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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임 Jul 17. 2023

가로등이 없던 밤

기억에 남는 마지막 - 2

 죽음은 왜 이렇게 갑자기 찾아오는 걸까요.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신고 3년 후, 외할머니가 돌아가셨습니다.


 스타벅스에 앉아 아이의 울음소리를 들었습니다. 뭐가 그리도 서러운지. 눈물의 음성엔 높낮이가 있었습니다. 계속 들으니 음악 소리 같기도 하더군요. 


 장례식장의 곡소리는 그와 비슷합니다. 이상한 음률이 있어요. 계속 듣다 보면 나마저 빠져들어 눈물이 나게 만드는 음률.     


 스타벅스에서 우는 아이를 보며 저 아이는 왜 저렇게 울까. 무슨 일이 있는 걸까. 나도 울고 싶은데, 울어도 되나. 저렇게 울어본 지가 얼마나 됐나. 나도 슬픈데.      


 할머니는 장녀였습니다. 두 명의 동생들이 있었습니다. 동생들이 잘 살 수 있도록 시집갈 비용을 마련해 주고, 공부를 할 수 있도록 학비를 지원해 줬습니다. 할머니의 삶은 언제나 타인이 먼저였습니다.     


 외종 할머니들은 빈소에 오자마자 신발을 벗고 인사조차 하지 못한 채 붉은 눈동자로 외할머니의 영정사진 앞에 철퍼덕 주저앉았습니다. 깔린 매트를 주름진 손으로 치대면서 영정사진을 끌어안고 그렇게 우셨습니다.     


 언니. 언니. 나랑 다음 주에 만나자고 하더니. 이렇게 만나려고 먼저 갔나. 

 언니. 언니. 나랑 만나자고 토요일 날 전화했으면서

 어찌 이곳에 있나. 형부 보고 싶어서 이렇게 일찍 가나.      


 할머니는 객사했습니다.

 시골은 가로등이 없었습니다. 할머니가 시집을 와 평생을 사신 지경마을이라는 동네는 보은과 옥천 사이를 가르는 마을이었습니다.     

 이제는 10 가구도 남지 않은 산간 마을. 띄엄띄엄 있는 집들 사이로 가로등이 있었으면 좋았으련만, 도로 근처에만 있던 가로등이 할머니 집까지 비추기는 조금 무리였나 봅니다.      


 야밤에 경로당에 모임이 있어 잠깐 다녀오겠다고 하시던 할머니는 모임이 끝난 후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냇가로 떨어졌습니다. 겨울밤. 따뜻한 곳에서 나와 갑자기 맞은 찬바람에 어지러우셨던 걸까요. 시집와 60년이 넘게 살던 마을에서 발을 헛디디신 건지 그대로 냇가로 떨어지셨습니다.      


 냇가 바로 옆에 있던 시멘트에 머리를 찧고, 목뼈가 세 개가 부러진 채 냇가에 코를 묻고 그렇게 돌아가셨습니다. 제가 자주 앉아 있던 곳이었습니다. 그곳에 앉아 흔들리는 나뭇잎을 보는 걸 좋아했습니다. 나뭇잎 사이로 흐르는 바람 소리를 즐겼고, 부서지는 햇살에 가끔 눈가를 찡그렸습니다.      


 그렇게 떨어진 할머니는 하루가 넘도록 아무도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10 가구도 안 되는 시골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살겠어요. 대부분 60년이 넘게 이 동네에 살아오신 분들이라 냇가를 둘러볼 생각조차 못 하셨던 거죠.      


 결국, 일요일이 되어서야 할머니를 찾으러 온 목사님이 이곳저곳을 둘러보다 냇가로 떨어진 할머니를 발견하고 119에 신고해 사망처리가 되었습니다.      


 그렇게 낙사하신 게 밤이 아니었다면 괜찮았을까요. 거기가 조금만 더 사람이 많은 곳이었다면 괜찮았을까요. 이미 지나가 버린 과거는 만약을 아무리 상상한들 바꿀 수 없겠죠.     


 저랑 엄마는 할머니가 돌아가시기 바로 저번 주에 만났습니다. 모두 할머니를 구정에 볼 생각으로 신정에 가지 않았습니다. 엄마랑 저랑만 할머니를 신정에 만나 흑염소를 먹고 카페에 갔습니다.      


 흑염소가 맛있었는지, 할머니는 국물이 바닥에 보일 때까지 수저를 긁고 또 긁었습니다. 카페에 가서는 제가 주문한 홍시 주스를 남기자 그것까지 싹싹 드셨어요. 먹을 거 남기면 안 된다고 잠깐 타박을 듣고, 저는 결혼 안 할 거라고 이야기하자 그래도 좋은 사람 만나야 한다면서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저는 입을 부루퉁하게 내밀고 혼자서도 잘 먹고 잘 살 거라고 대답했습니다.     


 그게 마지막 대화였습니다.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서 할머니가 우리 집에 와 하룻밤 잤던 날. 저는 할머니랑 같이 잤었습니다. 할머니가 원래 살던 동네는 호숫가가 있어 탁 트여 눈이 편안하니 좋았다고 했습니다. 지금 이곳에 와 평생을 살고 있지만, 너무 산으로 둘러싸여 있어 답답하다고 했습니다.     


 그래도 외할아버지는 좋은 사람이었다고 말했습니다. 당시에는 남편이 여자를 때리는 게 일상화된 시절이었는데, 할아버지는 한 번도 손찌검을 한 적이 없다고 하셨어요. 할아버지가 군대에서 잠깐 휴가를 나왔을 적에 연지곤지를 찍고 가마를 타고 지경마을로 오셨더랬죠.     


 객사해 발견된 시체는 부검을 꼭 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게 절차라더군요. 사인을 밝혀야 한다면서. 모두 할머니의 시체가 훼손되는 게 싫어 반대했지만, 절차를 이길 수는 없었습니다. 할머니의 몸은 이리저리 찢겼고, 두개골 손상 원인 파악을 위해 머리는 다 밀렸습니다. 물에 담겨있던 얼굴은 퉁퉁 부었고, 이리저리 부딪혀 얼굴엔 멍이 들었습니다.     


 입관할 시간이 뒤로 밀렸습니다. 꽃이 부족해서. 할머니의 몸을 수의로 다 가리고 손목을 단단히 고정한 채 관에 뉘었지만, 머리를 다 밀어버려 유가족이 보기 힘든 모습에 머리까지 장식할 꽃이 부족해 그 꽃을 사 오느라 염하는 시간이 늦춰졌습니다.     


 제가 서울 구경시켜 드리겠다고 말했을 때 할머니 표정이 잊히지 않습니다. 너무 좋아하셨거든요. 결국, 못 해드렸지만, 그 미소가 눈앞에 아른거립니다.      


 할머니는 생전 잘하지 않던 화장을 하고 수의를 입고 꽃으로 꾸며진 관에 누워 있었습니다. 어떻게 이렇게 갑자기 돌아가실 수가 있을까. 미소 짓던 할머니의 표정과 할머니 관에 꾸며진 생화의 향이 뒤섞였습니다. 다음에 된장 고추장 담그면 와서 도와드리겠다고 했었는데.      


 발인하고 할머니 집을 둘러보았습니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후로 멈춰버린 경운기, 소똥이 쌓여있던 곳에는 쓰레기가 쌓여있었고 작은 비닐하우스는 모두 찢겨 바람에 휘날렸습니다. 뼈대만 남은 비닐하우스에는 잡초가 가득했습니다.     


 할머니가 키우던 개는 발인을 할 때 주위를 맴돌았습니다. 까마귀가 울면 마치 싸우기라도 하듯 조용히 하라고 외치는 것 같이 짖어댔습니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실 적 두었던 조화에는 먼지가 묻어있었습니다.      


 할아버지의 비석을 들어내고, 할머니의 유골함을 함께 담았습니다. 할머니조차 땅 밑으로 가라앉아버리셨네요. 먼지가 쌓인 조화. 조금은 낡아 버린 비석 사이로 엄마가 말했습니다.     


 나는 이제 고아야. 아무도 없어.      


 죽음의 끝에 남은 사람들은 유골함 위에 흙을 덮듯, 가슴에 추억을 덮으려 노력했습니다. 마음이 겨울이 되었나 봅니다. 흙이 얼어 잘 덮이지 않았습니다. 준비되지 않은 마지막은 왜 이리 힘든 걸까요. 기억에 담고 싶은 사람들의 끝은 아직도 허전하기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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