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 지금은 사정이 어려워요. 다음 달엔 해결될 거예요.
이 한 마디를 믿고 체불금이 지급되길 기다렸다. 장기근속한 직장이었기에, 그 말이 진실이라는 것은 알 수 있었다. 감정 소모한다고 해결될 일도 아니니 차분히 기다리기로 했다. 하지만 수개월이 지나도록 똑같은 대답만 돌아올 뿐이었다. 몇 년 간 쌓아온 신뢰가 6개월 만에 무너졌다.
‣ 이번 달도 어렵다면 진정서 제출하겠습니다.
오랜 시간 걸려 겨우 체불금을 정산받았던 사회 초년생 때가 떠올랐다. 앞으로는 이런 일이 없을 거라 생각했는데, 10년 후 다시 진정서를 제출하게 될 줄이야. 무려 임금&퇴직금 콤보세트로 말이다. 체불액도 10배나 늘어났다. 내 주식이 이렇게 늘어났다면 정말 좋았을 텐데.
‣ 이래서 지방 좆소 기업은 가면 안 된다니까?
담당 감독관은 대표자와 연락이 닿지 않는다고 했다. 임금 체불로 인해 직원들이 집단 퇴사했다는 소식도 들려왔다. 피진정인(대표) 미조사로 민원 처리 기한도 연장되었다. 왜 미련하게 빨리 벗어나지 못했냐는 익명의 훈수가 들려왔다. 그러게 보통의 사람들처럼 자주 이직하며 나를 확장해 나갔어야 했을까?
‣ 그저 연고지에서 평범하게 살고 싶었을 뿐이야.
어떤 직무든 엘리트 집단에서 고연봉을 받는 건 극소수에게만 주어지는 기회였다. 불나방처럼 뛰어들기엔 여러모로 내 경쟁력이 부족했기에 지역 사회에 남기로 선택했다. 안락한 삶이 될 줄 알았지만, 인력 부족으로 야근이 이어졌다. 그래도 쉽게 포기하고 싶진 않았다. 사람들이 좋았고, 일도 재밌었다.
‣ 지역 장기 실업자의 비중이 높아진 이유.
결국 나는 목적 달성에 실패했다. 안락한 삶을 누리지도 못했고, 커리어 점프를 이룰 만한 특별한 성과도 남기지 못했으니까. 퇴사한 지 6개월이나 지났지만, 이직이 두렵기만 하다. 더 큰 바다로 뛰어들 자신은 없고, 지방에서 계속 일하고 싶지만 같은 결말이 반복될까 봐 겁이 난다. 청년 실업자들 대부분이 나와 비슷할 것이다.
‣ 노멀 엔딩을 위한 배드 엔딩 회고.
이 결말엔 내 책임이 크다. 결국 내가 스스로 선택해 걸어온 길이니까. 같은 결말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 지난 5년간의 미숙하고 부끄러운 경험들을 하나씩 돌아보려 한다. 누군가에겐 반면교사가 될 이야기로, 나에겐 스스로를 성찰하는 기록이 되어, 다음 도전은 노멀 엔딩으로 마무리할 수 있기를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