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우리 딸
지난달 마지막 주부터 통 편지를 쓰지 않았어. 집안일하랴 너 돌보랴 바빠서.. 는 핑계고 오랜만에 단둘이 하루 종일 집에 있다보니 엄마도 마음의 여유가 없었나 봐. 별일 없었으면 지금쯤 새로운 유치원에 적응하고 있었을 텐데 유치원은 고사하고 외출도 제대로 못해서 참 답답하다. 엄마만 그런가? 우리 딸은 나가자는 말없이 혼자 이런저런 놀이하며 잘 노는데 말이야.
처음엔 찰흙놀이, 글라스데코, 그림도 많이 그려주고 책도 열성적으로 읽어줬는데 갈수록 힘이 빠져 뭐하나 집중해서 놀아주지 못하고 있는 요즘, 갈수록 미안한 마음이 커지고 있어. 몇 번 소리도 지르고 화를 냈더니 자주 엄마 표정을 살피는 모습을 보고 참 못할 짓이구나 싶어 한없이 우울해진 적이 여러 날이었어.
엄마가 사근사근 잘 살펴주면 기분 좋은 너인데, 자꾸만 관계를 망쳐가는 게 엄마라는 생각이 들어. 지키지도 못하는 새해 목표처럼 매일 아침마다 화내지 말자. 최선을 다해 시간 보내자. 다짐해도 작심 반나절이야.
그래도 엄마가 제일 좋다며 등에 와서 업어달라 매달리고 사랑한다고 뽀뽀해주는 너를 보며 매일 힘을 얻는다.
언제까지가 될지 모르는 긴 방학에 너와 같이 살아내기 위해 엄마도 엄마의 생활방식을 조금씩 바꾸려고 노력 중이야. 청소도 좀 설렁설렁, 한 끼 정도는 간단하게 먹고(진수성찬으로 차려주진 않지만) 힘들 땐 티비도 보고, 정해진 틀을 벗어나 보려고 해. 그래야 우리 둘이 행복해질 것 같아.
몸이 힘들 땐 꼭 너의 행동에 잔소리를 하거나 필요 이상으로 화를 내니깐 그냥 몸도 마음도 편한 별 탈 없는 하루. 티비 좀 보면 어때. 집 좀 더러우면 어때. 꼭 삼시세끼 정해진 시간에 안 먹으면 어때. 힘들면 설거지도 미루고, 빈둥빈둥 둘이 시간 보내다 나중에 하면 되지. 이렇게 생각해야지.
그리고 하루 한번 둘 다 햇빛 쬐는 시간을 갖자. 집에만 있어 한껏 예민해지는 것보단 가볍게 걷다 오는 게 좋은 것 같아. 지난 목요일에 둘이 5000보 걷고 왔잖아. 안아달란 말도 딱 두 번만 하고 말이야.
그냥 산책만 했을 뿐인데 집에 와서 먹는 사탕과 커피는 꿀맛이었지.
이렇게 사소한 것에 감사하는 마음을 이 기회에 많이 갖고 느껴봐야겠어.
다음 주도 비슷하겠지만 그래도 우리 힘을 내보자.
사랑해 우리 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