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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느 Sep 23. 2021

호기심 박스 열정

흐르는 물결에 나를 맡기는 것이 쉽다!

 직장을 그만 두고 나서 쭉  변덕스러운 호기심 박스같은 열정에 자꾸 일을 벌이고 있는 나! 남편은 그럴 때마다 재미있을 만큼만 하라고 절제를 권한다. 그의 말인즉 취미생활을 일처럼 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여가시간을 휴식으로 채우는 그는 영상과 음악, 투자관련 경제방송으로 소일하는 것을 좋아한다. 나처럼 뭔가 손에 쥐고 자꾸만 또 다른 일을 만드는 게 이해 안 갈 사람이다. 물론 그는 내 글이나 작품에 대한 냉정한 비판과 칭찬을 아끼지 않는 첫번 째 관객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 열정이 오롯이 한 개에 집중되면 좋으련만 변덕스러운 호기심 박스라는 것이 문제이다. 한 마디로 알고 싶고 배우고 싶은 것이 너무 많은데 거기에 한 번 관심을 보인 것에 꼬리에 꼬리를 물고 또 다른 호기심을 찾아간다. 그 과정에서 깊이 있는 탐구가 이루어진다면 뭔가 대단히 뿌듯한 것을 얻었을 만도 한데 정신을 차려 보면 조금 방향이 다른 곳에서 헤매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한 마디로 처음에 시작한 것의 매듭을 짓지 못하고 또 다른 호기심을 따라가다가 지금 어디에 서 있는지 모르는 상태가 되기도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이렇다. 나는 집에 남아도는 색연필로 1일 1 그림을 그리다가 디지털 드로잉을 하는 이웃의 그림을 보게 된다. 아! 저건 뭐지? 그림 도구를 다양하게 구입하지 않아도 물감을 손에 묻히면서 난리를 피우지 않아도 디지털이 진짜 같은 효과를 내어 줄 수 있구나. 사진을 안 찍어도 그림을 인스타그램에 바로 게시할 수 있다니!      


신문물에 감탄한 나는 망설이다 결국 고가의 아이패드를 구입하고 온라인에서 디지털 드로잉을 배우게 된다. 특정 앱으로 그림 그리는 법을 배우다가 그 미션 달성 중에 수채화 붓의 효과로 수채화를 그려내게 되는데, 아무래도 자연스럽게 물감을 쓰는 방법을 배우지 않고는 잘 그릴 수가 없을 것 같다.


그런 나의 눈에 수채화 강의가 들어온다. 그렇게 수채화 강의를 시작해서 배우는 동안 원래의 디지털 드로잉 강의는 동면에 들어갔다. 제한된 체력으로 두 개를 한 번에 해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호기심을 채우고 나서 다시 한동안 쉬고 있던 디지털 드로잉의 세계로 돌아가 보니 다 잊어버려서 기능부터 새로 시작해야 한다.      


천신만고 끝에 다시 시작한 디지털 드로잉 강의를 완강하고 나서 이제는 수채화 강의의 나머지 부분을 완성하는 게 맞다. 이때 다가온 또 다른 인물화 강의! 다시 인물화 그리기에 마음을 빼앗기고 등록을 해 본다. 이 인물화 그리기는 이제까지 강의의 최고봉이었다. 끙끙거리며 강의를 겨우 따라가서 완강에 이른다. 그럼 이젠 수채화를 완성해야 할 타이밍인데.     

 

여기서 다시 인물의 전체적인 모습을 그리고 싶은 유혹에 빠져 크로키 강의를 시작하는 것이 아닌가! 정신 차려 보니 동시에 감성 디지털 드로잉의 중급 단계를 신청하고 있다. 이렇게 늘 하나를 시작하고 있으면 거기서 스멀스멀 올라오는 또 다른 호기심이 나를 다른 곳으로 인도하고 계속 그 호기심의 길을 쫒다가 정신 차려 보면 또 다른 호기심의 앞에 서 있다.

     

이젠 끝나기 전에는 절대 시작하지 말자고 해놓고 변덕스러운 호기심 박스는 계속 다른 창을 열기 시작해서 나를 지치게 만든다. 이런 나의 호기심 박스를 닫는 유일한 방법은 여행을 떠나는 것! 여행에서 돌아오면 의욕이 생기는 곳이 정해지고 잠시 충전된 힘으로 집중한 강의를 끝낸다. 그런데 호기심 박스라고 해서 세상 모든 것에 관심이 생기는 것은 아니다. 돈 공부를 한다고 사놓은 책과 강의는 번번이 후회한다. 언제 다 끝낼까 쌓인 책과 강의 앞에서 좌절감을 느끼기도 한다. 이래서 생긴 대로 살아야 하는가 보다. 별로 재미가 없다! 




그래서 요즘 나는 그냥 이 호기심 박스가 열리는 곳을 따라가 보기로 했다. 대체 어떤 곳으로 어디까지 열리는지 보리라! 나도 내 안의 호기심의 정체가 궁금하기 때문이다. 흐르는 물결에 나를 맡기는 것이 버티는 것보다 쉽겠지. 그렇게 호기심 박스에 나를 맡기고 매일 하루를 설레는 마음으로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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