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Dear my diary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흔한여신 Jun 02. 2024

가볍게 쓰는 일기 13

오늘의 하루를 담다,

한 동안 별일없이 잘 지냈다


올해는 원하는 바를 다 이루며 살 운명인가 생각했을 만큼 더할나위 없이 평온한 시간을 보냈다. 너무 안온한 일상이라 지루하긴 했지만 그 지루함을 달래려 전보다 더 열심히 발레수업에 참여했다. 지난 한 달 간 업무시간 이후 시작되는 새로운 하루에 열정을 쏟았고 집에 오면 녹초가 되기 일쑤라 다른 걸 할 겨를이 없었다. 마음 속에 별다른 근심 걱정이 없었고 몸은 운동에 에너지를 쏟아부어 지쳐 있었으니 글감이 떠오르기 힘들었다. 새로운 사람들과 조금씩 친분을 쌓아가고 새로운 업무에 조금씩 적응하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벅찼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벌써 6월이 됐다.


어느 새 녹음은 더 우거졌고 내가 가장 사랑하는 계절, 여름이 다가왔다.


갑작스레 자전거를 새로 샀고 안 사기로 그렇게 다짐했건만 여름 옷과 신발도 샀다. 이래저래 신상품들을 구경하다가 쓸데없는 지출이 늘어 카드값의 압박이 심해졌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이미 예상 지출을 초과한 상태라 다시 걱정이 깊어졌다. 소득이 늘지 않으니 소비를 줄여야 되는데 가장 힘든 게 욕망을 제어하는 일이니 그 밸런스를 맞추기 쉽지 않다. 한편으로 살을 빼겠다 다짐하고 다시 샐러드를 주문해 먹고 있지만 다짐이 무색하게도 많이 먹었다. 그 만큼 운동량과 활동량도 늘었지만 그에 비례해 더 먹었다. 움직일수록 배가 고팠고 그 욕구를 참지 않고 음식으로 풀었다. 샐러드만 먹기로 해놓고 단백질을 보충하겠다며 이것저것 더 차려놓고 먹었다. 결국 계획대로 살을 감량하는데는 실패했고 유지하는데 그쳤다.


특별히 고민거리가 없을만큼 조용한 시기를 보내면서 문득 깨달았다. 힘든 시간을 보내고 난 뒤 내 자신이 몰라보게 성장했다는 사실을. 이십대 후반에서 삼십대로 넘어오는 그 문턱에서부터 시작된 고난은 삼십대에 들어서고 난 뒤에도 나를 괴롭히더니 겨우 올해가 되어서야 끝이 났다. 어쩌면 성장통이었을까. 마음이 비좁고 환경이 불우했던 그 때엔 왜 나에게만 시련이 몰아닥치는 것인지 억울해했고 이 고통이 영원할 것만 같아 슬퍼했다. 하지만 정말 새벽이 오기 전 맞이한 어둠이었나보다. 언제 그랬냐는듯 다시 내 삶에 햇빛이 내리쬐고 온기가 감돈다. 차갑고 매정했던 나의 주변이 온통 따스함으로 바뀌었다는 사실을 자각했을 때, 오래도록 기다려온 이 순간이 얼마나 감사했는지 모른다.


PHOTO: CAIAIMAGE/TREVOR ADELINE/GETTY IMAGES


조금은 지루했던 일상에 균열이 가기 시작했다


평화로운 순간은 영원하지 않다. 그 동안의 삶 속에서 깨우친 교훈이었다. 언제 또 다시 바빠질지, 언제 또 불행의 그림자가 덮쳐올지 몰라 약간은 긴장 속에 살고 있던 터였다. 그러다 또 갑작스레 마음 속 깊은 곳에 가라앉아 있던 불안이 터져나왔다. 또 나만 뒤쳐지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불안감. 한국 사회에서 이 나이쯤 되면 누구나 겪는 문제, 바로 결혼에 대한 압박감이다. 좋은 짝을 만나게 된다면 언젠가 하겠지. 그렇게 미래의 어느 날 우연히 행복한 순간을 맞이할 거라고 으레 그런 상상을 하곤 했다. 하지만 그게 다가올 수 없는 현실이라는 자각이 드는 순간 불행이 고개를 들었다. 특히 주변에서 축하할 일이 자꾸 생길 때마다 조바심이 드는 것은 너무 당연한 일이다.


지금의 삶의 방향과 속도가 과연 알맞은가 하는 생각을 수차례 하게 됐다. 잠시 사라졌던 고민과 걱정이 다시 내 마음을 덮쳤다. 집채만한 파도처럼 불안감이 덮쳐오자 이리저리 휘청이기만 할 뿐 쉽게 벗어던지지 못한다. 마치 통과의례같은 그 의식을 언젠간 치뤄야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나를 힘들게 하고 지금의 모든 순간들이 의미없는 것처럼 느끼게 만든다. 허무함과 공허함이 고개를 든 순간 나는 그만 주저앉고 싶은 심정이 되었다. 그렇게 다시 글로 돌아오게 됐다. 가슴에 채워지지 않는 구멍 하나를 달고서 말이다. 남의 사람이 어떻든 지금의 나에게 만족하면 될 뿐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공허함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생각이 어지럽게 흩어졌다가 모이기를 반복하면서 자책을 하게 됐다. 모든 건 내가 문제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어디서부터 뭐가 잘못된 건지를 따져보며 해결책을 생각해보지만 딱히 좋은 수가 떠오르지 않는다. 혼자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라서. 그렇다면 내가 지금 혼자 해결할 수 있는 건 뭘까. 여러 생각들을 해봤지만 결국 귀를 닫고 눈을 감기 힘든 게 문제다. 나만의 속도와 방향을 믿고 나아가기 두렵다. 주변에서 저만의 정답을 찾아가는 것을 볼 때마다 더욱 스스로를 채찍질하게 된다. 시간이 지나면 그게 뭐 별 거라고 하는 생각을 또 하겠지만 당장은 그렇다.


https://rothys.com/blogs/the-loop/summer-fashion-tips#wnkd


답답함을 벗어 던지고 싶다


이직을 하고자 했을 때 나는 더 이상 점수와 조건에 맞춘 선택을 하지 않기로 다짐했었다. 정말 원하는 것에 도전해보자, 후회없게 열심히 해보자. 그래야 미래의 나에게도 할 말이 있지 않을까. 하지만 원하는 것에 닿기엔 너무 멀었고 내가 너무 부족했다. 시간이 오래걸릴 수도 있는 문제였다. 그렇다 보니 점점 나 자신조차도 흥미를 잃었다. 너무 말도 안 되게 높은 목표를 세운 것 같아 의욕을 잃게 됐다. 그런데 다시 그 목표를 돌아보게 됐다. 지금의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으니 다시 도망치고 싶어진 까닭이다. 하지만 도망친다고 섣불리 다시 시작하기엔 또 다시 엄청난 노력과 희생이 필요하니 망설이고 있다.


마음이 사람에게 그리고 상황에 휘둘리니 바람 잘 날이 없다. 평화로웠던 순간이 깨진 이 다음엔 뭐가 있을까. 어떤 괴로움들이 나를 찾아올까. 그런 생각을 하니 진절머리가 났다. 하지만 전만큼 두렵거나 걱정스럽진 않다. 그냥 또 다시 불편함과 동거를 할 생각을 하니 왠지 마음 한 켠이 무거워졌다. 그래, 고통은 새로운 시작을 위한 양분이 되겠지. 부디 너무 힘들지 않은 장애물이기를.


ANASTASIIA KRIVENOK/GETTY IMAGES


매거진의 이전글 나의 이사 이야기 2/2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