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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나는별 Feb 11. 2021

공중그네 위에서 중심 잡기

feat. 엄마는 다중이

“엄마, 여기 사인해주세요.”

퇴근하고 와서 저녁을 먹고 있는데 딸 아이가 수학시험지를 내밀었다. 학교에서 평가를 본 모양이었다. 

시험지에는 비가 내리고 있었다. 틀린 문제를 보는 순간 밥 먹다가 숟가락을 탁 내려놓았다.

‘이런 쉬운 문제를 틀렸어?!’

나도 모르게 입은 꽉 다물고 코 끝에서 화가 한숨이 되어 새어나왔다. 어처구니없다는 듯 손으로 이마를 짚으며 입술을 깨물었다. 아이는 그런 내 속을 모르는지 

“아, 펜이 없구나~”

하면서 해맑게 펜을 찾을 찾으러 갔다.

‘두 자릿수 덧셈도 못 하는데 이거 큰일 아니야? 이러다 애 바보 되는거 아니야?’

서둘러 아이에게 수학 교과서를 가지고 오라고 했다. 시계 보는 문제가 나왔다. 

저번에도 몇 번씩 가르쳐줬던 문제였다.

 “작은 바늘이 2에 있고 큰 바늘이 6에 있으면 몇 시야?”

일부러 목소리를 부드럽게 내려고 노력했다. 

 “음.. 2시 6분?”

아... 아.. 벌써 몇 번을 가르쳐줬는데도 엉뚱한 대답을 하는 아이. 내 이마에는 점점 빗금이 그어졌고 슬슬 아이는 내 눈치를 보면서 제대로 대답을 못 한다. 이제 겨우 2페이지인데 인내심이 바닥이 나고있어 이대로 가다가는 아이에게 소리를 지를 것 같았다. 슬쩍 남편을 보았다. 이불 위에 누워 핸드폰 보고 있었다.

 “자기, 뭐해?”

 “나 잔다.”

시계를 보니 밤 9시가 다 되어간다. 코로나19로 아이들이 등교를 못 하고 원격수업을 하는데 특히나 수학 머리가 부족한 딸은 수학 교과서를 미리 봐주지 않으면 혼자서는 원격수업을 할 수가 없다. 다음주 수학 교과의 진도를 미리 챙겨주느라 주말 밤에도 늦게까지 아이를 붙들고 있는데 저리 누워있는 남편을 보면 내 가슴에 라면 물을 끓일 수 있을 정도이다. 

 “아빠가 엄마 보다 수학 잘 하니까 나머지는 아빠한테 가서 알려달라고 해~. 엄마는 좀 씻자. ”  

내일은 월요일이라 일찍 자려고 세수하고 이를 닦으려고 준비하던 찰라,

 “으앙~! 아빠랑 안 해! 아빠 싫어!”

하면서 딸이 눈물을 흘리며 내게 안겨왔다.

 “왜 그래?!”

 “아빠가.. 아빠가.. 때렸어.. 흑흑.. 아빠 미워!”

아이를 가르치다 화를 못 참고 소리를 지를 것 같아서 아빠한테 보낸 거였는데 보낸지 3분만에 아이 머리에 꿀밤을 줘서 올린 남편! 

 “쟤는 나랑 하면 제대로 안 해! 그냥 학원 보내!”

 “누가 우리 딸을 울렸어! 우리 딸이 얼마나 똑똑한데~. 학원 가면 선생님이 화도 안 내고 맛있는 것도 주면서 잘 가르쳐 주시니까 우리 학원 갈까?”

 “싫어! 학원 안 가! 엄마랑 할거야!”

결국 씻지도 못하고 내 품에 안겨 서럽게 펑펑 우는 딸을 달래면서 남편이랑 실강이를 벌였다. 

“아니, 언제는 돈 없다고 외식도 하지 말라며!”

돈 아껴써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일 때는 언제고 쉬운 초등학교 2학년 수학도 못 가르치겠다고 학원을 보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아들 친구네는 아빠들이 아이들 공부도 가르쳐 주고 심지어 영재교육원 신청도 아빠가 해서 연구계획서와 PPT 준비도 밤 12시에 퇴근하고 와서 해준다는데, 오히려 아이의 공부정서를 망쳐버리다니! 

 ‘공부 가르치기 싫어서 일부러 저러는 거 아니야?’

남편은 평상시에 화를 별로 내지 않는 온화한 성격이다. 내가 신경질을 내거나 짜증을 내도 그러려니 하고 잘 넘긴다. 그런데 애 좀 가르치라고 보내 놓으면 꼭 이렇게 애를 울려서 나에게 보내니 일부러 저러나 싶은 생각도 든다. 마음이 복잡하다. 그저 외벌이로도 과외 선생님을 모실 수 있고 아이들과 집안일만 신경 쓰면 되는 분들이 부러울 따름이다. 잘 준비를 하고 배 깔고 엎드려 마음 글쓰기 노트를 폈다. 퇴근하고 집에 들어오면 제2의 직장이 열린다. 쉬고싶지만 해야 할 일이 가득하다. 하지만 마음글쓰기 노트를 펼치는 순간, 그제야 긴장이 풀리며 휴식의 문이 열린다.   

  


- 내 안의 상충하는 욕구는 무엇인가요?     


내 안에는 3가지 자아가 있다. 콩이홍시엄마, 일 잘 하고싶은 정주사, 작가와 수면코치가 되고싶어하는 빛나는별. 직장에서는 주로 정신 없이 정주사가 활동한다. 정신 없이 일 하고 있는데 아들의 영어 선생님한테 문자가 왔다. 아들이 영어 숙제를 제대로 안 해왔다고 잘 좀 챙겨달라는 문자 내용. 아들에게 숙제 좀 똑바로 하라고 문자를 보낼까 하다가 사무실 전화벨 소리에 휴대폰을 내려 놓는다. 이쯤 되면 콩이홍시엄마는 불안해진다. 정주사 옆에 튀어 나와 ‘이따 집에 가면 애를 잡아!’라고 속삭인다. 집에 오면 세 가지 자아가 공존한다. 

아까 시험지를 보는 순간엔 콩이홍시엄마가 튀어나와 걱정스럽게 호들갑을 떨었다. 6월에 복직하여 11월까지 제대로 아이 숙제를 챙겨준 적이 없었다. 복직해서 적응하느라 정신이 없었고 게다가 7,8월엔 아픈 몸으로 직장과 육아를 병행하는 게 너무 힘들었다. 아이들 숙제 확인도 일일이 하지 못 하고 그저 “숙제했니?”라는 질문에 “네”하는 대답이 돌아오면 그것으로 끝냈다. 육아휴직 기간 동안 콩이홍시엄마로서 몸은 아팠지만 정성을 다해 아이들을 키워냈다. 승진 타이밍에도 아이들을 위해 복귀하지 못 해 얼마 전에는 후배들이 나 보다 먼저 승진하는 모습을 보며 씁쓸한 감정을 느꼈다. 이제 복직했으니 승진도 생각하며 직장에서 좋은 평가를 받기 위해 고군분투 해야 할 때이다. 아이들은 이제 초등학생이 되었으니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이 많아졌다. 아이들도 많이 컸으니 스스로 하도록 강하게 키워야 한다고 생각했고 이제 정주사와 빛나는별의 자아가 더 많이 활동하고 싶어했다. 복직을 한 후 10월부터는 나행성 책쓰기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는 아이들의 여러 요구에 “미안해. 엄마, 바빠.”라는 말로 응대하기 일쑤였다. 즐겨보던 웹툰도 보지 않았다. 11월에는 바쁜 와중에 책쓰기 강의도 신청했고, 아침에 일어나서 자기 전까지 책쓰기에만 골몰해있었다. 그동안 콩이홍시엄마로 그만큼 헌신했으면 됬다고 정주사와 빛나는별이 서로 목소리를 높인다. 집에서는 아이들을 챙기면서 내 꿈도 돌봐야 하기에 가끔 나는 스스로 노예 같다는 생각을 했다. 원해서 들어간 직장, 원해서 낳은 아이들인데 어째서 그런 생각이 드는걸까? 매일 반복되는 직장으로 출근, 퇴근하고 집으로 출근이 그렇게 만든 것 같다. 해야할 일에 짓눌린 내 숨통이 트일 때는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운동을 할 때, 즉 자기계발을 할 때이다. 나도 나 스스로 반짝반짝 빛나고 싶기에. 그런데 코로나19로 아이들이 학교를 못 가고 그로 인해 학생들 간의 학습 격차가 심각하다는 뉴스가 나오는데 전업 주부들은 아이들에게 과외선생님을 붙여 벌써 2학기 진도까지 쫘악 뺐다는 얘기를 들으면 맥이 쭉 빠진다. 게다가 아이의 학습 결손을 이렇게 눈으로 확인하는 순간에는 죄책감이 물 밀 듯이 몰려온다. 

 ‘내가 그동안 너무 이기적이었나?’

자기계발 신호등에 빨간불이 켜졌다.

 ‘야, 너 너무 이기적인거 아니야? 퇴근하고 집에 와서 밥 먹으면 7시 반이지. 애들 9시 반에 재워야 하는데 2시간밖에 없거든. 그 때까지 숙제 봐주기만 해도 바쁜데 강의는 무슨 강의야? 이대로 아이 수포자 만들거야?’

콩이홍시엄마가 떠드는 소리를 성찰 노트에 적는다.

 ‘그럼 작가가 되고 싶다던 니 꿈은 어떻게 할건데? 강의도 이미 신청해 놨는데. 게다가 책쓰기 프로젝트를 이제 와서 그만 둔다고 할거야?’

빛나는별의 목소리도 성찰 노트에 적는다.

 ‘너 이제 승진 앞두고 있다. 책은 무슨 책이야? 그럴 시간에 지침이나 더 보고 야근 더 열심히 해. 얼마 전에 후배들 승진하는 거 못 봤어? 상사한테 인정받고 승진할만한 좋은 부서로 가야지. 후배들 밑에서 일하고 싶어? 그냥 학원 보내고 넌 돈이나 열심히 벌어.’

정주사의 목소리에 ‘승진’이라고 쓰고 동그라미를 친다.

 ‘야, 자식농사 잘 지어야지 승진이 무슨 소용이야? 너 그러다 자식 잘 못 되면 그것 보다 더 한 고통이 없다? 큰 애 이제 사춘기인데 잘 돌봐야지. 작가 같은 쓸데없는 소리 그만하고 사춘기 아들 어떻게 해야하는지, 성교육 책 뭐 그런 걸 더 봐야하지 않아?’

내 안에 이렇게 여러 가지 상충되는 욕구가 있구나. 하나 하나 써내려갔다. 갑자기 눈물이 난다. 다 하고싶은 욕구인데 할 수가 없다. 하루는 24시간이고 내 몸은 하나이니까. 나는 엄마이기도 하고 직장인이기도 하고 예비 작가, 예비 수면코치이기도한데 어떻하지? 어떻게 해야 이 욕구들을 다 충족할 수 있을까? 내 욕구들마다 동그라미를 치며 들여다보았다. 어느 하나 중요하지 않은 욕구가 없었다. 균형이란 참 어려운 숙제다. 자기계발 단톡방에서 매일 독서와 글쓰기, 운동을 열심히 인증하는 사람들을 보면 아이들이 이미 성인인 분, 또는 미혼이거나 결혼했어도 아직 아이가 없는 분들이 많았다. 아이들이 스스로 한다고 해도 부모가 챙기는 아이들에 비하면 여기저기에서 구멍이 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노트에 ‘남편’이라고 쓰고 동그라미를 쳤다. 내 욕구를 죽 쓰다보니 남편의 욕구도 보였다. 남편과 나의 욕구도 상충되어 갈등을 일으키고 있었다. 나는 남편이 아이들 교육을 일정 부분 나눠서 해주길 원한다. 두 아이의 숙제와 공부를 퇴근 후 에너지가 방전된 상태로 봐주다 보면 나도 모르게 목소리가 높아지고 오히려 큰 소리를 내 아이들의 공부 정서를 망치니 이걸 좀 나누고 싶다. 남편은 퇴근하고 쉬고 싶은데 아내는 강의 듣는다고 설거지와 잘 준비를 맡긴다. 설거지 정도 하면 집안일 많이 하는 거 아닌가? 왜 애들 교육까지 신경쓰라고 해? 아내는 책을 쓴다며 주말에 줌으로 미팅하고 노트북을 끌어안고 글 쓴다고 시간을 보내면서 이런 저런 집안일을 자꾸 시킨다. 설거지 해 놓고 좀 쉬려고 하니 아이를 가르치라고 해서 짜증이 난다. 평일엔 이불도 안 개고 출근하는, 자기 계발에 관심이라곤 없는 남편의 입장에서는 자기계발 한다고 애쓰는 날 보면 그럴 시간에 애들이나 챙기면 좋겠다고 말을 할 법도 하다. 남편의 욕구를 죽 써보니 아까 들었던 남편에 대한 원망도 좀 잦아들었다. 나의 자기계발을 이해하거나 지지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방해하지 않으니 오히려 감사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결국 잠을 줄여야 하는걸까? 

 ‘잠 줄이는 건 안되! 넌 수면코치이면서 잠 줄이라고 하는게 말이되? 적어도 7시간은 자야 한다며!’

수면코치 빛나는 별이 말했다. 내가 하고싶은 걸 다 하려면 결국 잠을 줄여야 한다. 하지만 나는 수면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수면코치로서 진정성 있게 살고싶다. 7시간 이상 자야한다고 주장하면서 정작 자신이 그걸 어길 수는 없는 노릇이다. 특히 체력이 부족한 내가 수면 시간을 줄이면 어떤 결과가 나올지 스스로 너무나 잘 알고 있다. 나는 병이 날 것이다. 며칠 동안 나는 ‘내 안의 상충하는 욕구는 무엇인가요?’로 스스로를 성찰했다. 여러 욕구들이 서로 상충하니 충족되지 못한 욕구가 결핍되어 아우성이었다. 이 아우성은 곧잘 남편에 대한 원망, 결혼에 대한 후회로 이어졌었다. 책쓰기 프로젝트에 많은 시간이 할당되는 걸 깨달았다. 헛웃음이 나왔다. 누가 시킨 게 아닌, 내가 원해서 한 일로 고통받고 있었다. 내 안의 상충되는 욕구의 소용돌이 속에서 나는 공중그네를 타는 듯 메스꺼웠다. 쓰다보니 아이들의 욕구도 눈에 들어왔다. 아직은 스스로 하기에 부족하고 엄마 손이 필요한 아이들. 엄마와 함께 놀고 싶어 하는 아이들의 욕구. 내가 그동안 콩이홍시엄마의 욕구를 무시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간을 좀 더 밀도있게 사용해야겠다. 퇴근하고 와서 짧지만 진하게 아이들과 교감하고, 아이들의 숙제를 챙기는 시간과 요일을 정하기로 했다. 책쓰기는 매일 밤 9시 반부터 11시까지 성찰글쓰기 하면서 하기로 했고, 주말에는 늦잠 대신 늘 일어나는 6시에 일어나 책쓰기를 하기로 했다. 수면 시간을 줄이는 대신 유튜브를 보는 시간을 줄이고 출퇴근하는 시간을 활용하는 등 최대한 시간 활용을 높이기로 했다. 이렇게 진행하면서도 서로 다른 욕구들이 균형을 맞출 수 있는지 계속 성찰하면서 균형을 잡아보기로 했다. 

 공중그네 위에서 떨어지지 않도록 중심을 잡아보자. 
       익숙해지면 그 위에서 곡예도 부릴 수 있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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