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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샘 Oct 23. 2020

아니, 거제도라니요

설마 설마 했던 거제도로 발령 나다

2018년 3월 1일 자로 정식 발령을 받게 되었다. 기대감이 드는 것도 잠시 어디로 발령이 날 것인가 유추하느라 분주해졌다. 기간제 하던 학교 선생님들은 진주 발령은 힘들 거라며, 거제도 가는 거 아니냐며 우스갯소리로 이야기를 하시곤 했다.


"에이, 설마요."

웃으며 대꾸했던 난데.


설 연휴를 맞이해 인천의 친정집으로 가던 차 안에서 문자로 확인하게 되었다. 내가 거제도로 발령 났다는 것을.


한참을 달리던 차 안에서 문자가 왔다는 소리에 슬쩍 보니 거제교육지원청이라는 글자가 보였다.

'어라? 거제교육지원청에서 웬 문자가...? 혹... 시?'


역시나 발령을 알리는 문자였고, 연이어 발령받은 학교 선생님으로부터 환영한다는 문자를 받고야 실감할 수 있었다. 아, 나 거제도로 발령 났구나.


타지인 진주에서 결혼해서 사는 것도 아직 놀라운데 거제도라니. 남편과 놀러 갔던,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던 지역이었는데... 헛웃음이 나왔다. 우째 이런 일이.


거제에 집을 구해 살기도 어려운 상황이라 생각도 하지 않았다. 주말부부 할 생각만 해도 눈물이 날 지경이기도 했고 아이를 갖게 될 수도 있는데 따로 떨어져 살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렇다면 방법은 하나. 내가 진주에서 거제까지 매일 출퇴근을 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시작되었다. 왕복 160km를 출퇴근하는 일상이.


대중교통이라도 이용할 수 있으면 좋으련만 시외버스를 타고 가는 일도 거의 불가능해 보였다. 게다가 거제의 교통편은 그리 좋은 편이 아니었다. 그러니 왕복 2시간 20분 거리를 매일 운전해서 다닐 수밖에 없었다. 


거제도는 참 아름다운 바다를 볼 수 있는 곳인데. 퇴근길에 볼 수 있는 그 좋은 경치도 한 번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퇴근 길이 구만리 같아 그럴 여유도 사치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심지어 1년 내내 거제도에 놀러 가는 일도 없었다. 이전에는 종종 가곤 했지만 이젠 평일에 매일 드나드는 곳이기에 주말에도 거제로 가고 싶진 않았기 때문이다. 이런 내 마음을 너무나 잘 알았던 남편은 다가오는 주말을 앞두고 이렇게 나를 놀리곤 했다.

 "이번 주말엔 거제로 놀러 갈까?"


거제도의 거 자도 꺼내지 말라며 정색하곤 했지만 사실 다니던 학교는 굉장히 마음에 들었다. 거리가 멀지만 않았더라면 기간 꽉꽉 채우고 나오고 싶을 만큼 장점이 많은 학교였다. 거제의 학교에서 근무한 건 단 1년이었지만 정말 많은 걸 배울 수 있었기 때문이다. 공동으로 수업을 연구한다는 게 이런 거구나 가슴 벅찬 느낌을 받기도 했었다. 첫 발령받은 학교가 이리 좋은 곳이라니. 거제에 있는 학교만 아니었더라면 정말 이보다 좋을 순 없을 거라 생각했다.


빠른 퇴근 시간이 교직의 장점 중에 장점인데 매일 이른 7시에 출근길에 나서고 늦은 6시에 집에 도착하다 보니 장점을 오롯이 느낄 수가 없었다. 심지어 겨울에는 해가 짧아 어두울 때 나가 어두울 때 돌아오는 날들을 보내다 보니 하루가 짧게 느껴지기도 했다.


1년간 방학 제외하고 매달 50만 원가량을 길거리에 뿌리고 나서야(기름값과 톨비로 꽤 많은 돈을 고정비로 지출해야 했다) 거제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물론 그 학교를 나와야 하는 게 많이 아쉬웠다. 하지만 출퇴근 시간이 길다는 점과 매달 들어가는 교통비의 압박이 컸다. 그래서  결국 나는 아이를 출산하고 관외 내신을 썼다. 어린 아기를 키운다는 이유로 우선 전보 혜택을 받은 결과로 지금의, 집에서 차로 15분 거리의 학교에 가게 되었다.


출퇴근은 힘들었지만 교사로서 성장하는 즐거움을 느끼게 해 준 거제의 학교. 좋은 추억으로 남아 있어 참 다행이기는 하다. 첫 발령의 기억이 좋아 다행이다.


하지만 또 거제로 발령이 난다면?


진심으로 한 번이면 족하다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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