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월 1일
매 년마다 1월 1일은 이상하게 특별하다. 사실 별다를 것 없는 하루인데 한 해의 첫 시작이라 그런지 기합이 잔뜩 들어가 있다. 연말이 되면 괜스레 나의 일 년을 돌아보고, 신년이 되면 1년의 계획을 세운다.
잔뜩 기합이 들어간 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1월 1일 날 뭘 하지. 계속 고민했다.
12월 31일에는 일몰을 봐야 할 것 같고, 1월 1일에는 일출을 봐야 할 것만 같았다.
매년은 아니었지만, 작년에는 1월 1일 날 산을 올라가 가족들과 함께 일출을 봤었다. 새벽부터 출발해서 한참을 달려 도착한 서해바다. 동해바다는 아니었지만, 해는 어디서도 뜨니까 라는 마음으로 조금 가까운 변산반도를 갔다.
깜깜한 밤. 가로등도 없어 핸드폰 불빛에 의지해 올라간 산 위. 모든 사람들이 달달 떨면서 해가 뜨기만을 기다리고, 조금 더 가까이 가보겠다고 펜스가 쳐진 곳 앞에는 사람들이 바글바글했다. 7시 30분 정도가 되자 모두가 이제 곧 해 뜰 시각이다 하면서 계속해서 구름 사이를 뚫어져라 쳐다봤다. 그러나 정상에서 해는 보이지 않았다.
나와 우리 가족은 조금 실망해 이제 내려갈까 하고 진흙밭을 조심스럽게 걸어내려 갔다. 추울까 봐 껴입고 간 롱패딩에 진흙이 묻을까 조심하고, 내려가는 길에 사진도 같이 몇 번찍었다.
거의 다 내려왔을 때, 정말 한 3분이나 5분 정도만 내려가면 되는 곳에서 해가 보였다. 저 아래서부터 떠오른 해가 선명하게 보였다.
웃긴 일이었다. 정상에서 해를 보겠다며 아득바득 걸어 올라간 곳에서는 보지 못하다가 내려오는 길에서야 보이다니. 조금은 허탈하고, 약간은 허무했다.
막상 시간이 지나 깨달은 것은 내가 원하는 것이 올라갈 때 보이지 않더라도 내려갈 때 보일 수도 있다는 것.
이걸 너무 뒤늦게 1년 만에 깨달아 적고 있다.
올해도 가족들과 함께 해돋이를 보러 가자고 이야기가 나왔었지만, 나랑 엄마랑 대판 싸우는 바람에 다 무산됐다. 결국 나는 집에 가지 않았고, 1월 1일 날 혼자 떡국을 끓여 먹고 혼자 강화도를 여행 갔다 왔다.
1월 1일의 일몰을 보고 싶었다.
1월 1일의 일몰. 저무는 해. 내려갈 때 보였던 일출처럼 일 년이 시작되는 곳에서 만나는 끝을 맞이하고 싶었다.
결과는 대실패.
기대를 하고 석모도 온천에 가서 일몰을 기다렸지만, 오늘따라 구름이 잔뜩 껴 하늘이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5시 25분이 일몰 시각이었지만, 5시 30분이 되고, 5시 45분이 돼도 하늘이 조금씩 남색으로 변해갈 뿐 저무는 해가 보이지는 않았다.
나는 이걸 보려고 서울에서 2시간을 걸려 이곳에 와서 또 나 혼자 운전을 1시간을 넘게 해서 여기까지 왔는데. 못 보고 가니 너무 아쉽다.라고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같이 온천에 앉아 있던 커플들의 이야기가 들렸다.
"일몰은 못 볼 것 같긴 한데, 구름 끼고 안개 끼니까 되게 운치 있다. 산신령 된 것 같아."
온천에서 피어오르는 수증기가 아지랑이처럼 눈가에 흩어지고, 저 멀리 보이는 섬들은 구름 속에 가려 마치 구름이 섬에 내려앉은 듯했다. 썰물 때여서 갯벌이 듬성듬성 보이고, 사람들은 머리를 뒤로 젖힌 채 온천에 들어가 몸을 풀고 있었다. 가족들이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소리들이 들리고, 어떤 아이는 이곳은 너무 뜨겁다며 떼를 쓰고 울다가 엄마의 포옹에 울음을 그치고 안겨있었다.
누구 하나 싸우고 누구 하나 힘들어하는 이 없이 몸을 노곤하게 푼 채 찬 바람을 맞으며 뜨신 물의 아지랑이를 너울거리며 바라보는 것. 그냥 그것 자체만으로 의미가 있었던 걸까 싶었다.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같이 들으면서 속으로 웃기도 하고, 놀라기도 하는 순간들이 재밌었다.
꼭 목표한 것을 이루지 못했어도 그 안에서 얻어지는 다른 것들이 있는 것 같다.
혼자서 이렇게 여행을 와서 운전을 해본 것도 처음이었다. 사실 며칠 전부터 엄청 걱정을 했다. 거의 3개월~4개월 만에 하는 운전인데 조수석에 알려주는 이 하나 없이 혼자서 운전을 해도 되는 걸까. 다 까먹은 건 아닐까. 서울에서 직접 가는 건 무리니까 그래도 강화도면 괜찮지 않을까. 하는 걱정거리가 계속해서 머리를 맴돌다가 어제 눈이 많이 왔다는 소식에 오늘 취소를 해야 하나를 수십 번 고민하고 쏘카 앱을 들락날락거렸다.
막상 강화도에서 혼자 운전을 해보니까 생각보다 별 것 아니구나를 느꼈다.
이런 말은 자만일 수 있겠지만, 오 나 생각보다 운전을 잘하네?라고 깨달았던 하루.
강화도 동막해변에서는 파도의 형태로 얼어있는 바다를 보고, 책방 국자와 주걱에서는 '숲의 언어'와 '고통에 관하여' 책을 사 왔다. 너무 시골길이라 내가 잘 갈 수 있을까를 고민했는데, 막상 운전을 조심스럽게 하면서 들어가 보니 할만했다. 대신 밤에는 절대 오지 말아야지 하고 다짐한 정도.
가끔은 이렇게 혼자서 운전하면서 여행을 다니는 것도 좋을 것 같았다.
생각보다 얻어가는 게 많았던 여행이었다. 힘 빼기 연습과 더불어 운전에 대한 조그마한 자신감!
2024년에는 힘을 빼고 꾸준히 과정을 즐겨보자.
기합을 넣기 시작하면 오래 못한다.
즐거운 한 해가 되길. 석모도의 아지랑이 속에서 기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