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느 Dec 06. 2021

빨간 머리 앤 속편

-해피 크리스마스-


빨간 머리 앤을 진심으로 아껴 주셨던 팬이자 친구인 여러분들을 프린스 에드워드 섬 초록지붕의 집 크리스마스 파티에 초대합니다. -Anne Shirley





갑작스러운 크리스마스 파티 초대장을 받고 잠시 나는 당황했다. 대체 누굴까? 영어로  그녀의 이름을 확인하는 순간 그녀를  눈에 알아보았다. 끝에 e 붙은 Anne!  기억대로라면 그녀는 프린스 에드워드 섬에 사는  빨간 머리   것이다. 그녀가 나를 이번 크리스마스에 프린스 에드워드  그녀의  그린 게이블로 초대하겠다고 한다.  그것도 그녀가 길버트와 함께 준비한 정성스런 크리스마스 파티에!


한 때 그녀의 열렬한 팬이었던 나는 왜 앤이 그토록 성공적이었던 학창 시절을 퀸스에서 보내고 보장된 장학금의 기회를 버리고는 전문대학 졸업 후 다시 고향으로 돌아와서 눌러앉게 되었는지 조금은 아쉽고 궁금했다. 다음은 그녀를 통해 들은 그 뒷 이야기이다. 여러분의 이해를 돕기 위해서 그녀의 이야기에 나의 삽화를 덧붙여 본다. 그녀가 여전히 행복하다는 이야기를 들었고 나처럼 한 때 그녀의 팬이었을 여러분들에게도 이 기쁜 소식을 알려주고 싶다.





-해피 크리스마스-


앤이 매슈와 마릴라 남매와 함께 살게  초록지붕 (Green Gable) 앞에는 작은 시내가 흐르고 있었다.  앞으로는 프린스 에드워드 섬의 평화로운 목초지가 펼쳐져 앤은 마음껏 상상력을 펼치면서 뛰어다녔다.  내리는 12월은  얼마나 아름다운지! 초록 지붕 위에 밤새 소리 없이 눈이 내리면 온통 은세계가 된다. 마을에서 조금 떨어져 있던 초록지붕 집은  설원에서 유일한 안식처 인양 적막하고 고요한 가운데 숨이 멎을 만큼 아름다웠다.

겨울밤 뭔가 인기척을 느껴 창문을 열면 깜깜해진 밤하늘 저 높은 어디선가 눈송이가 별처럼 반짝이면서 흩날렸다.



앤은 가끔 생각에 잠기곤 했다.

"정말 이 집에 살게 된 건 행운이야! 어디 가더라도 이 집으로 꼭 다시 돌아올 거야."

앤은 그 다짐대로 교사가 되어 다시 고향집으로 돌아왔다. 이 번에는 마릴라 아주머니의 보호자가 되어 매슈 아저씨가 떠난 그린 게이블을 지키기 위해서.




세월이 흘러 매슈와 마릴라에게 초록지붕의 집을 물려받은 앤! 두 사람은 이 번 크리스마스엔 친구들을 집으로 초대해서 따뜻하고 특별한 파티를 열어주고 싶었다. 길버트의 아이디어로 깊은 숲속에서도 이 집을 금방 발견할 수 있도록 집 앞에 흐르는 작은 시내에 놓인 다리엔 멀리서도 한눈에 환히 보일 수 있는 작은 전구를 촘촘히 달았는데 불빛이 잔잔한 물 위를 비추는 모습이 얼마나 아름답던지!

집 앞에 우뚝 선 가장 키 큰 나무에는 간밤에 내린 눈으로 눈꽃이 화려하게 피었고 그 둘레에 영롱한 노란 은종의 띠를 감아 준 다음 맨 위에는 별을 장식했다. 그렇게 크리스마스트리의 기본 데코레이션은 끝난 셈이었다.




앤은 좀 더 화려하고 눈부신 트리를 만들기 위해 그동안 아껴 둔 화려한 장식을 모두 꺼냈고, 친구들에게 주는 메시지와 작은 선물상자를 포장하여 키 큰 나무 위에 멋있게 배치하는 그 어려운 일을 말없이 길버트는 뚝딱 해치웠다.


"길버트! 이렇게 근사한 트리는 처음이야. 정말 고마워."


"! 이런  아무것도 아냐. 앞으로  위해    있는 일이  많을 거야. 내가  처음 보았을   작고 야윈 어린 소녀였지만  세상에 맞서는 것처럼 용감했고   눈이 반짝거렸지.  돕고 싶어서  주위를 빙빙 돌았는데 내가  빨간 머리를   놀린 뒤로는  곁에  보지도 못했지. 하하하! 그 나이의 남자아이들은 호감도 장난으로밖에 표현  해.”


" 예쁘고 귀여운 여자 아이들이 널 많이 좋아했는데 왜 하필 빨간 머리 주근깨 볼품없는 말라깽이를 선택했어?"


"누군가를 좋아하는 데 이유가 있니? 기억나는 건 네가 특별하고 이상하게 끌렸다는 거야. 넌 나를 자주 감동시키더라. 다른 여자 아이들이 속임수나 사소한 경쟁을 하면서 누군가의 호감을 얻으려고 노력하는 그런 일에 넌 전혀 관심이 없었지. 네가 입을 열면 생전 처음 들어보는 새로운 어휘들이 쏟아졌지. 네가 등장하고 나서야 나는 학교에서 진정한 라이벌이 생긴 기분이었어. 넌 뭔가 이상이 높고 맑고 초연한 사람 같았어. 너와 언젠가 맺어질 거라고 생각하고 부끄럽지 않게 나를 지키려고 노력했어. 그리고 이제 넌 남자들이 누구나 관심을 가질 만큼 섬세하고 우아한 여인이 되었는 걸."


오늘은 앤보다 길버트가 왠지 더 말이 많아졌다. 앤이 길버트의 청혼을 승낙한 이후 길버트는 오랜 숙제를 풀고 세상을 다 얻은 기분이었다. 앤은 그런 길버트의 손을 꼭 잡아 주었다. 길버트가 그녀를 놀렸을 때 그녀가 왜 그렇게 화가 났는지는 말하지 않았다. 생전 처음 어떤 남자아이에게 관심이 생겼는데 겨우 '캐럿(당근)' 이란 소리를 듣고 땋은 머리는 잡아당겨지기까지 했으니~ 그날의 길버트는 석판으로 내리칠 만했다.



둘이서 집 앞의 눈을 치우며 힘께 만든 근사한 눈사람을 트리 옆에 세워두니 손님들을 위한 문지기가 되어 주었다.




작은 크리스마스트리를 넣은 유리볼 조명은 다리 앞에서 길잡이가 되어 줄 듯하다.

May your life be happy!

새해에 대한 행복한 기원을 가득 담아서~



이곳이 앤의 집인 줄 한동안 못 본 고향 친구들도 한눈에 알아보도록 집 현관문 옆에 앤의 어린 시절 모습을 담은 액자도 걸어 두었다. 문이 잠겨 있으면 들어갈 수 있게 열쇠도 같이, 주황색 수첩엔 각자의 소원 한 줄씩 쓸 수 있도록 비치해 두었다. 겨울 한파에 떨 친구들이 걸칠 스웨터도 함께 준비 완료!



크리스마스 아침에 대접할 브런치 메뉴는 여름에 만든 딸기청으로 데코한 딸기 셰이크와 진하게 내린 커피에 고소하고 달콤한 밀크 크림 토핑, 입안에서 사르르 녹는 과일 타르트!!! 달달한  브런치를 함께 먹으며, 친구들과 그동안 밀린 이야기를 풀어놓을 생각에 앤은 가슴이 설레었다.




친구들이 집 밖에서 눈 구경을 할 수 있도록 키높이 의자도 놓았다. 함께 나란히 놓인 의자 두 개에 먼저 앉을 사람은 누구일까? 혹시 눈 내리는 밤 새로운 로맨스의 주인공이?? 왠지 설레는 마음은 뭘까!



집 밖 풍경을 둘러보고 나니 이제 앤은 안심이 되었다. 이 정도면 친구들에게 가슴 설레는 크리스마스 풍경을 선물해 주기에 충분할 것 같다. 눈 내리는 그린 게이블의 화이트 크리스마스를 제대로 보여주고 싶었다. 다시 집 안의 파티 조명을 점검해 보니 완벽했다. 보기만 해도 추위로 언 몸이 따뜻하게 녹아내릴 것 같은 기분!!



집 안을 둘러보니 이번 여름에 길버트와 둘이서 찍은 사진이 걸려 있고 마치 그녀의 현재를 말해 주는 듯이 모든 것이 편안하고 만족스러웠다. 이 사진을 보면 앤은 행복해졌다. 길버트가 청혼하던 그날이 떠오르고

그와 함께 할 초록지붕의 삶이 눈앞에 그려졌다. 처음 이 집에 도착했을 때의 그 암담했던 고아 소녀가

감히 꿈조차 꿀 수 없었던 삶을 살고 있다!

메슈 아저씨의 농사일을 도와줄 남자아이가 아니란 이유로 기차에 태워져 고아원으로 돌아갈 뻔했던 그녀가 이제는 당당한 어른이 되어 마을 사람들에게 신망 있는 교사가 되었, 앞으론 이 마을에서 믿음직한 의사가 될

길버트와 꾸려갈 삶을 생각하면 가슴이 벅차올랐다.


앤은 이제 실내 벽난로 옆에 설치된 작은 트리에 불을 환히 켰다. 마지막 남은 일을 하기 위해서였다.



이미 구두로 초대는 했지만 정식으로 초대장은 내일 길버트와 함께 직접 전해주고 싶다. 아마 멀리 있는 친구에게는 메일로 보내야 할 것이다. 정말 이 파티가 친구들에게 작은 위로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크리스마스 연휴로 앤의 학교도 문을 닫을 예정이라 곧 졸업할 아이들에게 도움이 될 말을 떠올려 보았다. 그녀가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딱 이거 하나였다.


♡ 네 마음의 소리를 들으렴!
다른 누구 아닌 너의 인생을 살아! ♡


교실 뒤에 교실 뒤 게시판에 그녀가 손수 쓴 이 캘리그래피를 걸어두고 총총히 나왔다. 그래! 이거면 됐어!



앤이 장학금을 받는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에이번리 학교의 교사가 되기로 했을 때 고민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앤은 더 넓은 세상에서 좀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미래의 작가가 될 준비를 하고 싶었었다.

마을 사람들이 그녀를 칭찬했듯이 단지 매슈와 마릴라의 은혜를 갚기 위해서만 그린 게이블에 남았던 것만은 아니다. 앤의 외로운 영혼을 채워 준 그들의 사랑과 은혜를 어찌 잊을까!! 그러나 더 자주 그녀의 마음 깊은 곳은 불쑥불쑥 그린 게이블의 대자연이 떠올랐고 공부하던 틈틈이 그녀의 마음을 붙들곤 했다.




앤은 그 다짐대로 교사가 되어 다시 고향집으로 돌아왔다. 언제 어디서든 그녀는 다시 시작할 수 있었다.




작가 수업은 결국 살아온 이야기야! 내가 살아온 이야기를 쓰면 된다!


그리고 그녀는 그녀의 마음이 시키는 대로 그린 게이블에 길버트와 함께 남았다.

매슈 아저씨를 갑자기 영영 떠나보내고 나서 앤은 그제야 알 것 같은 기분이었다!!!

인생에서 중요한 것은 우리를 기다려 주지 않는다.




나는 십 대 시절부터 <빨간 머리 앤>을 너무나 좋아해서 만화로 소설로 DVD로 그녀의 흔적을 따라갔었다. 그러므로 '빨간 머리 앤이 하고 싶은 말'을 전하는 것이 그리 어렵지 않았다.  나의 친구 앤 이라면 분명히 크리스마트 파티에 그녀의 친구들을 초대하리라! 그리고 30~40년 이상 그녀를 열렬히 좋아해 온 그녀의 팬이자 친구들을 모두 프린스 에드워드 섬 '그린 게이블'로 초대할 것이 분명하다.


-빨간 머리 앤을 좋아했던 소녀시절-


*이번 겨울 프린스 에드워드 섬 앤의 크리스마스 파티에 참석하고 싶으시다면 캐나다 공무원님이 알려주는 아래 정보를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블로그 마을 크리스마스 시즌에 참여하고 싶으신 분은 아래 링크에서 확인하세요. 참여비용은 공감과 댓글이면 충분합니다.


캘리그라피 by 말리꽃손글씨









          

















매거진의 이전글 바람 부는 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