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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 Apr 28. 2020

고래랑 세이렌

누우면 1초에 0.001 mm  내려가는 침대가 있었다. 술에 취해 침대에 누워 나는 내려가기 시작했다. 정신 차려보니 이미 흙바닥이다. 흙은 물기를 머금어 축축했다. 고개를 왼쪽으로 돌리자 작은 식물들의 뿌리가 보였다. 아직 괜찮다. 조금  누워있기로 했다. 옷의  부분이 젖었다. 시퍼런 바닷물이 등에 닿는 느낌이 들었다. 피부는 감각이 없어 바닷물이 차거운지 뜨거운지 모르겠다. 조금  눕는다. 이제 바닷물이 뒷머리를 적시고 귀를 적시고, 나는 코만 빼끔 내밀게 되었다. 그래도 일어날 수가 없었다. 조금  눕는다. 손가락에서 출처를   없는 야한 냄새가 난다. 코마저 바다 속으로 들어간다. 편안한 기분이 든다.  옆에는 이제 물고기들이 보인다. 수면 가까이 사는 물고기들은 내가 아는 물고기들처럼 생겼다. 고등어, 참치, 돌고래, 이름 모를 열대어.

어디까지 가세요?” 중반쯤 내려오자 세이렌이 물었다.  이상 빛이 들어오지 않았다. 나는 일어날  없었다. 대답도   없었다. 내가  이렇게 술을 좋아하는지  수도 없었다. 나는   있는 것보다   없는 것이  많은 삶을 살고 있었다. 여러 괴상하게 생긴 바위, 전구를  심해어를 지나 나는 비로소 혼자가 되었다.

침대가 바닥에 닿았다. 어떤 소리도 나지 않았다. 잠시  줌도 안되는 모래가 흩날렸다 가라앉을 뿐이었다. 나는 깊은 숨을 들이마시고 내쉬었다.

사방이 완전히 조용해지자 바다의 소리가 들렸다. 물방울들이 부딪히는 소리, 어딘가에서 용암이 터지는 소리, 고래의 비명소리, 바다는 소란스럽다.

몹시 피곤했다. 가만히 누워있으니 잠이 왔다.   자고 일어나니 내게 아가미가 생겼다.  다리가 합쳐져 인어의 하반신이 되었다. 나는 며칠 전에 만난 세이렌을 만나기 위해 어설프게 꿈틀거리며 다시 위로 올라갔다. 이제 무슨 일이 있어도 다시는 땅을 딛을  없게 됐다고 생각하니 서글퍼졌다. 나는 이제 물고기가 되어버렸고 적당히 아름다운 세이렌을 만나며 바다에서 지내야  운명이 되어버렸다.

세이렌을 만나자 그녀는 나에게 해초같이 생긴 풀을 먹였다. 맛이 지독해 구역질이 나올  같았다. 주변에서 고래의 낮고 웅장한 울음소리가 들렸다. 바닷물의 진동이 느껴졌다. 고래는 계속해서 울며 헤엄쳤고 고래의 날갯짓에 밀려난 물살이  쪽으로 오는  느껴졌다. “당신의 눈을 뽑을게요.” 세이렌이 말했다. 나는 그러라고 했다. “아까 삼킨  때문에 전혀 아프지 않을 거예요.” 그녀는 말을 마치고 아주 천천히, 목욕탕의 고무마개를 빼듯이 조심스럽게  눈을 뽑았다. 뜨끈한 피가 흘러나왔고 피는 차가운 바닷물과 섞였다. 세이렌은 자신의 피부를 길게 뜯어  눈을 감싸고 뒤통수에 매듭을 묶었다. 매듭은 절대 풀리지 않을  같았다. 세이렌의 손은 매우 섬세했기 때문에 눈이 뽑혀나갈  하나도 아프지 않았다. 아니면 정말 아까 먹은 풀이 효과가 있는지도 모른다.

이제 그녀의 노래를 밤낮으로 들을 일만 남았다. 가끔은 고래도 울어줄 것이다. 그렇게 살아가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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