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젯밤, 피곤한 몸을 이끌고 버스에 올라 눈을 살짝 감은 채 귀가하던 중이었다. 한참 졸다보니 따뜻하던 차 안 공기는 온데간데없이 갑자기 으슬으슬 추워졌다. 그저께 첫눈이 꽤나 내렸고, 비가 내린 위에 눈이 내려 길은 미끄럽고 영하 7도의 찬 기운이 고스란히 스며들었다.
‘아씨, 왜 이렇게 버스가 추워…’ 눈은 뜨지 않았지만 투덜거림이 속으로 새어 나왔다.
그때 기사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기요 손님, 창문 닫아 주세요.”
누구에게 하는 말인지 모르지만, 누군가 창문을 열어놓았다는 걸 짐작할 수 있었다.
잠시 후, 이번엔 좀 더 단호함이 느껴지는 말투였다.
“손님, 다른 손님들이 춥습니다. 창문 닫아 주세요.”
차분함 속에 날 선 기운이 느껴졌다.
그런데도 여전히 조용했다. 으슬으슬 몸이 떨려서 결국 가는 실눈이 떠졌다. 어느 창문인가 마치 사건 현장을 취재하는 기자처럼 두리번거리기 시작했다. 분명 다른 승객들도 같은 생각일 텐데, 아무도 얘기를 안 했고, 기사님도 두 번 말한 뒤로는 고요히 침묵을 지켰다. 그렇게 내릴 때까지 오들오들 떨었다. 소통의 부재 속에서 묘한 기분이 남았다.
집에 와서 이 얘기를 다양성이 공존하는 스레드에 올렸다. 댓글을 읽다 보니 한 가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한 사건에도 이렇게 다양한 마음들이 있구나.’
짧은 문장 속에서도 사람들의 결이 뚜렷하게 보였다. 재치와 위트가 있는 사람, 같은 경험을 했던 사람... 마치 한 편의 인간극장을 본 것 같았다.
살짝 비트는 사람,
“아니 이기적인 X, 그럴 거면 택시 타지!”
“지금 날씨가 어떤데…”
또 어떤 이는 사정을 헤아려 주거나,
“헉… 너무 추웠겠다.”
“코 빨개진 거 그거 때문 아닌가?”
걱정해 주는 사람도 있었고.
“혹시 멀미였나?”
“속이 안 좋았던 건 아닐까…?”
그리고 특유의 위트로 받아들이는 사람까지.
“냄새나서 연 거 아님?”
“그럼 더 활짝 열어드리지 뭐.”
“옆에 가서 기침을 많이 해”
나는 느낄 수 있었다. 결국 모두가 ‘사람 사이의 매너의 중요성’이라는 한 방향으로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것을. 우리는 누구나 존중받고 싶고, 존중해야 한다는 걸 안다. 그리고 그것의 바탕에는 언제나 배려가 있다.
그 여자 승객은 뒤통수가 따가웠을 것 같은데도, 왜 아무 말도 아무 행동도 하지 않았을까. 멀미였든, 답답함이었든, 뭐라 말하기 어려운 이유가 있었으려니 하지만,
“조금만 열었다 닫을게요. 죄송해요.”
이 한마디면 참 많은 오해가 사라졌을 텐데.
묵묵부답할 수밖에 없던 그녀의 진짜 속사정은 여전히 모르지만, 이상하게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