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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물 Sep 10. 2021

「철의 삶」(정우)

주절주절 음악 11

「철의 삶」(정우) : https://youtu.be/wUL5YwfFtaM

완결형으로 쓰이지 않는 '삶'


친우에게 귀한 노래를 선물 받았다. 제목이 독특해서 처음에는 정말이지 누군가의 삶(농담 삼아 하는 말이 아니고, 서로 알고 있는 '00철'이라는 함자를 가진 분의 삶을 논하려는 줄 알았다.)을 얘기하나 했더니 노래였다. 등록된 음원이 아직 없어서 들으려면 유튜브에 가서 제각기 다른 각도로 찍은 직캠 영상을 찾아봐야 하는. 얼결에 내게 배송된 이 노래의 포장을 뜯어 듣고 탁 떠오른 노래는 언니네이발관의 「인생은 금물」. 컨트리풍의 가벼운 반주와 그에 대비되는 묵직한 가사가 「인생은 금물」에서 느낀 부조화와 닮아 있었다. 그러나 둘의 명백한 차이는 언니네이발관이 '그래서 내던져야 할 인생'을 노래하고 있다면, 정우는 '그럼에도 살아내야 할 인생'을 뜨겁고도 선뜩한 노랫말로 풀어내고 있었다는 점이겠다.


혼자 남은 밤에는 종종 생이 쉽사리 싀여디지 않음이 비극으로 느껴질 때가 있다. 공들여 모은 조약돌의 모양을 비교하는 아이처럼 내가 저지른 과오를 꺼내어 하나하나 살펴보고 있다 보면, 꾸역꾸역 즐거움과 보람을 찾으며 살아가고 있는 내 모습이 추해 보여서. 이제와 참회할 수도 없는 그것들을 앞에 두고 있으면 내가 다른 이에게 영향을 끼치는 주체라는 그 지극히 당연한 사실이 무섭게 느껴진다. 내가 하는 말이, 짓는 표정이, 때론 내가 자리에 존재한다는 사실이 남에게 유의미하게 받아들여질 수 있다는 것이. 사실 바라는 것은 죽음이 아니라 존재의 말소에 가깝다. 만화에 흔히 나오는 연출처럼, 내가 이 세상에 존재한 적도 없던 것처럼 싹 사라지기를. 그래서 계획에 없던 나의 부재 또한 아무도 알아채지 못해서 누구도 그에 영향을 받지 않기를. 비겁하게도.


망상은 망상일 뿐이고, 어쨌거나 삶은 계속된다. 산 자에게 있어 '삶'이라는 단어가 완결을 뜻하는 경우는 없다. 다 살 때까지 우리는 살아야 하고 이는 어쩌면 가장 두려운 사실이다. 그리고 정우는 말한다. '녹슬면 끝이라 했지만, 천 번을 두드리는 삶도 세상에는 있는 것이었다.' 앞으로의 삶이 결코 나의 지난 과오를 살라 없애주지는 않을 것이다. 그것들은 언제까지고 내가 짊어 메고 있어야 하며 나는 때때로 등에서 흘러내리는 그것들을 매번 추켜올리며 살아야 한다. 그러나 결코 그것들을 멋대로 내려두지 않도록, 우리는 '그럼에도 살아내'야 한다. 때릴수록 순도가 높아지는 철처럼, 이 지난한 삶이 미숙에서 벗어나는 과정이라 생각하며. 가장 쓸모없는 것은 오래 두드려야 하는 철이 아니라, 한 번도 두드리지 않은 철임을 기억하며. '녹슬면 끝이라 했지만, 천 번을 두드리는 삶도 세상에는 있는 것이었다.' 내가 배송받은 건 선물이 아니라, 처방이었다.


뜨겁기 위한 말과 몸짓


여기서 또 하나의 기억을 꺼내 본다. 어제 마신 술 냄새가 채 빠지지 않은 허름한 펜션. '맨날 하던 노래만 하면 안 돼. 새로운 노래도 배워가야지.'라는 선배의 말. 그리고 펼쳐준 악보. 어떤 풍의 노래일까 고민하다가 에라 모르겠다, 하고 긁은 코드. 노래패 '노래를 찾는 사람들'의 「여기에」와 처음 만난 순간이었다. 동아리 MT를 다녀와서도 나는 한동안 그 노래에 빠져 살았다. 선배는 노래를 정말 무지막지하게(라는 표현이 과하지 않을 정도로) 잘 하는 사람이었지만, 이후에 때묻은 음원판으로 다시 들은 「여기에」도 그때와 마찬가지로 나의 가슴을 벌름거리게 했다. 


「여기에」라는 노래에는 고통을 덜어주겠다는 맥없는 위로도, 앞으로 고통은 없을 것이라는 허황된 약속도 없다. 열정 넘치던 과거에 비해 지금은 부끄럽고 앞으로는 어려울 것이라 말한다. 그럼에도 '앞으로의 어려움도 함께 할 넉넉함'이 있노라고 한목소리로 말해준다. 그 한 구절은 비관에 가렸던, 그러나 언제고 내 주위에 있었던 그 사람들을 다시금 드러내준다. 그 새삼스러운 감각이 다른 무엇보다도 세상을 낙관하게 해주었다. 나의 안과 밖에서 밀려오는 고통도 핍박도 지난한 어려움도 결코 멈출 일은 없겠지만, 목 아래까지 치드는 그 감정에 익사하기 전에 건져올려줄 누군가가 있을 거라는 믿음이.


멋대로 써 본 서사. 「철의 삶」이 내게는 마치 「여기에」를 부르던 많은 이들 중 한 사람의 단독 콘서트에서 들은 미공개곡처럼 느껴졌다. 두 노래 모두 괴로운 삶을 낙관하게 해준다는 점에서, 그리고 두 노래 모두 타협 없는 단단함을 가진 노래라는 점에서. 부끄럽게도 나는 그만큼 단단한 사람은 되지 못한다. 힘들고 어지러울 땐 내 몸의 안위를 먼저 찾게 되고, 불의에 분노하면서도 그를 맞닥뜨릴 땐 몸이 굳는 때가 많다. 그래서 나의 삶은 천 번, 아니 그를 아득히 넘어서도록 두드려야 하는 삶일 것만 같다. 그럼에도 내가 미숙한 사람으로 멈춰있지 않을 수 있는 건, 모두 내던지고 사라지고만 싶다는 망상이 망상으로 그칠 수 있는 건 내 주위의 단단한 사람들 덕분에, 제각기의 삶을 두드리고 있는 그들을 사랑하기에 부끄럽지 않은 사람이 되기 위해서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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