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 윤이상하우스에서 보내는 평화의 편지 - 정진헌 (6)
피스레터는 어린이어깨동무 평화교육센터에서 정기적으로 발행하는 잡지입니다. 우리 사회가, 우리 역사가 놓치고 있는 평화적 가치를 발견하여 글로 쓰고, 함께 읽고 소통하는 실천을 통해 평화적 가치와 담론을 공유하고, 우리의 평화를 함께 만들어 가고자 합니다. <피스레터 다시 읽기>에서는 피스레터에 기고되었던 글을 다시 소개합니다. 피스레터는 어린이어깨동무 홈페이지(www.okfriend.org)나 평화교육센터 블로그(https://peacecenter.tistory.com)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시선 | 베를린 윤이상하우스에서 보내는 평화의 편지]
베를린은 “기억의 문화(Erinnerungskultur, the Culture of Remembrance)”를 체험할 수 있는 글로벌 도시입니다. 그리고 그 과거에 대한 기억의 흔적들은 많은 사람들에게, 특히 분단국가에서 온 한국인들에게는 미래에 대한 교훈과 열망들을 심어줍니다. 그래서 오늘은 기억의 문화와 탈분단 도시의 열망이라는 주제를 함께 나눌까 합니다. 마침, 지난 편지 이후에 베를린을 방문해 주신 분들과의 만남이 이 주제와 딱 맞는 듯합니다.
기억의 문화는 위에 적었듯, 독일어에서는 하나의 단어로 개념화되어 있습니다. 이는 공동체나 사회가 과거의 유의미한 사건과 상황을 집단의 의식 속에 간직하고 지속적으로 환기시키고자 하는 다양한 실천들로 정의할 수 있습니다. “문화”라는 개념에서 이미 개인적 개별적 기억과는 달리 사회 구성원이 서로 동의하는 기억이자 과거이며, 그것을 외화시키는 방법도 다수가 동의하는 방법이어야 함을 알 수 있습니다. 세계 2차 대전의 가해국인 독일에서의 기억 문화는 홀로코스트, 즉 나찌에 의해 자행된 대학살의 희생자들을 기리는 문화와 거의 동의어라 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독일 전역에는 정부에 의해 만들어진 유대인 학살 추모비가 눈에 자주 띕니다.
나찌의 인종 청소 희생자들은 약 1천7백만 명에 달합니다. 그중, 유대인이 약 6백만여 명이고, 그 외 1천만 명이 넘는 희생자들은 소비에트 국민들, 폴란드인, 성소수자, 루마니아계 유목민(과거에 집시라 불림), 장애인 등이었습니다. 독일에서는 나찌 전범들을 끝까지 추적하여 법정에 세우고, 학교 교육에서 가장 중요하게 가르치는 역사로 삼고 있으며, 각종 추모비와 추모공원의 건립 등을 통해 정부 차원의 노력들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집니다. 그리고, 시민 개개인들도 자체적으로 나찌의 치욕적 기억을 끊임없이 환기시키는 노력들을 외화시키고 있습니다.
바로 이러한 기억의 문화를 체험하기 위해 지난 5월 말에는 세월호 유가족분들과 4.16연대 예술가분들이 함께 베를린을 방문하셨습니다. 그리고 답사 마지막 행사로 윤이상하우스에서 기억과 치유를 위한 토크 & 콘서트를 가졌습니다. 광화문 광장의 추모공간 형성 과정과 의미를 교민들과 공유하고, 음악가들의 감성적 공연이 어우러졌습니다. 그리고 송두율 교수님의 기억문화에 대한 발제를 바탕으로, 세월호 희생자를 기리는 생명안전공원 건립에 유의미한 토론을 함께 가졌습니다.
우리는 베를린 현장을 통해, “기억의 문화”라는 개념이 이미 개별적 기억과 사회적 기억, 그리고 피해자의 기억과 국가 권력의 기억 “사이”에 간극이 있음을 내포한다는 점을 상기했습니다. 그리고 그 기억의 차이를 좁히는 일은 “기억 투쟁”이라는 송 교수님의 말씀에 공감했습니다. 실제로 베를린에서 정부 차원에서 크거나 작게 조성한 홀로코스트 추모 공원이나 추모비들은 “추상적” 조형물들이 대표적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가해자”인 익명적 독일 국가체의 죄의식을 지속적으로 각인시키는 역할을 합니다. 반면에, 베를린과 독일 거리에서 만날 수 있는 걸림돌(Stolperstein)은 “피해자” 개개인을 호명하며 기억하려는 의지의 발현입니다.
이는 한국의 과거사 진상규명 운동이나, 그리고 동아시아 평화의 최대 장애물인 일본의 사죄 문제에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국가 폭력에 의한 죄는 추상적 형상물과 공간을 통해 잘못의 반복을 경계하는 기능을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그러나 피해자 개개인들의 기억을 호출하고 지속적으로 각인하는 실천과 만났을 때 더 큰 효과를 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죄과를 상징할 만한 형상물이 없다면, 그 죄에 대한 형별은 자칫 희생자 개개인들에 대한 개별적 금전 보상으로 치환, 소멸될 수도 있습니다. 마찬가지 이유로, 희생자 개개인들의 이름과 삶을 호명하는 걸림돌(Stolperstein) 같은 예술적 형상물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다시 말해, 기억 투쟁은 희생자 개개인들 중심으로 벌이는 종합 예술의 힘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기억의 문화란, 희생자들의 역사가 살아남은 자들의 기억에 지속적으로 재생되는 세대 간, 인류 간 소통의 과정인 것입니다.
더불어, 기억의 문화는 미래지향적 열망을 지향합니다. 나찌의 만행을 적나라하게 되새기면서, 그와 동시에 아직 분단국가의 국민인 한국인들이 부러워하는 베를린 기억의 문화 중 하나는 바로 장벽입니다. 전쟁에 대한 형벌로써 독일은 분단되었습니다. 일본 대신 분단된 한반도와는 다른 분단의 동기입니다. 분단에서 통일로 나아갔다고 해서, 분단의 원인이 되었던 무자비한 학살과 전쟁의 죄과가 모두 소멸된 건 아닙니다. 죄의식에 벗어나 다시 독일 민족의 우수성에 기반한 국가 정체성을 호소하는 극우 정당 AfD(독일을 위한 대안정당)이 마침내 의회에 입성했지만, 그렇다고 죄의식을 되뇌는 기억의 문화를 뒤집기에는 아직은 역부족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독일 내적 역동성과 갈등을 잠시 뒤로 미룬다면, 통일 독일을 가장 부러워하는 외국인들은 아마 한국인들일 것입니다. 더욱이 올해는 베를린 장벽 붕괴 30주년을 맞이하는 해이라, 독일에서는 이미 과거가 되어버린 탈분단의 기억을 축하하고, 통일 국가의 미래상을 열망하기 위해 한국에서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베를린을 방문하고 있습니다.
그중에는 지난 7월 말 베를린 이스트사이드 갤러리부터 포츠다머 플라츠까지 평화 마라톤을 한 문경에서 온 열다섯 명의 고등학생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과거 장벽이 설치되었던 흔적을 가로질러 달린 후, 김덕수 사물놀이패와 현지 북패가 함께 어우러져 브란덴부르크까지 이어진 한반도 평화통일 기원 길놀이의 깃발수로 나서기도 했습니다. 저는 사전 요청이 있었던 터라, 학생들과 행사 후 만남을 가졌습니다.
“여러분 중 나라와 나라 사이를 육로로 넘어본 경험이 있는 사람 손들어 보세요!”
작렬하는 태양 아래서 하루 종일 고생한 학생들이 잠시 고민해 봅니다. 이들은 한국에서 런던까지만 비행기로 오고, 런던에서 파리, 파리에서 베를린은 모두 기차로 이동했던 기억을 되살리더니, 다들 손을 듭니다.
“여러분은, 유럽 대륙에서 탈경계의 경험을 해보았어요. 그리고, 베를린에서는 동서를 나누었던 장벽의 흔적을 가로질러 달리며, 탈분단 역사와 문화 또한 몸소 체험한 셈이에요. 그리고, 언젠가는 한반도의 휴전선을 가로질러 달리는 통일 마라톤을 하게 되리라 믿어요. 그러면 여러분은 유럽과 동아시아의 탈분단을 경험한 최초의 세대가 되는 거군요!”
길거리 식당에 앉아 케밥으로 허기를 달랜 후 피곤이 솔솔 밀려올 즈음인데, 학생들의 눈망울이 다시 초롱초롱해집니다. 우리는 내친김에 훔볼트 대학까지 걸어가서, "철학자들은 세상을 오로지 다양한 방식으로 해석한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세상을 바꾸는 것이다"라는 칼 맑스의 명언까지 되새겨 보았습니다.
우리는 몇 년 전 이 또래 청소년들을 허망하게 잃은 슬픔의 기억을 안고 있습니다. 세월호 유가족분들이, 베를린을 통해 한국만의 기억 문화를 만들어 보고자 하는 영감을 얻었다면, 문경 청소년들의 가슴에는 탈분단 문화에 대한 열망이 싹 틔었으리라 기대해 봅니다. “열망”은 개인마다 간직한 꿈에 머물지 않습니다. 낯선 도시를 경험하면서, 다른 목표를 가진 누군가와의 대화와 소통을 통해, 서로가 동의하는 공동의 비전을 찾아 나가고, 그것을 실천하는 서로의 노력과 과정이 바로 열망의 문화입니다.
어깨동무 친구들이여, 우리는 과거의 잘못을 제대로 반성하고, 희생의 의미를 제대로 깨우치는 속에서, 우리를 얽매이고 있는 분단의 문화를 걷어내고 보편적 평화를 구현할 미래를 열망합니다. 그 기억과 열망의 문화를 위해 앞으로도 계속 “어깨동무”하기로 약속하며, 베를린에서 보내드렸던 그동안 편지를 마칩니다.
“안녕, 친구야~~!”
정진헌ㅣ어린이어깨동무 간사 출신으로, 미국 일리노이대학교 문화인류학과에서 박사 학위를 수여하고, 독일 괴팅엔 소재 막스플랑크 종교와 민족다양성 연구원 선임연구원을 역임한 후, 현재 베를린 자유대학교 역사와 문화학부 한국학과 연구교수로 재직하며, 윤이상하우스 운영을 맡고 있다. 저서 및 공저로,로Migration and Religion in East Asia (2015), Building Noah's Ark (2015), 무엇이 학교 혁신을 지속가능하게 하는가 (2015), 한국의 다문화주의 현실과 쟁점 (2007), 북한에서 온 내친구(2002)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