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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임 Dec 12. 2023

내겐 너무 어려운 한 마디 '안녕하세요'

다정함을 연습할 때 가장 먼저 해야 할 것은 무엇일까?

바로 나 자신을 돌아보는 것이다. 내가 상대방에게 어떤 태도를 취하고 있는지, 무의식적으로 어떤 말들을 건네고 어떤 행동을 하는지 의식의 차원에서 살펴봐야 한다.


내가 나를 돌아봤을 때 가장 큰 문제는 타인에게 관심이 없다는 점이다. 어떤 사람이 연애를 하는지, 결혼을 하는지, 오늘 있었던 일은 무엇인지, 아이에게 어떤 기쁨이 있었는지. 무슨 일이 있었는지, 오늘은 어떤 것 때문에 화가 났는지. 딱히 관심이 없다. 내가 이야기를 할 때는 습관적으로 내가 느끼는 감정을 다른 사람에게 말하며 일종의 해소를 위해 말한다. (그것도 좋지 않은 습관인 건 알지만, 나도 모르게 말하고 있다.)

아마 다른 사람들도 내가 관심이 없다는 걸 느꼈을 것이다. 조카의 이야기, 아이의 이야기, 남편의 이야기, 회사 상사의 험담. 아 그랬군요. 응대는 할 수 있지만 딱히 귀담아듣지는 않는다. 와 진짜 너무 귀여웠겠어요. 웃으면서 노력하는 영혼 없는 리엑션. 이게 내 사회생활이다.

그래서 그런지 내 카카오톡은 항상 광고메시지로 가득 차있다. 나에게 연락할 사람이 많지 않아서 어떤 사람에게 연락이 올 때면 나도 모르게 긴장하게 된다. 남자친구가 아닌 이상 매일매일 연락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 사실 남자친구도 매일 연락하는 게 번거로울 때가 있다. 그래서 결국 헤어졌지만.


동기들이랑 술을 마신 적이 있었다. 내가 팀장님한테 들은 소통문제에 대해 이야기를 들으니, 동기들은 이것저것 조언을 해주었다.


"거절할 때는 꼭 쿠션멘트를 넣어야 해.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아닌데 싶을 때, 매뉴얼을 읽지도 않고 질문할 때 답답하겠지만, 마치 나는 노력했지만 어쩔 수 없다는 것처럼 말해야 해. 아마 상대방도 안 되는 거 알면서 전화하는 게 절반일걸. 나머지 절반은 진짜 몰라서 물어보는 걸 수도 있지만. 그럴 때 필요한 건 노력해도 할 수 없다는 메시지를 돌려 말하는 거야."


"상대방이 인사할 때는 받기만 하면 아주 욕먹는다. 심지어 우리는 직급이 낮잖아. 사원이 인사를 받기만 한다? 나중에 조직도 찾아보고 연차도 낮은 자식이 인사를 받기만 해? 욕먹어."


사람과의 관계는 늘 힘들다. 사실 대화하는 것도 재미가 없어서 자리를 채우기 위해 앉아있다가 가끔 하품이 나오는 걸 참고, 견디다 일어나는 게 다반수인데, 다른 사람들까지 챙기며 일을 해야 한다니 어지간히 힘든 게 아니다. 

관계는 나에게 단 초콜릿을 먹어 속이 니글거리는 느낌이다. 사람들과 가까이 있을 때는 즐거운 면도 있지만 힘들어 속이 니글니글 거리고, 멀리 있으면 단 게 생각나는. 이상한 계륵 같은 존재들. 혼자도 잘 살고 싶지만 혼자 사는 건 외롭고, 견디기 어렵다.


그래, 인사라도 잘하자. 

하지만, 나에게 인사는 너무 어렵다. 


전화통화를 할 때도, 엘리베이터에서 이웃주민을 만났을 때도, 지나가다가 직원을 마주했을 때도 잘 아는 사이가 아니라면 선뜻 먼저 인사하지 않는다. 안녕하세요.라는 말이 입 안에서 웅얼거릴 때도 있지만, 아무 생각 없이 지나쳐가는 게 다였다. 가끔은 사람을 기다리는 게 번거롭고 모르는 사람이랑 한 공간에 있고 싶지 않아 엘리베이터에서 닫힘 버튼을 누를 때도 있다. 눈이 마주치면 가볍게 목례를 하려고 하지만 아마 보는 사람은 이게 목례인 건지, 아니면 목이 아파서 잠깐 움직여 스트레칭을 한 건지 모를 정도로 내가 느꼈을 때도 고갯짓이 희미하다.


내겐 너무 어려운 '안녕하세요.'


참 일상적이고 아무것도 아닌 단어인데 왜 이렇게 어렵기만 할까. 

안녕하세요라고 인사를 하는 게 상대방과의 관계를 트는 물꼬이기 때문인 것 같다. 인사를 하다 보면 얼굴을 마주치고, 얼굴이 마주치면, 일상을 이야기하고, 일상을 이야기하다 보면 개인사를 알게 되는. 그런 깊이 있는 관계로 나아가는 일련의 과정들의 첫 관문이 바로 인사라서 나는 그게 어렵다. 그렇다고 인사를 못하는 사람으로 낙인찍히지는 않았지만, 괜스레 장벽이 느껴진다.


그래도 밝게 인사하는 사람들을 보면 기분이 좋아지긴 한다.

입가에 머금은 미소로 안녕하세요라고 인사를 건네면 나도 자연스럽게 안녕하세요.라고 답변을 하게 된다. 그게 엘리베이터에서 대화의 물꼬를 트는 마법의 단어다. 마감 시즌이라 요즘 많이 바쁘시죠? 아니에요. 조직개편 때문에 정신없을 텐데 어떡해요. 아휴 뭐 다 바쁜걸요 뭘. 간단한 몇 마디가 오간다.

침묵으로 점철된 어색한 시간이 아니라 조금의 대화는 엘리베이터에서 내릴 때도 안녕히 계세요. 오늘 하루도 수고하세요. 하고 응원의 말을 자연스럽게 건네게 된다. 


다른 사람들의 인사를 받는 것보다는 나도 나서서 인사를 하는 건 어떨까.

그래서 오늘 아침에 용기 내어 목례가 아니라 소리를 내 안녕하세요라고 인사를 했다. 만나는 분들에게 모두는 아니었지만, 자주 마주치는 분들에게 안녕하세요. 하고 인사를 하니 모두 안녕하세요라고 인사를 받아주었다.


녹즙을 배달해 주시는 방문판매원 분은 인사를 하니 샘플을 나눠주시기도 했다.

홍삼즙과 유기농 쌀 요구르트까지. 인사 하나가 먹을 걸 불러일으켰다. 

생각보다 인사가 많은 걸 주는구나. 

가볍게 소소한 이야기를 나누고, 서로의 등을 토닥이고, 자연스럽게 서로의 이야기에 공감을 하는 첫 단계 인사. 사실 밝게 웃으면서 인사하는 건 아직은 어렵다. 얼굴을 봤을 때 자연스럽게 목소리를 내며 인사를 건네는 것 먼저 연습을 해야 할 것 같다. 


여전히 어렵지만, 그냥 조금씩 하다 보면 자연스러워지려나. 

다정함 연습의 첫 단계, 인사 잘하기. 아니 사회생활의 첫 단계인가. 

내겐 '안녕하세요' 인사가 아직도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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