시 돌아갈 수도 없고 난감했다.

꼭 있을 거라는 확신만 있어도 다시 돌아갈 텐데 그 확신이 없어서 그냥 포기하고 산행을 계속했다.



그래도 최고 좋다는 제품인데.

아무튼 등산 스틱을 벌써 몇 번째 잃어버린지 모르겠다.

화장실에만 두고 온 것도 두 번째다.

한 번은 아들과 함께 지리산 종주하다가 벽소령 부근에서 사진 찍느라고 잠깐 놓았다가 깜빡하고 그냥 진행하고 말았다.

그렇지만 다행히 얼마 지나지 않아서 생각이 났지만 돌아가보니 벌써 누가 가져가고 없었다.

그래서 1박 2일 종주하는 동안 고생을 많이 했었는데 오늘 또 그지경이 되고 말았다.

사진에 정신이 팔려서 그렇기도 하겠지만 나는 망각쟁이인건 틀림없다.




이제 벽련암 경내로 들어선다.

여기도 어김없이 단풍이 절정을 이루고 있다.



벽련암 대웅전이다.

벽련암은 서래봉 밑에 자리하고 있는 아름다운 절마당으로 유명하다.

사실 유명세는 내장사가 타고 있지만 절마당의 운치로 치면 그에 못지않은 암자다.

저 뒤쪽으로 오늘 올라야할 서래봉이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다.



벽련암은 중앙에 대웅전이 있고 양 옆으로 전각들이 정확한 대칭을 이루며 배치되어 있다.

벽련암은 원래는 벽련사였다고 한다.

백제 의자왕 20년 유해 스님이 세웠다고 하는 절이다.

이후 추사 김정희가 벽련사로 바꾸어 부르고 현판을 써서 걸었으나 한국전쟁 때 소실된 후 언젠가부터 벽련암으로 격하되어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벽련암 경내에 있는 아름다운 단풍나무다.

무려 310여 년이 되었다고 한다.

그런데도 아직 튼실하다.



벽련암은 여러번 다녀갔던 곳이기때문에 간단하게 경내를 둘러보고 서래봉을 향해서 본격적인 산행을 시작했다. 



서래봉으로 오르는 등산로는 벽련암을 오른쪽으로 돌아서 가파르게 나 있다.

등산로 주변은 대략 수백 년쯤 되어 보이는 굴참나무와 떡갈나무, 서어나무 등이 즐비한 천연의 숲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서래봉 오르는 중간에 있는 석란정 터다.

주변에 석란이 많아서 그렇게 불렸지만 이름과는 달리 역사적 의미가 있는 곳이다.

조선말 유림들이 모여서 명성황후를 추모하는 제사를 지내고 원수를 갚을 것을 맹세했던 곳이라고 한다.

일본 놈들의 만행에 일부 애국자들이 이렇게 울분을 토하고 있을 때 매국노들은 자기 배 불리기에 혈안이 되어 있었을 것이다.

그 친일 잔재들의 후손들은 지금도 대부분 부유층으로, 정부 고위층으로 정치와 사회는 물론 경제까지 주무르고 있다.

우리가 정치와 사회 문화부문에서는 그나마 많이 청산하기도 했지만 경제에서는 아직도 전혀 그렇지 못하고 있는게 현실이다.

돈 앞에서는 작아지는 인간의 속성때문이다.



석란정을 지나면서 등산로는 급격하게 경사도가 높아지고 거칠어졌다.



등산로는 그렇게 거칠고 가파르지만 주변의 아름드리나무들의 향연은 계속되었다.

저렇게 거칠고 척박한 산비탈에서 어떻게 저리 튼실하게 살아냈을까? 

아무튼 얼마나 힘든지 중간에 만난 나이 지긋한 산객 두분이 정상이 얼마나 남았는지 물어본다.

그래서 조금만 더 올라가면 된다고 힘을 내시라고 했더니 그래도 도저히 안되겠다고 그만 되돌아 내려간다고 한다.

사실은 그렇게 말은 했지만 나도 한 두번쯤 오른 길이지만 오래 되어서 얼만큼 남았는지 모를 일이었다.



그렇게 벽련암에서 30분쯤 힘들게 오르자 암벽을 오르는 데크가 나오고 조망이 일품인 바위가 나왔다.

첫 조망을 할 수 있는 이름없는 암봉인 셈이다.



조금 전에 둘러봤던 벽련사가 형형색색의 단풍 속에 파묻혀 있는 풍경이 장관이다.

천혜의 길지에 자리 잡은 벽련사.

이보다 아름다운 절마당이 또 있을까?

이보다 아늑한 절마당이 또 있을까?

없던 신심도 저절로 솟아오를 듯 한 절마당 풍경이다.

말 그대로 오색단풍의 바다다.

마치 황금알이라도 품은 고깔 둥지 같은 풍경이다.




그 전망바위 바로 앞에 있는 이름모를 작은 암봉이다.

이제 막 가을이 지나간 늦가을 풍경을 연출하고 있는 모습 또한 아름다웠다.



첫 조망점에서 바위 뒤쪽으로 돌아서면 바로 정상에 다다를 것 같지만 다시 가파르게 내려갔다 올라가야 비로소 서래봉 정상으로 오를 수 있었다.

그래서 생각보다 힘든 구간이었다.



그렇게 끝이 없을것 같은 철계단을 올라 마침내 서래봉 정상에 섰다.

벽련암에서 50분 만이다.

아래에서 보았던 서래봉의 위용과는 전혀 딴판의 좀 초라해 보이는 정상의 모습이다.

그런데 앙증맞은 정상석이 인상적이다.

어찌 보면 거창한 정상석보다 자연스럽고 멋스러운 것 같기도 한 정상석이다.




서래봉이라는 이름의 유래는 서역(西域)에서 온 달마대사가 내장산에서 입산수도하였다는 전설에서 ‘서래봉(西來峰)’이라 부르게 되었다는 설과 봉우리의 모습이 논을 고르는 농기구 써레와 비슷하다 하여 써레봉이라 불리다가 순화되어 서래봉이 되었다는 설이 있다고 한다.

두가지 모두 그럴싸하다.



서래봉에서 본 내장산 주 능선이다.

지금 내가 서있는 서래봉을 깃점으로 오른쪽부터 불출봉, 망해봉, 연지봉, 까치봉, 최고봉인 신선봉,  연자봉, 장군봉으로 이어지며 타원을 그리고 있다.

원래 오늘 계획은 최고봉인 신선봉까지 오르고 내장사로 하산할 생각이었지만 중간에 갑자기 작은아버님께서 작고하셨다는 소식을 받고  불출봉까지만 진행하고 원적암으로 하산하기로 계획을 변경했다.



그리고 서래봉에서 본 벽련암과 내장사 전경이다.

오른쪽이 내장사, 왼쪽이 벽련암이다.

마치 오색 찬란한 비단이불을 펼쳐놓은 듯하다.



높이가 624m인 서래봉은 내장산의 8개 봉우리 중 가장 풍광이 뛰어난 봉우리다.

뿐만 아니라 나머지 모든 봉우리를 조망할 수 있으며 내장사와 벽련암은 물론 내장저수지와 정읍시내까지 조망할 수 있는 천혜의 정상으로서의 조건을 갖추고 있는 봉우리다.

그 조망을들을 앞에 두고 서래봉 정상에서 점심을 먹는다.

점심은 오늘도 아내표 최고급 샌드위치다.



점심을 먹고 서래봉을 내려와 불출봉을 향해서 간다.

이 구간이 내장산 산행의 최고의 난코스 중 한 곳이다.



거의 중턱까지 내려왔다가 다시 올라가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도 대부분 계단을 설치해 놓아서 산행은 안전하게 할 수 있다.



내장저수지 방향에서 올라오는 길과 만나는 삼거리까지 내려왔다가 용출봉을 향해서 다시 올라가는 길이다.

길은 여기서 잠시 흙길로 이어지다가 다시 가파른 돌계단으로 바뀌었다.



서래봉에서 20여 분 만에 다시 능선에 올라섰다.

암봉타는 재미가 있는 제법 까칠한 능선이다.

그 까칠한 능선을 오르내리다보면 작은 전망대가 나온다.

내장산 주 능선과 아름다운 내장저수지를 조망할 수 있는 전망대다. 



전망대에서 본 내장저수지다.

전에는 그냥 평범한 저수지였는데 어느새 주변을 관광지로 조성을 해놓아서 풍경이 제법 아름답다.



다시 뒤돌아 본 지나온 길이다.

방금 전 지나온 작은 전망대가 보이고 그 너머로 서래봉이 고개를 내밀고 있다. 



이제 불출봉 정상으로 오르는 마지막 계단을 오른다.



그리고 서래봉에서 40 여분만에 불출봉 정상에 섰다.

비록 40여분의 산행이지만 워낙 오르내림이 심해서 의외로 힘든 구간이었다. 



다시 불출봉에서 본 서래봉 방향이다.

내가 걸어온 길이기도 하다.

불출봉은 619m의 암봉으로 정상 바위 아래 불출암이 있어서 불출봉으로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불출봉 정상도 사방이 확 트여서 조망이 일품이다.

그래서 운해 감상에 적격이라고 한다.

그 불출봉에서 보는 운해를 '불출운해'라 부른단다.



내려가야 할 원적사 방향이다.

단풍든 은행나무가 마치 금빛을 발산하는듯 하다.



그리고 망해봉, 까치봉, 연지봉, 신선봉으로 이어지는 종주능선길이다.

원래 계획했던 길인데 일정상 여기서 원적사 방향으로 하산한다.



불출봉에서 하산 시작 후 5분 만에 만나는 불출암지다.

고려 광종시대인 975년에 하월선사가 이곳 천연 동굴을 이용해서 암자를 짓고 기도했다고 한다.

그렇게 천년을 이어오던 암자가 6.25 한국전쟁 때 불타버렸다.

아무튼 우리 인류사 문화유적의 대부분은 자연재해에 의해서보다 결국 침략과 전쟁에 의해서 더 많이 죽고 파괴 된다.



불출봉에서 500m쯤은 가파른 내리막길로 이어지다가 다시 비교적 완만한 흙길로 바뀌기를 반복 했다.



그러는사이 숲의 분위기도 화사해 졌다.

다양한 수종이 혼재한 단풍이 절정을 이룬 구간에 들러선 것이다.

잠시 원적암까지 이어지는 단풍숲 삼매경에 빠져 걷는다.



단풍숲 구간이 끝나고 원적암이 가까워질 무렵 수백 년 된 비자나무 군락지가 나왔다.

이곳에는 무려 300~500년 된 비자나무가 30여 그루 자생한다고 한다.

비자나무는 많은 곳에 쓰이지만 특히 비자나무 바둑판을 최고로 친다.

복원력이 좋아서 바둑알을 탁 놓으면 약간 들어갔다 서서히 나올 정도라고 한다.



개인적으로는 그보다도 비자 열매의 맛이 그립다.

어렸을 때 어머님께서 고향의 불회사라는 절에 가끔 다니셨는데 절에서 오시면서 가져오시는 비자 열매의 고소한 맛을 잊을 수가 없어서다.

지금 미국에서 들어오는 아몬드는 비교가 안 되는 고소한 맛이었다.

그런데 지금까지 그 비자 열매는 어디서도 볼 수가 없었다.



원적암이다.

고려시대인 1086년에 적암대사가 창건한 암자로 당시에는 7칸이나 되는 웅장한 규모였다고 한다.

그러나 이 암자도 한국전쟁 때 불타고 말았다.

현재의 암자는 1961년 법명 스님이 복원했다고 하지만 고즈넉한 암자 분위기는 찾을 수가 없는 모습을 하고 있다.

아무튼 다른 부자 절들에 비해서 초라해서 안타깝다.

종교에서도 부익부 빈익빈 현상은 어쩔 수 없는 듯하다.



불출암 정상에서 보았던 원적암 앞에 있는 은행나무다.

황금빛을 방불케 하는 노란단풍을 뽐내고 있다.



원적암을 지나 원적암 입구까지는 화려한 애기단풍길이다.



애기단풍이 꽃처럼 아름답다.

아니 꽃보다 아름다웠다.

그 꽃보다 아름다운 애기단풍 숲을 20여분 걸어 내려오면 나오는 원적암 입구다.

극락세계가 있다면 저런 색감일까?

마치 불국의 극락세계로 들어가는 문 같다는 생각을 해본다.



꽃나무 같은 애기단풍나무다.



이제 사실상의 등산이 끝나고 쉬엄쉬엄 단풍놀이를 하는 구간이다.

이렇게 내장사까지 1km쯤 단풍길이 이어진다.

황홀하리만큼 화사한 단풍길이다.

여기서 잠시 단풍놀이를 해 보자.



그렇게 화사한 단풍길을 걸어 내장사에 도착했다.

여기도 가장 먼저 반겨주는 건 역시 화사하고 아름다운 단풍이다.



어느 유명 화가인들 이보다 화려한 그림을 그려 낼 수 있을까?

어느 유명 시인인들 이 화려한 색감을 글로 표현할 수 있을까?

어느 유명 사진가인들 이 화려함을 고스란히 담아낼 수 있을까?



말 그대로 화려함의 극치였다.

색의 향연이자 붉음의 향연이었다.




이제 그 화려함의 절정을 향해서 가는 내장사 경내로 들어간다.



내장사 절마당은 입추의 여지없이 가을로 가득 차 있었다.

그리고 그 나머지 공간은 울긋불긋 사람이 채우고 있다.

말 그대로  울긋불긋 형형색색 만추의 진수를 보여주고 있었다.



그런데 한 곳만이 썰렁하다.

절마당의 가장 중심인 곳.

대웅전이 있던 자리이다.

수년 전 대웅전이 불타는 모습이 tv에 생중계되었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때 어느 스님이 불만을 품고 방화를 했다는 뉴스를 접하고 다시 한 번 종교에 실망을 했었다.



내장사는 백제 의자왕 20년(660년)에 환해가 창건한 절이다.

원래는 현재 벽련암 자리에 있었다고 한다.



평일인데도 워낙 사람이 많아서 사진 놀이를 포기하고 그냥 눈으로만 감상하고 나와야 했다.



사실 내장산의 단풍은 산 자체의 단풍도 아름답지만 내장사에서 주차장까지의 단풍길이 최고다.

이제 그 단풍길을 걸어 나간다.

잠시 내장사 단풍을 감상해 보자.



그렇게 꽃보다 아름다운 단풍터널을 걸어 주차장에 도착했다.

내장산의 산 이름 유래는 원래 내장사의 옛 이름인 영은사의 이름을 따서 영은산이라고 불리었다.

그러다가 산 안에 숨겨진 것이 무궁무진하다 하여 내장(內藏) 산이라고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최고봉인 신선봉이 763m로 그렇게 높은 산은 아니다.

그렇지만 봉우리가 9개나 되기 때문에 난이도가 제법 높은 산중에 하나다.

그래서 대부분 조망이 가장 뛰어난 불출봉을 주로 오른다.

나도 원래 계획은 종주였지만 오늘은 불출봉 산행으로 마무리를 해야했다.



*산행코스:주차장 ㅡ일주문 ㅡ벽련암 ㅡ서래봉 ㅡ서래약수 ㅡ불출봉 ㅡ원적암 ㅡ내장사 ㅡ주차장(8km 천천히 점심 사진촬영 포함  5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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