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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흔한여신 Sep 22. 2024

변화하는 마음의 지도

20대엔 몰랐던 것들

20대의 내가 싫어했던 걸 30대의 내가 좋아한다


  참 아이러니한 일이다. 요즘엔 하루하루 과거의 나와 작별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과거에 싫어했던 게 새로운 관심사가 되었고 과거에 좋아했던 것들엔 흥미를 잃었다. 생각이 변하게 된 것이 단순히 나이를 먹었기 때문인 건지, 나를 둘러싼 외적 환경에 변화가 있었기 때문인지 잘 모르겠다. 하지만 고집스럽게 유지될 것만 같았던 취향도 시간의 흐름에 따라 바뀔 수도 있구나 하는 것을 깨닫는다. 어쩌면 40대의 나는 지금 좋아하는 것들에 흥미를 잃을 지도 모른다. 아니면 지금의 취향이 더욱 깊게 무르익을 수도 있겠지.


  20대의 나는 집 밖에 나가는 것을 더 좋아했다. 굳이 사람들을 만나지 않아도 혼자서 잘 돌아다녔다. 그 땐 혼자서 뭔가를 하는 게 딱히 외롭거나 슬프지 않았다. 그래서 혼자 자주 산책을 나갔고 가고 싶은 카페나 도서관에 다녀왔으며 먼 곳까지 공연을 보러 다녔다. 날씨가 좋든 아니든 그런 게 신경쓰인 때가 아니었다. 보고 싶은 공연이 있다면 어떻게 해서든 가려 했고 끝나고 돌아오는 길에는 설렘이 가득했다. 불편한 구두를 신어 발 뒤꿈치가 다 까져도 눈에 비치는 풍경이 그저 좋았던 것 같다. 그다지 새로울 것도 이국적인 것도 없었음에도 집 밖에서 하는 모든 경험이 다 자극적이었고 흥미로웠다.


  낯선 이들과 어울리는 것도 불편해하지 않았다. 오히려 적극적이었다. 그렇게 20대 내내 아무리 바빠도 나가고자 하는 의지는 좀처럼 꺾이지 않았고 밤 늦은 시간 귀가에도 버틸 수 있는 체력이 있었다. 서울 시내에 다니지 않은 곳이 없을 만큼 많은 곳에 발자취를 남겼고 곳곳마다 추억이 녹아있다. 사람들과 어울려 돌아다녔던 기억, 혼자서 가을바람을 느끼며 가만히 한강을 바라보았던 기억, 남자친구와 예쁜 카페에서 데이트를 했던 기억까지, 거리 위에서 다양한 순간들을 맞으며 울고 웃었다.


눈부시도록 아름다웠던 20대였다



  하지만 지금은 혼자 뭔가 하기를 주저한다. 호기로운 마음에 길을 나섰다가도 외로움에 젖어서 돌아온 때가 한 두번이 아니라 그런 감정에 휘둘리고 싶지 않아 먼 길을 떠나지 않으려 한다. 낯선 이들과 어울려야 하는 자리면 수십 번을 고민한다. 결국 나가지 않겠다는 결론에 이른 게 대부분이다. 뭔가를 새로이 하는 게 불필요하거나 두렵다는 생각이 든 게 언제부터인지 잘 모르겠다. 많은 경험치가 쌓여 이제 어느 정도 나에게 필요한 게 뭔지를 잘 알아서 인 걸 수도 있다. 하지만 이제는 더 이상 추억을 쌓을 만한 무언가를 하지 않는다. 매사에 대체로 소극적인 사람이 되었다.


  하지만 새로운 취향이 생겼다. 부모님에게서 독립을 하고 전에 비해 집 안에서 혼자 있는 시간이 길어져서 일까. 지금은 전에 그토록 싫어하던 운동을 너무 좋아하게 되었고 감히 돈 주고 살 생각조차 해보지 않았던 운동복도 여러 벌 구매했다. 살집이 조금 올랐을 시절 몸매는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가리는 게 상책이라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꽤 과감한 디자인의 옷도 잘 고른다. 엄마에게만 맡겨두고 전혀 관심 없던 살림과 청소에 이제는 꽤 진심이고 냄새만 맡아도 토할 것 같아서 멀리 했던 향수는 하나둘 사 모으기 시작했다. 선호가 바뀐 이유에 대해 나 자신도 잘 알지 못하지만 어느 새 많은 게 바뀌었다. 30대의 나는 20대와는 관심사도 취향도 다른 새로운 사람인 것 같다.



향수를 사러 혜화에 나들이를 나갔다


  사실 가기 전에 엄청 망설였다. 1시간 정도 걸리는 길을 혼자 다녀오려니 선뜻 나설 엄두가 나지 않았다. 딱히 약속도 없고 향수 가게를 들르는 거 외에 특별히 할일도 없는데 꼭 가야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요즘들어 자꾸 외로움이라는 감정이 치밀어 오를 때가 많아 잠깐 어딘가를 나서는 데에도 그런 걱정이 들 지경이다. 하지만 날씨가 너무 좋았다. 하늘은 높고 푸르렀으며 햇살은 뜨겁지 않았고 선선한 바람이 불었다. 나가고 싶은 마음을 흔들기에 너무 최적인 날씨였다. 불과 몇 해 전까지만 해도 날씨가 좋을 때면 뒤도 돌아보지 않고 길을 나섰는데 지금의 나는 고작 얼마 되지 않은 거리를 나서는 데도 많은 고민을 한다. 참 우스운 일이다.


  결국 얼른 다녀오기로 마음 먹고 길을 나섰다. 지하철을 타는 게 더 빠른 것을 알지만 버스 차창 너머의 길가를 구경하는 것을 좋아했던 나는 오랜만에 시간이 좀 더 걸리더라도 버스를 타기로 했다. 신도림에서 혜화로 향하는 버스는 대학생이던 시절부터 자주 다녔던 종로를 지나가는 노선이었고 간만에 그 때의 추억에 젖어볼까 싶어 내린 결정이었다. 지루하고 외롭지 않을까 했던 걱정과 달리 버스 창문 너머의 풍경은 불안했던 마음을 다독였다. 하늘은 눈부시게 아름다워 바라보는 마음이 설렜다. 20대 시절 하루가 멀다하고 지나다녔던 거리를 지나칠 땐 눈물이 핑 돌았다. 거리에 많은 추억이 녹아있어 지나는 내내 뭉클한 심정이었다.


  혜화역 부근은 내가 재학했던 대학교와 거리가 가까워 자주 지나쳤다. 또 아르바이트로 푼돈을 만지던 시절 연극과 뮤지컬을 보러 가기에 최적의 장소였다. 이후 주머니 사정이 좀 더 여유로워지고 공연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면서 대극장 공연을 다녔지만 20대 초반의 나는 혜화역 인근의 공연장을 자주 찾았다. 오랜만에 그곳의 풍경을 눈에 담으니 다시 울컥하는 감정이 올라왔다. 감성이 솟구칠 만한 저녁시간도 아니고 훤히 해가 떠있는 대낮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리움과 애틋한 감정이 솟았다. 아마 20대의 내가 종종걸음으로 이 일대를 누비던 때가 떠올랐기 때문일 테다.


  오랜만에 선선한 날씨가 좋아서 옛 추억이 녹아있는 길을 걸었다. 그리고 야무지게 간식도 사먹었다. 과거에 비해 물가도 올라서 아주 저렴한 것들은 없었지만 닭꼬치는 닭다리살이 통통하니 맛있었고 당도를 0으로 설정한 말차버블티도 맛있었다. 이제는 당분 없는 음료가 더 편안하다. 거리에는 예상보다 사람이 적었고 향수 가게에서는 예상치 못하게 인생템이라 불릴 만한 향을 찾았다. 사막에 피는 장미 같은 고혹적인 향. 무거운 우디향이 아래에 깔린 플로럴향이 대중적이지는 않은 느낌이었으나 머릿 속을 휘감을 만큼 매혹적인 향이었다. 향수 냄새에 머리가 어지럽다던 그 소녀는 어디가고 나만의 시그니처를 찾았다며 좋아하는 숙녀만 남았다.



이십대의 나는 촌스럽고 삼십대의 나는 세련됐다


  이십대의 나는 촌스러운 게 한 두개가 아니었다. 패션 센스는 엉망이었고 나에게 어울리는 게 무엇인지 잘 알지 못해 잘 꾸미지도 못했다. 유행도 잘 몰랐고 철저한 마이웨이였다. 오히려 지금은 유행이 뭔지도 알고 그 중에 내게 잘 맞거나 어울리는 것을 택할 줄 안다. 이러한 변화는 사실 달달한 바닐라 라떼만 먹다가 쌉싸래한 아메리카노에 적응하는 것과 같은 이치라 생각한다. 그런데 지금은 아메리카노를 넘어 에스프레소에 적응해버렸다. 그나마 물을 채워서 쓴맛을 삼켰는데 이제 쓴맛을 깊이 음미하려는 수준에 이르렀다. 달달한 맛에는 오히려 거부감이 든다. 이러한 변화가 신기하지만 한편으로 전에 내가 가졌던 매력을 잃어가는 것 같아 슬프기도 하다.


  바깥 세상을 동경해 그토록 집 밖을 나가고 싶어했던 그 소녀는 대체 어디로 간 걸까. 문득 그 소녀가 그리워지는 밤에 지난 20대를 돌아보니, 그 땐 비록 정해지지 않은 미래를 불안해했고 알 수 없는 위험을 두려워했지만 결국 별 일은 없었다. 지금은 그 때에 두려워했던 일을 더 이상 걱정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 때에 가지고 있던 생기와 발랄함은 잊어버린 듯 하다. 뭣도 모르고 남들 따라 소맥을 마셨는데 이제 제법 위스키를 넘길 줄 아는 사람이 되었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알 수 없는 설렘에 두근거렸던 때와 달리 이제는 홀로 짙은 고독에 잠겨 있다. 발레와는 거리가 멀다 생각해 관심조차 없었는데 어느 덧 유투브로 내내 발레 작품이나 공연 영상만 찾아보고 있다.


물론 이 모든 게 피할 수 없는 변화이고 흐름이었다. 하지만 가끔은 그립다, 돌아오지 않을 내 이십대 청춘이여.


photo by. Rojo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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