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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나는별 Feb 11. 2021

방바닥을 조져버린 아들의 사춘기

점심 먹고 스르륵 오는 졸음을 참아가며 일하고 있는데 핸드폰이 울렸다. 아들이었다.

  “엄마...”

울먹이는 목소리. 졸음이 확 달아났다.

 “왜 그래?! 무슨 일 있어?”

 “엄마, 나 너무 힘들어. 흑흑...”

 “뭐가 그렇게 힘든데? 응? 말해봐”

 “ZOOM 수업 끝나고 조금 있다가 논술 수업 하고... 흑.. 그리고 수학 학원 가야하잖아. 힘들어.”

‘응? 그게 그렇게 힘든 일인가? 다른 아이들에 비해 학원 덜 가는데’

이해가 잘 되지 않았지만 울면서 말하는 아들을 최대한 달래기로 했다.

 “우리 아들, 힘들어? 그래.. 힘들 수 있어.. 많이 힘들지?”

 “응... 엄마.. 나 논술 하기 싫어.”

 “많이 힘들었구나~ 이따 엄마가 집에 가서 안아줄게, 우리 아들. 사랑해~”

 “응”

훌쩍거리면서 말하는 아들을 공감해주고 마음을 어루만져 줬더니 금새 울음소리가 잦아든다. 

퇴근하고 학원으로 아들을 데리러 갔다. 슬쩍 물어보았다. 

 “오늘 어땠어? 힘들지 않았어?”

 “응, 재미있었어.”

아까 울었던 것과는 다르게 아들의 목소리가 밝았다. 

 ‘그 때 잠깐만 힘들었던가?’

우리는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면서 집에 도착했다. 함께 저녁밥을 맛있게 먹었고 평화로웠다. 

갑자기 딸이 격앙된 목소리로 말을 하기 전까지는.

 “엄마! 누가 내 방 바닥에 연필로 막 이렇게 해놨어요!”

 “응? 그게 무슨 소리야?!”

연필로 바닥에 낙서를 해놨나 했더니 그것 보다 더 심한 짓이었다. 

연필로 방바닥에 마구 구멍을 내놓은 것이었다. 

 “이거 누구야! 누가 그랬어?!”

화가 나서 캐물었더니 아들이 자신이 했다고 했다. 너무나 어이가 없었다. 한 두 개도 아니고 30여개의 구멍을 보니 기가 막혔다. 

 “너 지금 몇 살이야?! 니가 3살이야? 초등학교 5학년씩이나 되서 생각이 그렇게 없어?! 해야 할 행동과 하지 말아야 할 행동이 구별이 안되?!”

구멍난 방바닥을 돌이킬수 없기에, 자신의 방도 아닌, 동생 방을 이렇게 해 놓았다는 사실에 더 화가 났다. 

동생이 미워서 그랬나 별 생각이 다 들었다. 

 “죄송해요...”

아들이 울먹이며 말했다. 난 부릅 뜬 눈으로 아들을 노려보며 마구 화를 냈다. 화내는 소리가 옆 집에도 들릴까봐 목소리를 낮추고 싶었지만 제어가 안 됬다. 

 “언제 이런거야?!”

 “......논술 시간에...”

 “뭐? 왜 그랬어?! 수업하기 싫어서 그랬어?”

 “그냥...... 연필로 찍어봤는데 푹 들어갔어요. 죄송해요.”

 “꼴도 보기 싫으니까 니 방으로 들어가!”

아이를 보내놓고 구멍 난 바닥 앞에 한참을 앉아있었다. 후회의 한숨이 새어 나왔다. 

1절만 했어야 했는데 5절까지 한 것 같았다. 아... 내가 왜 그랬을까... 아들은 왜 그랬을까...

 ‘혹시 수업 준비가 안 되서 혼났나?’ 

일단 논술 수업시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궁금해서 논술 선생님께 자조치종을 묻는 문자를 보냈다. 얼마 뒤 선생님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어머니, 방바닥에 구멍이 났다니,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혹시 논술 시간에 수업 준비가 안 되어서 혼났나요?”

 “아니요! 수업시간에 잘 했고 저랑 진지한 이야기도 나누었어요. 그런데 어쩐지 눈가에 물기가 있는 것처럼 보였어요. 제 얘기를 진지하게 잘 들어줘서 아이가 그렇게 힘든 줄은 전혀 몰랐어요. 사춘기가 오면 아이들이 잘 하고 있던 공부도 힘들어해요. 사춘기가 왔나봐요.”

초등학교 5학년인 아들이 내 잔소리에 가끔 ‘알았다고요!’하고 크게 소리 칠 때 어렴풋이 사춘기가 왔나보다 생각했었다. 하지만 잔소리하면 억울하다는 듯이 눈물을 보여도 이내 엄마한테 안아달라고 하는 아들이라 본격적인 사춘기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마음 글쓰기 노트를 펴서 오늘 있었던 일을 썼다. 화를 냈던 순간의 마음을 적어내려갔다.      


아들이 뚫어놓은 장판의 구멍을 보는 순간, 아들이 나이 값을 못 하고 세 살 아이처럼 장난으로 방바닥을 뚫어놓았다는 생각이 들어 욱 하는 마음이 올라왔다. 구멍이 한 두 개도 아니고 너무 많았다. 연필로 푹푹 내리찍어 장판에 구멍을 낸 아들이 어처구니없게 느껴졌다. 너무 많이 비난의 말을 쏟아냈다. 중간에 멈췄어야 했는데 왜 그랬냐는 질문에 대답이 빨리 나오지 않아서 추궁을 하다가 목소리가 점점 높아졌다. 낮에 울먹이던 아들의 목소리가 생각났다. 코로나19 때문에 아이들이 학교 수업 대신 집에서 선생님과 ZOOM을 통해 수업을 한다. 이 ZOOM 수업이 의외로 아이들에게 엄청난 스트레스를 준다고 한다. 대면 수업 보다 집중력이 더 많이 필요한 ZOOM 수업 후에 또 수학학원을 가야 하니 스트레스가 컸나 보다. 아들은  예민하지만 밖에서는 그걸 잘 드러내지 않는다. 편한 사람인 가족에게만 자신의 예민함과 짜증을 드러낸다. 그러니 논술 선생님 앞에서도 수업 하기 싫은 내색을 하지 못 했나 보다. 하기 싫은 마음을 억누르며 수업을 했구나. 눈물을 참는 대신 방바닥을 조져 놓았구나. 뚫어진 방바닥이 아들의 마음이었던 것도 모르고 화만 냈다는 걸 깨닫자 얼굴이 화끈거렸다. 그동안 사춘기인지 긴가민가했는데 이제 본격적으로 아들의 사춘기가 왔다는 것을 알려준 요란한 신고식이었다. 사춘기 때 나는 어땠지? 어렴풋이 괜히 세상에서 내가 제일 힘들고 불쌍하게 느껴졌던 기억이 났다. 공부와 숙제에 대해 스트레스와 억울함을 느끼며 학교 선생님들과 부모님께 반항하고 싶었던 기억도 났다. 아들의 마음을 주욱 써놓고 보니 더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오늘이 가기 전에 미안한 마음을 전하고 싶었다. 그런데 얼굴을 보고 말했다가 내 입에서 불쑥 이상한 소리가 튀어나와 더 상황을 안 좋게 만들까봐 걱정이 앞섰다. 몇 달 전 아들과의 소통을 위해 사두었던 편지지를 꺼냈다. 사둔 지가 언제인데 이걸 이제야 꺼내다니...     


소중한 내 아들에게     
엄마는 니가 왜 방바닥을 연필로 그렇게 뚫어놨는지 몰랐어. 수업하기 싫은 걸 참고 하느라 너도 모르게 방바닥에 스트레스를 풀었구나. 선생님하고 수업 잘 하느라 애썼다. ZOOM 수업 후에 바로 논술 수업하고 수학 학원 갈 생각을 하니 가슴이 많이 답답했겠다. 그것도 모르고 세 살 아이처럼 방바닥에 구멍을 뚫었다고, 생각이 없다고 나무라고 화내서 정말 미안해. 
항상 변하지 않는 것은 엄마가 널 사랑한다는 거야. 엄마가 너를 더 많이 이해하고 사랑해줄게. 이제 사춘기가 오면 너의 마음이 좀 더 왔다갔다 할거야. 커가는 과정이야. 니가 벌써 사춘기가 왔다니 많이 컸다는 생각이 든다. 화를 많이 내서 미안해. 다음에는 이유를 조금 더 빨리 말해줘. 엄마도 너를 더 이해하고 니 말을 들어주도록 노력할게. 사랑한다.     

 

“아들~ 뭐 해?”

방에 들어가니 흠칫 놀란다. 또 혼날까봐 얼어있는 표정의 아들에게 편지를 쥐어 주었다. 몇 분 후 아들이 방에서 나왔다.

 

“엄마, 안아주세요~.”

화내서 미안한 마음을 보상이라도 하려는 듯 나는 아들의 몸을 꼭 껴안아 주었다. 부쩍 자란 몸이 느껴졌다. 

 “화내서 미안해. 사랑해.”

 “엄마, 나 엄마가 편지 줄 때 방바닥 물어내라고 하는 줄 알았어요.”

 “그 말은 집주인이 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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