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차 뽑았다 널 데리러 가
남편은 타인의 시선에 크게 신경쓰지 않는 사람이다. 누구에게도 깍듯하지 않은 그를 보고 뭐 이런 사람이 다 있어 하는 사람도 분명 있을테지만, 온 세상 눈치를 다 보고 살았던 나로서는 높이 사는 점이기도 하다.
남편이 언젠가부터 자동차를 알아보기 시작했다. 꽤 오랫동안. 퇴근 후나 주말이면 컴퓨터 앞에 앉아 차 사진이며 내용이며를 살펴보곤 했다. 이 차를 살 거다, 저 차를 살 거다, 꽤 다양한 차종이 그의 입에 올랐다 사라졌다. 초반엔 외제차 몇 종이 후보에 올랐는데, 이것저것 찾아보고 지인들 이야기도 듣고 하더니만 지방 소도시에서는 수리가 힘들단 소리에 영영 떠나보냈다. 그의 로망은 내가 아는 그 로망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이렇게나 쉬이 떠나보내다니.
명성이 자자한 외제차 이름이 돌아가며 여럿 들리던 시기를 지나 고급 국산차 이름이 들리는가 싶더니만 어라, 어째 점점 현실과 타협하는 모양새다. 아직 집 대출 이자를 갚는 중이었고, 현실파 남편의 현실 감각이 돌아오고 있었다. 오, 이런! 이 문제에서만큼은 나의 피터팬을 지켜주고 싶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는 연애 시절에 타던 차를 결혼 11주년이 지나도록 타는 중이었다. 심지어 그 당시에도 중고차를 구입한 거였으니 그의 자동차는 열 한 살이 훌쩍 넘었다. 열 서 너살 쯤 되었으려나.
주변을 보면 우리 나이에 십 년 넘게 같은 차 타는 사람도 별로 없다. 차가 오래 되긴 오래 되어서 겉색도 바랬다. 중고차 시세로 100만원 정도 된다고 했다. 그래도 관리 잘해서 승차감은 웬만한 차보다 좋지 않느냐고 그는 농담인 듯 자랑인 듯 이야기하곤 했다. 연비에 엄격하고 교체 주기, 점검 주기 철저히 지키며, 때마다 공들여 세차해주는 주인 덕에 차는 그 연식에 비해 확실히 괜찮았다. 그래도 절대치는 어쩔 수 없는 법. 그러니 이번에는 좀 무리해서라도 좋은 차를 샀으면 싶었다. 평소 자기 것에 쉬이 지갑을 열지 않는 그의 성정에 비추어볼 때 이번에 사면 할아버지가 되어서도 탈 게 분명했다. 나는 업!을 외쳤다. 타협하지 말고 지금 사고 싶은 거 사라고.
어느 날 남편은 그가 픽한 자동차 회사 프로모션 기간 중 작심한 듯 집을 나섰고, 쿨하게 계약하고 돌아왔다. 어차피 그의 차니 나는 무엇이든 상관 없었다. 다만 그가 마음에 드는 걸로 고르길 바랐을 뿐. 그는 국산차를 선택했다. 풀옵션으로. 들어보니 꽤나, 아주 꽤나 고가였다. 고급 외제차도 살 가격.
아니나 다를까. 주변에서 그 돈이면 외제차 사지 그랬냐는 소리가 들렸다. 그러나, 나는 생각했다. 역시 그 답다고. 아주 그다운 선택이라고. 그가 타인을 신경쓰는 사람이었다면 누구든 알아볼 만한 고급 외제차를 사고 재정 상황에 맞춰 사양을 조정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그런 사람이 아니다. 이번에 산 그의 차가 그를 대변한다. 남들 기준과 다른 건 전혀 상관 없고, 내 기준 대로 고른다. 남들이 보는 앰블럼보다 내가 사용하는 사양이 중요하다. 그는 그런 사람이고, 그의 차는 그런 차다.
기다리던 차가 나오고 나니 남편은 어린 아이처럼 좋아했다. 장난감 자동차를 선물받은 어린 아이 마냥 투명하게 기뻐했다. 자동차에는 지식도 관심도 없는 나를 앉혀놓고 줄줄 자랑을 했다. 안 샀으면 어쩔 뻔 했는지. 대출이 아직 남았는데 또 대출을 받아 살림은 좀 빠듯하게 됐지만 그가 좋아하니까 좋았다. 그렇게나 현실적이고 이성적이었던 사람이 이렇게나 귀여워지다니.
차가 처음 나온 날 남편은 우리를 차에 태우고 밤 드라이브를 갔다. 음악을 켜고. 유명한 스피커가 내장되었다는데 그런 데 영 문외한이라 이름은 기억이 안 난다. 다만 음악은 참 감미로웠다. 목적 없인 움직이지 않는 그가 우릴 태우고 정처없이 한참을 떠돌다 들어왔다. 새 차의 마법인가.
그럴 만도.
무려 내 남편의 인생 첫 새 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