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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흔한여신 Sep 25. 2023

우중산책

비를 맞아도 괜찮아

괜찮지 않은 게 참 많았다


  어린 시절 나는 유독 남들의 눈치를 많이 보며 자랐다. 내 모습이 남들 눈에 어떻게 보이고 평가될지 신경쓰느라 마음 졸였다. 그래서 있는 그대로의 내 모습을 사랑하지 못하고 남들과 비교를 일삼았다. 그런 내 삶은 살얼음판을 걷는 것 같았다. 내내 사람들의 시선이 두려웠고 남에게 쓴소리를 들으면 속으로 끙끙 앓기도 했다. 눈에 띄지 않지만 열심히 세상의 잣대에 맞춰 성실하게 살아가고 있는데 사람들이 그걸 몰라주는 것 같아 서러웠던 거다. 겨우 내 일부분에 대한 평가나 지적일 뿐이었지만 내 존재 자체가 부정당하는 기분이 든 적도 있다. 그 때문에 읽히지 않는 남의 속마음을 알아내려 애쓰기도 했다.


그 동안 꽤 피곤하게 살아왔다.


Photo by Osman Rana on Unsplash


  고등학생이던 어느 날 아침 등굣길이었다. 시내 버스를 타고 다니던 고3 때였다. 당시 학교 스쿨버스가 있었는데 가격이 너무 비싸 부모님께 부담 지우는 게 미안해 2학년까지만 타고 3학년부터는 그냥 일반 버스를 타겠다고 했다. 이 때의 결정을 나는 두고두고 후회했다. 1년 내내 보부상처럼 짐을 짊어지고 다녀야했기 때문이다. 잠이 부족했던 그 시절 나는 일기예보를 챙겨들을 정신이 없었다. 모의고사 일정과 수능 준비로 항상 시간은 빠듯했고 잠은 부족했다. 그 날도 마음이 급했다. 정신없이 가방을 챙겨 나왔지만 곧 비가 올 거라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버스를 탔을 때만 해도 흐리기만 했는데 가는 중간부터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하더니 내릴 쯤 되서는 세차게 비가 쏟아졌다. 등교를 해야했기에 정류장에 도착했을 때 내렸지만 차마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가방엔 책들이 많이 들어 있었고 갈아입을 옷도 없었다.


  그 때 다른 몇몇 학생들도 우산이 없었다. 하지만 그들은 함께 갈 친구가 있었다. 삼삼오오 무리지어 옷가지를 뒤집어쓰고 뛰거나 한 명이 든 우산아래 여럿이 모여 이리저리 기우뚱하며 걸어가기도 했다. 비 오는 정류장에서 나는 아는 이 없이 혼자였다. 지각하지 않으려면 뛰는 수밖에 없었다. 피할겨를도 없이 쏟아지는 비를 맞으며 학교까지 30m쯤 되는 거리를 뛰었다. 멀지 않았지만 짧지도 않았던 그 거리를 열심히 뛰어 학교에 도착하고 보니 볼썽사납게 여기저기가 다 젖어있었다. 안경은 물방울로 뒤덮여 앞이 제대로 보이지 않았고 교복 와이셔츠도 물에 젖어 축축했다. 그냥 재수없는 하루였을 뿐이지만 그 날은 꽤 오랜시간 내 머릿 속에 슬픈 기억으로 남아 있었다. 함께 우산을 붙들고 걷던 사람들 사이에서 혼자 우산 없이 뛰어야 했던 게 창피했고 젖은 생쥐꼴로 등교를 해야했던 게 우울했기 때문이다.


나에게 왜 우산을 챙기라는 말을 해주는 사람이 없었을까. 그게 참 서러웠다.


Max Van Oetelaar, Unsplash


지금은 비가 두렵지 않다


  그런 지금은 비를 잘 맞고 다닌다. 우산 없이 비를 맞아 쫄딱 젖었던 기억 이후로는 비를 지극히 싫어했던 나다. 비 오는 날도 정말 싫었다. 물론 지금도 비 오는 날이 반갑지는 않다. 하지만 혼자 우산 없이 비 맞는다고 크게 우울해하지 않는다. 한 때 나는 비 맞는 게 싫어 맑은 하늘에도 우산을 챙겨들고 나갔다. 일기예보를 놓칠까봐 매일 집을 나서기 전에 검색해 보는 것이 루틴이 되었다. 그토록 철두철미했던 내가 바뀌게 된 것은 자전거를 타면서부터였다. 회사에서 집까지의 거리는 걷기에 꽤 시간이 걸린다. 걸어서 25분 자전거로는 10분 거리. 물론 뚜벅이 생활을 오래했기 때문에 25분쯤 걷는 게 무리가 되진 않는다. 하지만 자전거를 탄 뒤로는 25분이라는 시간이 너무 길게 느껴졌다. 그럼에도 비 맞는 걸 유독 싫어했기에 처음엔 비 오는 날이면 자전거를 두고 걸어다녔다.


  어느 여름 날 퇴근길. 하늘을 올려다보니 조금 애매했다. 출근길엔 다행히 비가 오지 않아 자전거를 타고 왔으나 퇴근 무렵 하늘이 꾸물꾸물한 모양이라 곧 비가 올 것 같았다. 예보를 계속 확인했으나 당장 비가 올 것 같진 않았다. 고민 끝에 다시 자전거를 끌고 나섰다. 그런데 출발한지 한 2분쯤 되었을까. 분명 구름 사이로 해가 나 있었지만 비가 후두둑 쏟아졌다. 하지만 우산을 놓고 온 터라 어쩌지 못하고 비를 맞았다. 이미 나온 이상 최대한 빨리 집에 도착하는 게 비를 피할 유일한 방법이었다. 그 날 처음으로 비를 맞으며 자전거를 탔다. 처음엔 무척 당황스러웠다. 그런데 타다보니 생각보다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시원했다. 누가 내 모습을 알아볼 것도 아니었다. 집에 들어가서 그냥 씻지 뭐. 그런 생각으로 힘차게 페달을 밟았다.


바퀴가 물웅덩이를 가르는 소리가
듣기 좋았다.


Sally Anscombe / Getty Images


비 오는 날도 있는 법이다


  열아홉의 나는 반듯한 모습만을 좋아했지만 지금의 나는 조금 삐뚤빼뚤한 모양까지 포용할 수 있게 되었다. 물론 여전히 쓸데없이 고집스러운 면모가 있지만 전보다 남의 눈치를 보지 않는다. 물론 타인의 시선을 아예 의식하지 않을 수는 없지만 남들의 이야기에 별로 귀 기울이지 않는다. 내가 어떤 평가를 받고 있는지 크게 궁금해하지 않는다. 적당히 눈을 감고 귀를 막고 그렇게 살고 있다. 이렇게 되기까지 아주 오랜시간 마음의 수련이 필요했다. 수 없이 상처를 받아가며 약하디 약했던 내면은 조금씩 단단해져갔고 남들에게 미움받는다 해도 크게 개의치 않는 지경에 이르렀다. 맹세컨대 세상 사람들 모두가 등돌릴 만큼 나쁜 짓을 한 적도 없고 다수에게 손가락질 받을 만큼 못된 성품을 지니지도 않았다는 것을 스스로가 너무 잘 안다.


아주 재수없게 만난 불편한 순간에 마음이 짓밟혀 미래를 제대로 보지 못하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은 없다.


  이제 나는 더 이상 비 오는 날을 '극혐'하지 않는다. 비가 올 것 같다 싶으면 우비를 챙겨 나선다. 물론 우비가 완벽히 비를 가려주는 것은 아니지만 몸이 푹 젖는 건 방어를 해준다. 우비가 닿지 않는 얼굴과 손등 그리고 발목에 쉼 없이 비가 떨어지더라도 괜찮다. 비가 와서 조금은 한적해진 거리에 빗소리를 들으며 페달을 밟는 것에 적응했기 때문이다. 오늘도 저녁에 비가 내렸다. 우비를 깜빡하고 나온 탓에 비를 좀 맞긴 했다. 안경은 물방울로 뒤덮였고 옷과 신발이 좀 축축해졌지만 아무렴 괜찮았다. 늦지 않게 안전히 집에 잘 도착했고 따뜻한 온수로 차가운 빗물을 씻어냈다. 비 맞는 순간은 금방이다. 그리고 주위를 둘러보면 나처럼 비 맞으며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이 꽤 있다. 그래서 나는 더더욱 혼자가 아니다.


아니, 이젠 혼자여도 괜찮다.


https://guideposts.org/faith-prayer-devotions/stories-of-faith-faith-prayer-devoti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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