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뇨병 진단을 받다 두 번째
아내가 차려준 음식을 한참이나 쳐다보고 있었다.
정말 샐러드에 두부 반모 데친 것이 내 밥상의 전부였다.
이런 식의 음식을 앞으로 죽을 때까지 먹고살아야 하나 하는 생각에 한숨이 절로 나왔다.
뜨끈 뜨근하고 김이 모락모락 나는 하얀 쌀밥이 갑자기 먹고 싶어졌다.
그래도 참아야 한다는 생각에 침을 꿀컥 삼켰다.
야채를 씹었다. 별다른 드레싱 없이 먹는 채소는 거의 맛을 느낄 수 없었다.
전 같으면 두부에 양념장을 듬뿍 뿌려 한 입 크게 베어 먹고 짭조름한 양념 맛에 고소한 두부 맛이 입안에 확 퍼졌을 것인데 밍밍한 맛만 났다.
괴로운 일이었다.
식도락이라는 말도 있는데 환갑을 바라보는 나이에 이제 낙이 뭐가 있다고 먹는 낙이라도 있어야 하는데 그것이 사라지고 있다.
사람들은 쉽게 말할 것이다.
'약 먹으면 되지!'
약!!!!
말이 쉽다. 그래 약 먹으면 된다.
당뇨를 시작으로 콜레스테롤, 혈압, 관절 약을 나이 들어 수북이 싸여 있는 약봉지를 식탁에 두고 살아야 한다면 끔찍한 일이다.
인터넷과 유튜브를 열심히 살폈다. 평소 그런 정보를 크게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고 믿지도 않았는데 그래도 참고가 되려나 해서 보았다.
보고 나니 공통의 접점이 생겼다.
결국 인스턴트식품과 탄수화물이 당뇨의 주범이었다.
나이를 먹고 건강히 사시는 분들은 모두 식습관에 변화를 주었다. 즉 고기나 즉석식품 탄수화물 중심의 식습관과 잡다한 간식을 줄이고 채소 과일의 조리하지 않는 음식과 식물성 단백질 중심의 식사를 하고 있었다.
나도 오래 살고 싶다든가 건강하게 살고 싶다든가 하는 것을 떠나서 잘 죽고 싶었다. 코에 호스를 넣고, 목에 구멍을 뚫고, 산소 호흡기를 대고 사는 모습은 정말 끔찍하다.
당뇨는 이 모든 것의 출발점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나 스스로를 다른 사람으로 만드는 계기를 줄 수도 있다.
아내가 소위
'나를 따르라' 하는 음식 차림을 그대로 따르는데 동의했다.
평소에 아내와 나는 먹을거리에 입장 차이가 분명히 있었다. 나는 아무거나 대는 대로 입맛 당기는 대로 먹었다면 아내는 순수하고 조리과정을 많이 거치지 않은 자연식을 선호했다.
음식 재료 본연의 맛을 따르는 아내를 보고 평소에 무슨 낙으로 사냐고 비아냥거렸는데 이제 나는 아내의 뜻을 따라야 하는 처지가 되었다.
결국 아내의 말이 옳다는 것을 인정했다.
그렇게 아내가 차려준 아침을 먹은 뒤 오히려 배고픔이 더 했다.
그러나 참아 보기로 했다.
반만 먹으라는 친구의 말과 약을 먹지 말고 식이요법으로 당뇨를 극복해 보자는 아내의 말에 나를 시험해 보기로 했다.
자발적으로 하는 일과 강요에 못 이겨하는 일은 차이가 많다. 내가 만일 다이어트를 하려고 마음을 먹고 이렇게 식이 요법을 한다면 글쎄 그렇게 힘들지는 않을 듯하다. 그렇지만 전혀 준비가 되어 있지 않고 어쩔 수 없는 병 때문에 하는 식이 요법은 괴롭다.
아침을 먹고 점심 먹을 때까지 입에 아무것도 넣지 않았다. 정말 죽을 맛이다.
심지어는 커피도 먹지 않았다.(특히 믹스 커피) 대신에 가끔 소풀 냄새나는 녹차를 마셨는데 혈당 낮추는데 좋다고 녹차를 마셨더니 허기가 더해졌다.
나는 탄산음료는 물론이고 이온음료 그리고 과일 주스라고 편의점이나 마트에서 파는 과일 주스가 혈당을 올리는 주범인 줄 몰랐다. 그런 음식들이 건강을 해치고 있었던 것이다.
누구나 쉽게 마시는 음료가 건강을 해치는 보이지 않는 독가스였던 것이다.
해가 떠 있는 낮시간은 움직임이 제일 많을 때이다. 그래서 활동을 위해 좀 먹어 두어야 한다.
그리도 지킬 것은 지켜야 한다.
된장찌개에 평소에 먹던 쌀밥 대신에 가끔 아내가 해 주던 현미밥이 식탁에 올라 와 있었다. 현미밥은 약간 까슬까슬한 느낌이 입안에 돌아 그다지 선호하는 음식이 아닌데 혈당에 도움이 되는 음식이라 하니 먹을 수밖에.
약간 정제가 덜 된 거친 음식이 좋다고 해서 아내의 말을 따르기도 했지만 아주 오래전 시골에서 먹던 거친 식감의 밥이 생각이 났다. 입이 괴로우면 몸에 좋다는 말이 저절로 생각이 났다.
그리고 반찬으로 막된장에 오이와 파프리카와 상추가 전부였다.
나는 토끼가 되었다.
웃긴 것은 저녁이었다 저녁은 과일과 야채샐러드에 삶은 달걀이었다. 성질이 찬 샐러드는 올리브유와 들기름 그리고 후추를 섞은 드레싱으로 먹는 것이 전부였다.
그야말로 먹는 게 고문에 가까웠다.
더운 여름 간절히 생각나는 음식이 눈앞에서 아른 거렸다.
더운 여름, 비빔국수는 최고의 별미 중에 하나이고 라면도 간편하게, 그러나 강렬한 맛을 내는 인스턴트 음식이다. 그리고 좋아하는 햄과 소시지도 입 맛에 맞는 음식이지만 싹 잘랐다.
과자나 인공감미료가 들어간 간식은 아예 입도 대지 못했다.
일주일 사이에 체중이 10kg이나 빠졌다. 믿어지시겠는가!
입고 있던 바지는 헐렁해지고 여름셔츠들은 한 치수 컸다. 아내는 만족하는 표정이었다.
그리고 약간 기운이 없었다. 음식 조절을 하고 생가는 현상이라며 당분간 참으라는 아내의 말이 좀 야속하게 들린다.
병원을 가기 위해 여행채비를 했다.
부산이 본가니 한 이틀 어머니와 시간을 보낼 생각을 겸했다.
친구와 약속한 시간을 지키려고 아침 일찍부터 서둘렀다.
얼마나 수치가 줄었을까?
아내도 궁금해했다.
일주일 해서 변화가 있을 수도 있고 큰 변화가 없을 수도 있다.
사실 나도 살면서 이렇게 치열하게 먹을거리의 유혹과 싸워 본 일이 없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는 숙제를 검사받기 위해 선생님 앞에 서 있는 학생 같은 기분으로 부산을 향해 차를 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