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리밀라에서 전합니다
돌아온 지 곧 1년이 된다. 글을 쓴다고 그때 쓴 메모와 일기를 읽어보고, 사진을 찾아보니 그때로 돌아간 기분이 들었다.
2018년 9월 6일 북아일랜드에 도착해서 2019년 7월 19일, 한국으로 돌아왔다. 원래 8월 말에 돌아오기로 했지만, 어린이어깨동무에서 일하기로 하면서 먼저 귀국했다. 북아일랜드에 있으면서 많은 사람을 만났고, 많은 이야기를 들었다. 짧은 경험으로 북아일랜드를 안다고 말할 수 없다. 다만 어떻게 하면 더 많은 이야기를 찾을 수 있는지 단서를 들고 온 기분이다. 마지막으로 코리밀라에서 무엇을 느꼈는지 다시 한번 이야기하면서 연재를 끝내려고 한다.
하루는 북아일랜드와 미국 청소년이 함께하는 캠프에 참여했다. 캠프 프로그램 중 하나로 각자가 학교에서 겪고 있고, 보고 있는 사회 문제에 대해 이야기한 적이 있다. 아이들이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익명으로 쓴 글을 다른 아이들이 읽어주는 형식이었다. 다른 친구들이 겪고 있는 어려움에 공감하고, 그때 나서지 못했다는 죄책감으로 눈물을 흘리는 친구들도 있었다. 프로그램은 무거운 분위기로 진행되었다.
캠프가 끝나고 나서 그 자리가 다른 자원활동가 친구에게 힘든 자리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돌이켜보면 그 친구가 자신이 북아일랜드에서 자라면서 자신이 겪은 것을 우리에게 말해줬던 적이 손에 꼽을 정도였다. 북아일랜드에서는 ‘이야기를 하지 않는 것’이 사회의 암묵적인 모습이라고 했다. 이야기를 해준 스태프도 북아일랜드에서 살면서 보고 겪은 갈등을 이야기하라고 하면 아직도 쉽게 이야기를 꺼낼 수 없다고 했다. 힘들었던 경험을 떠올리고 싶지 않아서, 자신의 이야기로 문제가 생길까 싶어서 다른 사람들 앞에서 이야기를 꺼내지 않게 된다고 했다. 코리밀라에 있으면서 자신의 커뮤니티와 자신의 이야기를 다른 사람들에게 말하는 연습을 해봤으면 좋겠다고 했다. 서울에 있었다면 아무도 하지 않았을 질문을 코리밀라에서는 자주 받았다. 다들 너무도 당연하게 생각해서 하지 않았거나, 하면 어색해질 것 같은 질문을 받곤 했다. 어쩌면 서울에서는 그런 질문을 자유롭게 할 수 있었던 자리가 없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다들 자신의 이야기를 꺼낼 수 있도록 천천히 기다려줬다. 다른 사람들이 이야기를 꺼내는 것을 보면서 이야기를 하는 연습을 하기 시작했다.
인종차별, 다양성, 페미니즘, 기후위기, 채식주의, 난민. 코리밀라에 온 친구들은 다양한 분야에 관심이 많았다. 난민단체에서 활동하려고 새로운 언어를 공부하는 친구, 팔레스타인에서 있었던 친구, 지역사회의 갈등을 해결하고자 하는 친구, 환경을 생각해서 비건이 된 친구도 있었다. 다른 시각에서 다양한 이야기를 들으면서 종종 저렇게 생각할 수도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북아일랜드 사회의 소수자로 있으면서 차별과 다양성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었다. 세상을 보는 눈이 한층 넓어진 느낌이었다. 그동안 몰랐던 것, 그냥 지나쳤던 것이 많다는 것을 알았다.
서울로 돌아오고 나서, 사람들과 북아일랜드 이야기를 종종 나눴다. (보고 듣고 배운 것을 더 많은 사람들과 이야기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서 브런치도 시작했다.) 주로 북아일랜드 분쟁에 대해서였는데, 북아일랜드가 어땠는지, 배운 걸로 무엇을 하고 싶은지, 한국과 북아일랜드가 다른데 배운 걸로 어떤 걸 할 수 있을지 물어보는 사람도 있었다. 마지막 질문에 대답하려고 하면서 나는 내가 살고 있는 곳을 잘 모르고 있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7. 나는 코리밀라에서 무엇을 배웠나(1)에서 심포지엄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젊은 세대들이 갈등 이야기를 잘 모르는 것이 안타까워 다큐멘터리를 만들었다는 PD, 누가 ‘어떤’ 진실을 말하고 있는지 목소리가 높아지는 사람들을 보면서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이야기를 서울에서 했을 때 다른 사람들은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더 풍부한 이야기를 쏟아내기 시작했다. 내가 더 많은 것을 알고 있었다면, 북아일랜드에서 더 많은 것을 보고 생각할 수 있었겠다는 아쉬움도 들었다. 최근에 강연을 통해 민주화운동, 베트남 전쟁, 강제징용 등 잘 몰랐던 이야기를 들으면서, 고등학교 국사 시간에 잠깐 스쳐 지나간 한 줄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생각보다 많은 이야기들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몰랐던 이야기를 더 알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에 모여서 코리밀라가 왜 50년이 넘게 자원활동가 프로그램을 하고 있는지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 있었다. 사실 자원활동가와 기숙사를 관리하고, 매년 새로운 사람을 가르치는 것보다 사실 스태프 숫자를 늘리는 것이 더 쉬운 일이다. 그래도 자원활동가 프로그램을 계속하는 것은 코리밀라의 시간을 끝내고 자신의 커뮤니티로 돌아가 그 자리에서 다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고민하는 사람이 많아졌으면 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우리의 역사를 알고 싶다고 생각하게 된 것도 코리밀라의 자원활동가 프로그램 목표에 부합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돌아온 지 벌써 1년이 다 돼간다. 그때 쓴 메모와 일기를 읽어보고, 글로 정리하면서 다시 그때로 돌아간 기분이 들었다. 서울에 돌아가면 다르게 살아야겠다, 공부해야겠다 다짐했던 것도 다시 머릿속에 떠오르면서 스스로를 돌아볼 수도 있었다. 북아일랜드에서 많은 일들이 있었다. 혼자서 펑펑 울기도 했고, 다 같이 즐겁게 먹고 마시며 놀기도 했다. 유럽을 돌아볼 수도 있었다. 앞으로 살면서 북아일랜드에서의 경험은 분명 소중한 추억으로 남을 것이다.
‘코리밀라에서 전합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