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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흔한여신 Dec 14. 2023

가볍게 쓰는 일기 12

오늘의 하루를 담다,

격조했다.


별일 없이 지냈다. 글 쓸 생각을 수없이 했지만 막상 손이 움직이지 않았다. 이런저런 주제를 몇 번이고 떠올려봤다. 사실 나는 가장 힘든 순간에 글이 잘 써지는 편이다. 창작의 힘이 고통의 순간에 발휘되는 것이다. 현실이 시궁창일 때 글쓰는 것에라도 마음을 의지해야 살 것 같은 기분이 든다. 하지만 지금은 대체로 평화롭다. 가끔 이 고요함을 깨트리는 불청객이 난입해 힘든 순간을 겪기도 하지만 곧 지나가곤 한다. 그 만큼 단조롭고 조화롭고 고요한 일상을 보내고 있었다. 다소 지겹다하는 생각이 들 만큼. 어딘가에 특별히 마음 쏟을 일도 없고 스트레스는 이제 지병처럼 달고 사는 존재이지만 이전에 겪었던 만큼의 어려움은 없다. 한 때는 안녕하지 못해 하루하루가 힘들었는데 이제는 무력함을 이겨내고 해탈의 경지에 이르른 것 같다.


무소식이 희소식이라는 말처럼
고요히 흘러가고 있었다.


photo by. Rojoy
스스로의 변화를 알아차렸다.


외적인 변화가 있었다. 가장 살이 많이 쪘을 때에 비해 7킬로그램이 빠졌다. 다이어트를 목표로 하고 관리한 것이 아니라 시간이 흐르는 동안 천천히 체중이 줄었다. 이곳저곳에 들러붙어있던 군살도 빠졌고 턱선은 전에 비해 날렵해졌다. 운동을 열심히 했고 간식과 먹는 양을 줄였더니 서서히 몸이 변했다. 태어나서 이렇게 운동을 열심히 한 적은 처음이다. 그 동안 의지박약이라 몇 개월 하지도 못하고 그만둔 전적이 수도 없이 많았는데 이제는 나서서 찾아볼 정도다. 주 3회 발레수업을 듣고 추가로 조금씩 더 운동을 하려고 하고 있다. 레오타드를 입고 거울에 비친 모습을 체크할 때면 더 예쁜 몸매를 만들어보겠다는 사명감에 불타오른다. 좀 더 잘하고 싶은 마음에 더한 작은 노력들이 작은 변화를 가져올 때마다 너무나도 뿌듯하다.


인스턴트는 원래도 즐기지 않았지만 더욱 눈길을 주지 않았고 밥도 한 공기를 꽉 채워먹기보다 반공기 혹은 2/3 공기 수준으로 줄였다. 채소 위주의 식단 혹은 샐러드를 먹으며 지냈다. 하지만 식단과 운동에 집중했던 이유는 체중감량 때문이 아니라 오로지 건강 때문이었다. 오히려 체중감량이 목표였다면 사실 크게 스트레스를 받았을 것 같다. 하지만 체력증진과 건강회복이 목표였기에 부담없이 감량에 성공할 수 있었다. 2020년 하반기부터 대략 1년 반 정도 스트레스가 너무 과다했던 탓에 건강이 매우 좋지 않았다. 피부는 온통 붉은 여드름 자국으로 뒤덮여 있었고 장 트러블도 심했다. 얼굴이 뒤집어 지는데 악영향을 미칠까 기름진 음식을 피하게 됐고 채소 위주로 가볍게 먹기 시작했다. 때론 조금 먹어도체해서 응급실을 찾았다. 사실 먹는 것이 원인은 아니었으나 뭐라도 해야 했다. 한창 어여쁠 나이에 사진 찍는 것조차 두려울 만큼 내 자신은 엉망으로 변해 있었으니까. 그 아팠던 시기가 사실 한창 브런치에 글을 열심히 쓸 때였다.


나는 봄을 기다리는 겨울 씨앗이라고
스스로를 달래던 때였다.


photo by. Rojoy

외형의 변화는 내면에도 큰 반향을 일으켰다. 우울했던 생각은 매끈해진 피부와 달라진 몸매 라인과 함께 조금씩 사라져갔다. 시간이 약이라는 말이 정말 맞았다. 새롭게 구성된 팀원들도 합이 잘 맞아 지금은 회사생활에도 문제가 없다. 이토록 평화로운 순간을 맞으려고 지금껏 고생길을 걸어온 것일까, 다시 한 번 그런 생각을 하게 됐다. 또 얼마 못가 이 고요함도 그칠 때가 오겠지만 지금은 그저 이 순간을 즐기고 싶다. 더 없이 평화롭고 안온한 지금을. 그렇다 보니 막상 글 쓰는 게 어려워졌다. 마음 속이 크게 혼란하지 않은 까닭이다. 하지만 좋은 글을 꾸준히 잊지 않고 남기고 싶다. 어떤 반향이 있든없든 내가 가진 따뜻함을 누군가에게 안겨주고 싶은 게 아주 작은 소망이다.


조금 늦더라도 천천히 나만의 길을 가 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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