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 선물을 준비한 이유
5년간의 긴 여정 끝에 마침내 퇴사를 결정했다. 소통하던 거래처에 마지막 인사를 전하고, 후임에게 인수인계를 마치고 나니 괜히 마음이 허해졌다. 이제 전사적인 인사만 남아 있었다. 어떤 방식으로 작별을 고하는 게 좋을지 고민이 되었다. 인터넷상의 퇴사 방법 논쟁에서 벗어나, 좋았던 경험들을 하나씩 되짚어보기로 했다.
‣ 떠난 빈자리를 채워 준 따뜻한 치즈향 카드
오래전에 떠난 동료가 퇴사 기념으로 선물을 돌렸던 순간이 떠올랐다. 처음엔 그 정성이 관례로 남을까 봐 부담스러웠다. 하지만 남겨진 카드를 보고 옹졸했던 나 자신을 반성하게 되었다. 그는 함께했던 일들에 대한 감사함을 전하며 지속적인 연결을 바라고 있었다. 그날 이후로 나는 '끝'과 '마무리'의 차이를 구분하게 되었다.
‣ 어른의 덤덤한 악수가 남긴 마지막 인사
물론, 선물과 카드만이 마무리의 정석은 아니다. 부서 간 갈등으로 감정이 격해졌던 날, 어색한 분위기를 풀어준 상사가 떠오른다. 그는 먼저 덤덤하고 진중하게 사과를 건네며, 어리숙했던 나에게 사과할 기회를 만들어 주었다. 그는 마지막에도 심심한 인사와 악수를 건네며 어른다운 마무리를 알려주고 떠났다.
‣ 나다운 작별을 준비하기로 했다.
말주변이 없기에 덤덤한 인사로 마무리하는 건 어려웠다. 그래서 진심을 담을 수 있는 카드와 효율성 있는 선물꾸러미를 만들기로 결정했다. 내 직무와 연관성도 있고 재밌게 작업할 수 있는 일이니까. 새벽 감성에 취해서였나 감사했던 일화들이 계속해서 떠올랐다. 작은 카드에 담기엔 부족했던 진심이 잘 담겼을까?
‣ 5년 동안 많이 배웠습니다. 그동안 감사했어요.
모든 게 팀원들 덕분이었다. 실수에도 따뜻하게 격려해 주신 상사, 힘들 때마다 도움의 손길을 내밀어준 동료들, 부족한 부분을 완성도 있게 채워준 팀원들이 없었다면 오랜 기간 근속하진 못했을 것이다. 그래서 안주하게 된 것 같다. 좋은 사람이 모여 있다고 해서 회사의 성장이 보장되는 건 아닌데 말이다.
‣ 망했다고 마무리를 안 하면 어떡해요.
퇴사 후 6개월이 지나고 임금 체불 문제로 다수의 직원이 퇴사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체불금에 대한 상실감도 컸지만, 사과나 위로 없는 대표의 태도에 대한 실망도 커 보였다. 당장의 분노는 회피했지만, 결국 자신의 평판을 추락시키는 행동이라는 걸 모르는 걸까? 아니면 영향력 없는 근로자들 따위는 신경 쓰이지 않는 걸까.
‣ 나는 돌을 던질 자격이 있는가
만일 나였다면, 실패를 인정하고 고생한 팀원들과 함께 마무리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을지 생각해 봤다. 장담할 수 없었다. 하지만 회피가 정답이 아니라는 것은 안다. 어떤 상황에서든 책임자로서 끝까지 마무리할 수 있는 사람, 과연 나는 그런 사람에 가까웠을지 스스로를 돌아보며 반성의 시간을 가져보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