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영화를 감독한 김초희는윤여정이 아카데미 조연상을 받을 때 함께 갈 1인으로 시상식에 가고 싶었다는 감독이다. 그동안 옆을 지켜 주었고 함께 작품 하면서 동료애가 남다른듯. 물론 영화를 위해서 함께 연기한 주연 여배우와 참석했지만. 최근에 감독과 배우로 만나 함께 찍었다는 작품이 이 영화였는데 감독의 얼굴과 그동안 한 작품을 보니 이 영화를 보고 싶어 졌다.
그동안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 <우리 선희>, <누구의 딸도 아닌 해원>, <북촌 방향> 등에서 프로듀서를 맡았고 이 작품에서는 감독으로 참여하여 2020년 한국영화제작가협회상 각본상을 수상했다. 2020년 제24회 부산국제영화제를 시작으로 팬덤을 입고 2020년에 뜨거운 주목을 받은 영화이다.
딱 봐도 '대중성'보다는 자신의 작품세계가 확고한 분으로 보인다. 어떤 분에게는 몹시 지루하고 대체 뭐야? 그래서? 하고 영화 보고 나서도 찜찜하게 아무것도 남은 것이 없는 독립영화일 수도 있다. 내게는 이 영화의 주인공이 마치 감독 자신인 것처럼 여겨져서 그녀의 삶을 엿본 것 같은 기분이었다. 윤여정 배우가 알게 모르게 인기 드라마에만 출현한 게 아니라 소신 있는 예술감독들의 작품도 자주 출현하신 분이구나 존경심을 가지게 된다.
주인집 할머니 '복실'역에 연기파 배우 윤여정, 자칭 장국영이라 우기는 비밀스러운 남자는 연기파 배우 김영민, 의리파 배우 '소피'역엔 윤승아, 찬실의 마음을 설레게 하는 '소피'의 불어 선생님 역은 배우 배유람이 맡았다.
주인공 역 강말금은 인생 여정이 매우 흥미로운 배우이다. 평범한 회사원으로 일하다가 나이 서른에 연기에 입문했다고 한다. 14년간 연극무대에서 쌓은 내공으로 단편영화 <자유연기>에서 독박 육아에 지친 '지연'캐릭터를 잘 소화해 제17회 미장센 단편영화제 연기부문 심사위원 특별상을 받았단다.
이 영화에서 처음 주연을 맡았지만 앞으로가 기대되는 충무로의 유망주! 시종일관 그녀는 이 작품에서 경상도 로컬 랭귀지를 구사하는데 고향이 대구 출신인 내가 '고향 언니'를 만난 것 같은 느낌이었다. 이 작품에서 아마 관객들은 나도 모르게 열렬하게 그녀를 응원하게 될 것다. 절대로 한심하지 않고 깊이 공감하면서 그녀의 미래가 궁금해질 것이다.
나이 마흔 집 한 칸 없고 사귀는 남자도 없고 갑자기 하던 일도 똑 끊어졌다!
오랫동안 믿고 의지하면서 함께 작업을 해 왔던 감독님이 흥겨운 술자리에서 갑자기 쓰러진 채로 영 떠나버렸다.
헐~~ 처음엔 농담인가? 장난인가? 했는데 리얼이다. 산 사람은 어떻게든 살아야 하기에~~ 슬픔보다 갑자기 먹고 살 걱정이 눈앞에 닥쳤다.
아는 채널을 가동해 봤으나 그동안 선 곧게 한 우물만 파서였는지 그녀에게 올 자리가 없다!
비용을 줄여 보려고 영화판 후배들의 도움을 받아가며 옹색한 자취방에 이삿짐 보따리 풀어놓고 보니 괴짜 같은 무뚝뚝한 주인 할머니 '복실'이 등장하고 그렇게 '복실'과 '찬실'의 불편한 동거는 시작된다.
"하던 일은 왜 관뒀어?" "오랫동안 같이 일하던 감독님이 갑자기 돌아가셨어요." "나는 하고 싶은 일이 아무것도 없어. 늙으니까 그 건 좋아. 나는 오늘 하고 싶은 일만 하고 살아. 대신 애써서 해." "오늘 하고 싶은 일은 콩나물 다듬는 일이었겠네요" '알면 됐어."
할 일 없음 이리 와서 콩나물이나 다듬자는 그녀와 어느새 슬금슬금 밥도 같이 먹고 한글숙제도 봐주는 사이가 된다. 그녀에게 할머니들은 우리 할머니에게서 이미 느낀 대로 많이 배우시지도 않으신 분들이 '마음대로라고 하는 게 애당초 없다는 걸 다 아는 것 같은 " 놀라운 분들이다.
영화 일을 하다 먼저 저세상으로 간 딸내미 물건까지 마음대로 쓸 만한 게 있으면 가지고 가라고 하신다. 수다스럽지 않고 프라이버시 깔끔한 할머니는 마음이 부산한 그녀에게 한 번씩 줄을 그어 준다. 알고 보면 그녀를 불러 도와 달라고 할 때도 많으나 속을 들여다보면 할머니가 돌봐주고 있는 듯~~ 할머니들은 사람을 잘 본다!
산 입에 거미줄 치게 생긴 그녀의 딱한 사정을 함께 일하던 배우 '소피'가 돕겠다고 하는데 '돈'이 필요한 게 아니라 한사코 '일'이 필요하다는 그녀!
마침 가사도우미 없이는 안 되는 '소피'의 집에 '가사도우미'가 된다. 청소하고 빨래하고 주인 스케줄도 관리해주고 참 영화 찍듯 참하게 살림을 돌보며 살았다~
그런 어느 날 불어를 가르치는 '소피'의 가정교사가 찾아오고 참 선량하고 좋은 사람인 그의 인성에 반해 찬실이는 그만 마음이 훅 나갔다!
무슨 일이 있을지 몰라 같이 있어 주겠다는 이 선한 청년! 단편영화를 찍다가 생계를 위해 강사를 하고 있다는 사람! 눈빛도 따뜻하고 인상도 좋은 데다 무엇보다 사람 냄새가 났다.
" 영이 씬 올해 몇 살이세요? 결혼은 했어요?" "서른다섯이고 혼자입니다." "영이 씨는 언제부터 그렇게 착한 사람이었어요? "예?" "제가 지금 뭐라고 그랬는데요?"
마음이 힘들고 어려운 날 같이 있어 준다기에 그럼 한 번 안아달라고 했다. '10년 만이에요. 남자와 포옹해 본 거~' 우리 찬실이는 길거리에서 허그 한 번 하고 이 남자를 사랑해도 되는지 묻게 된다.
이 영화 중에 판타지 요소로 보이는 장국영 닮은 ~~ 할머니가 열어 보지 말라고 하는 방에 기거하는 묘한 남자는 수시로 찬실이에게 나타나 그녀의 연애사와 마음 결정에 도움을 제공한다.
영화는 찍어봤겠지만~~ 남자와 연애 안 해 본 지 오래고 보니 뭘 좀 아는 것 같은 이 남자에게 속을 털어놓고 에라! 그래 이 로맨스 직진으로 승부를 걸어보자! "생각을 안 하려고 해도 생각이 나요. 이제부터 그냥 직진할래요."
할 일도 없고 잡을 것도 없는 시간 좋은 남자와 사랑이라도 해 볼까?
그래서 마음먹고 도시락을 쌌다! 지금은 줄 수 있는 게 도시락밖에 없기에~~
"영이 씨는 영화 안 하고도 살 수 있을 것 같아요?" "사람들하고 함께 있는 것, 우정을 나누는 것. 사랑하고 사랑받는 것으로 저는 되는 것 같아요." 이 남자 멋지다!
꽃무늬 보자기에 소중하게 감싼 도시락을 들고 찾아갔다가 ~~ 도시락 양 손에 쥐고 그와 걸어가는 길~~ 거기서 찬실은 용기를 냈다. 덥석 그를 뒤에서 안아 버렸다. 소위 백허그라는 것을 한 것! 어쩌나!! 영화에선 이럴 때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고 그윽하게 보고 키스신도 나오고 그러더구먼~~
당황하는 영이 씨! 찬실도 어쩔 줄을 모른다. "영이 씨! 누가 내 좀 위로해 주면 좋겠나 봐요. 어! 죄송해요." "저는 PD님을 좋은 누나라고 생각해요." "누나요?" "제가 PD님한테 괜한 오해를 사게 했나 봐요." "아니에요. 제가 잠시 미쳤었나 봐요. 미안해요. 저 먼저 갈게요."
버스 안에서 도시락을 앞에 놓고 눈물을 참을 수 없는 찬실! 누구는 푼수라고 할지 모르겠지만~~ 나이 먹고 초라한 40대 언니도 진심이라는 게 있다! 나를 여자로 봐주는 좋은 남자가 생긴 줄 알고 그녀의 인생은 잠시 눈부시게 빛났던 것이다!
저 하늘의 무지개 위에서 갑자기 황량한 아스팔트로 곧장 떨어진 기분이 이럴까? 이제야~~ 찬실은 인생이 제대로 슬프기 시작했다. 아~~ 내 인생, 왜 이래? 할 줄 아는 건 영화! 하고 싶은 것도 영화! 그저 머릿속에 일만 꽉 채우고 열심히 살았는데~~ 왜 나는 이래?"
감독이 가고 일이 끊어졌을 때도 씩씩하게 가사도우미로 눈물 한 방울 없이 잘만 살았는데~~ 갑자기 와르르 인생이 무너지는 것 같다! 무엇이 잘못이었을까? 나는 왜 이렇게 살고 있을까? 부끄럽고 인생이 너무 궁상스럽다.
장국영 님의 코칭을 받아 직진하다가 실패한 영이! 제대로 삐쳤는데~~ 장국영 씨는 다시 그녀에게 팁을 준다.
"찬실 씨는 멋있는 사람이에요. 찬실 씨가 정말 하고 싶은 일이 뭔지 알아봐요. 그러니까 조금만 더 힘을 내 봐요. 잘 자요~~"
찬실이는 그동안 버리지 못하고 두었던 영화와 관련된 책과 비디오를 삭 정리하기로 마음먹고 쓰레기로 처분하고 마음도 버리려고 한다.
그런 그녀에게 아코디언을 가져다주는 장국영 씨! (장국영은 알다시피 그녀의 시대에 인기 절정을 누렸던 홍콩의 영화배우이다. 그녀가 장국영과 얘기하면 주인집 할머니가 대체 누구와 얘기하냐고 하는 걸 보면 이제 관객들은 그의 존재를 알아서 판단하실 것!)
주인집 할머니가 그녀를 불러 묻는다. 한글교실에서 '시'를 쓰라는데 대체 '시'는 어떻게 써야 하냐고?
그런데 읽어보려는데 왈칵 치민다. "할머니! 대체 이게 뭐예요? 저는 못 알아보겠어요!" "사람도 꽃처럼 다시 돌아오면은 얼마나 좋겠습니까?" 가슴이 뭉클해지는 명장면이다.
'집시의 시간'이란 영화 보고 처음 영화를 하려고 했던 거죠?" "장국영 씨. 지금보다 훨씬 더 젊었을 때 난 늘 목말랐던 것 같아요. 나는 내를 꽉 채워줄 거라고 믿었어요. 근데 잘못 생각했어요. 채워도~~ 채워도 갈증이 채워지지가 않았어요. 목이 말라서 꿈꾸는 건 행복이 아니에요. 저는 사는 게 뭔지 진짜 궁금해졌어요. 그 안에 영화도 있어요." "제가 멀리서~~ 우주에서 응원할게요. " "장국영 씨! 고마웠어요! 오래오래 기억할게요."
이제 가사도우미는 일주일에 2번만 가고 그녀의 방에는 내쫓길 뻔했던 쓰레기들이 다시 들어왔다!
마침 그녀의 안부를 궁금해하던 영화판 친구들과 영이 씨와 소피가 그녀의 자취방에 놀러 오겠다고 조른다!
한밤중인데 갑자기 자취방 전등이 나가고 얼른 가서 사 오겠다는 후배를 만류하고 찬실이 다녀오려는 데~~ 한사코 가겠다는 친구들이 많은지 결국 모두 함께 가기로 했다~~
"먼저 가라~ 내가 비춰줄게!" 우리가 하고 싶은 것! 보고 싶은 거! 믿고 싶은 거! 를 찾아서 찬실은 다시 대본을 쓰기 시작했다!
이 영화에는 관객이 어록으로 남긴 명대사들이 많다. 나도 그 대사를 따라가 보았다. 씹어 보니 참 의미 있는 말이었다. 이 글의 찬실과는 또 다른 이유로 코로나 이후 위기를 맞은 영화판의 공연판의 이웃들은 얼마나 힘들었을까? 힘들고 어려우면 누워 버리는 사람도 있다. 더러 울고 소리 지르고 분노를 내뱉는 사람도 있다. 그렇게 해서 시원해지고 주변 사람들이 지쳐서 쓰러지기 전에 다행히 일어나 주는 이도 있겠지.
찬실이 내게 특별하게 여겨진 것은 그 고통의 순간 좌절의 순간에도 자신에게로 화살을 돌리는 사람이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나를 알아주지 않는다고 서운하고 자존감이 바닥까지 내려왔지만 스스로를 내 힘으로 부양할 방법을 찾으면서 쉼 없이 자신에 대한 성찰을 해 나간다.
영화 속의 장국영은 그녀의 또 다른 자아의 이름이다. 그녀가 얼마나 멋진 사람인지 잊고 있을 때마다 일깨워 준다. 처음 영화를 시작하던 그 시간으로 그녀를 이끌고 가서 그 날의 그 순수한 감동을 다시 채워주는 것도 그녀 자신이다. 영화가 아닌 다른 사랑으로 공허한 시간을 채워보려고 할 때 그녀를 응원해 주는 것도 역시 자기 자신 안에 있는 장국영이다. 자신에 대한 믿음과 깊은 성찰의 시간을 통해 불신과 절망의 시간을 당당하게 걸어가는 찬실이에게 박수를 보내며 ~~
아무것도 남은 게 없는 그녀에게 왜 복이 쏟아졌는지를 알겠다. 주인집 할머니의 친절, 동료의 일자리 제공, 초라해진 그녀와 무엇을 해도 함께 하고 싶어 하는 후배들~ 그녀가 오로지 한 길만 걸으며~~ 한밤중에 전구를 사러 가고, 행여 넘어질 세라 뒤에서 불빛을 비춰주고 싶어 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이 아닐까? 보고 나면 마음이 따스해지고 주변 사람들이 고마워지는 영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