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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임 Aug 23. 2023

그러므로 나는 아무도 사랑하지 않았다

뼈아픈 후회

외할머니는 키가 작았다. 나보다 10cm는 작았을까. 내 키도 대한민국 평균 여성보다 조금 작은 편이었는데, 외할머니는 더 작았다. 그 작은 몸으로 어떻게 다섯 남매를 키우셨을까. 하루는 엄마와 함께 시골에 갔다. 군고구마가 먹고 싶다고 하니, 외할머니는 포일에 고구마를 하나씩 싸더니 가마솥아래 활활 타오르는 장작불 사이로 집어넣었다. 한참을 기다렸을까. 긴 집게를 가져와 이미 재가된 나무들 사이로 검게 물든 고구마를 꺼내왔다. 할머니와 엄마와 방에 들어와 손을 호호 불으며 군고구마를 먹었다. 내가 너무 뜨거워 고구마 껍질을 못 까자 엄마랑 할머니가 하나씩 까서 내 손에 쥐어주었다.


오늘 한 필사에 외할머니에 대한 이야기가 나와 나도 모르게 할머니 생각이 났다. 


외할머니가 산책을 하러 나가면 집에서 키우는 진돗개인 예스가 따라나섰다. 혹시나 밤이 되면 할머니 집에 누구라도 들어올까 예스는 마당에서 동그랗게 몸을 말고는 잠이 들었다. 사람보다 개가 낫다더니. 나보다 예스가 나았다. 


나는 시골에 가는 걸 싫어했다. 어렸을 적 시골에 가는 길은 도로가 안 깔려 있어서 비포장도로를 달려야 했다. 초등학생 때였나. 아직도 그 덜덜거리는 느낌이 기억난다. 나는 특히 차멀미가 심했던 애였는데 그 도로를 달릴 때면 속이 울렁거려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그래서 외할머니댁에만 가면 차 안에서 멀미약을 먹고 잠들어야 했을 정도였다. 


그래도 그때는 할아버지도 할머니도 정정했을 때였다. 할아버지는 내가 타고 싶다고 하면 경운기를 태워줬다. 덜덜거리면서 느릿느릿하게 움직이는 경운기에 앉아있으면 이상하게 멀미가 나지 않았다. 천천히 모든 바람을 맞으며 가서 그런 걸까. 경운기에 타면 내가 진짜 시골에 왔구나 실감을 하기도 했다. 외할아버지는 우리가 오면 키우던 닭을 잡아주시기도 했다. 그때 처음으로 닭 볏이 피라는 걸 알았다. 닭의 목을 치니 피가 쭉 빠져나가는데 닭 볏도 하얘졌다. 너무 신기해 물으니 빨간 닭 볏이 피였던 것이다. 마치 입술 같았다. 


외할머니도, 큰어머니도 돌아가신 지 오래되었다. 두 분의 몸은 흙으로 돌아가고, 물로 돌아가고, 바람으로 돌아갔다. 세월이 갈수록 점점 단출해지는 기억의 나라에 살아계실 뿐.


우리 외할머니와 외할아버지도 돌아가셨다. 그렇게 오래되지는 않았다. 외할머니는 이번연도에 돌아가셨고, 외할아버지는 3년 전쯤 돌아가셨으니까. 평생을 당연하게 여겼던 분들이 기억의 저편으로 사라졌다. 다행히 몇 개의 사진이 남아있긴 하지만, 실제로 할머니가 평소에 어떤 표정을 지었는지, 어떤 말투로 이야기를 했는지, 꺼슬한 손의 감촉과 몸에서 나는 흙냄새는 점점 희미해져 갈 것이다. 


황지우 <뼈아픈 후회>

슬프다
내가 사랑했던 자리마다
모두 폐허다

언제 다시 올지 모를 이 세상을 지나가면서
내 뼈아픈 후회는 바로 그거다
그 누구를 위해 그 누구를 
한 번도 사랑하지 않았다는 거

젊은 시절, 내가 자청한 고난도
그 누구를 위한 헌신은 아녔다
나를 위한 헌신, 한낱 도덕이 시킨 경쟁심
그것도 파워랄까, 그것마저 없는 자들에겐
희생은 또 얼마나 화려한 것이었겠는가

그러므로 나는 아무도 사랑하지 않았다


나는 나에게 질문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내가 온전히 사람을 이해한다고 믿었다 한들, 사랑이라 믿었다 한들 그것은 나를 위한 이해요. 나를 위한 헌신이요. 나를 위한 희생이요. 나를 위한 자기부정이 아니었는지도.


시간이 지나 떠나보낸 사람들을 생각하면, 그 사람들에게 했던 나의 행동들이 결국 나를 위한 것이었다는 걸 깨닫는다. 할머니를 찾아갔던 것도 효도를 하기 위해 찾아간 게 아니라 내가 시골에서 부는 바람을 좋아해서, 나뭇잎의 결이 볕에 흔들리는 걸 보는 게 좋아서, 외양간에 있는 소들의 큰 눈망울이 아름다워서 찾아갔던 거였다. 


'나를 위한' 것. 병가를 내고 본가에서 지내면서 가끔 엄마와 함께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할 때가 있었다. 암에 걸렸던 엄마와 보낼 수 있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노심초사했던 상념이 남아. 오히려 다친 게 다행일까. 그런 생각을 했던 적이 있었다. 하지만 내가 본가에서 지내는 건 엄마를 위한 효도가 아니라 나를 위한 것이었다. 나는 정말 가끔가다 엄마를 챙길 뿐, 거의 모든 시간 엄마는 나를 돌보았다. 청소, 빨래, 음식 그 모든 것들을 움직이지 못하는 나를 위해 쉴 새 없이 움직였다. 


나를 위한 이해, 나를 위한 헌신, 나를 위한 희생, 나를 위한 자기부정.

스쳐 지나간 인연들의 갈래에서 나는 정말 누군가를 사랑했다고 말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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