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한물 Aug 13. 2021

「아름다운 것」(언니네 이발관)

주절주절 음악 05, 2021.02.18

「아름다운 것」(언니네 이발관) : https://youtu.be/MYYXLw8jRD0

『보통의 존재』, 『가장 보통의 존재』


언니네 이발관이라는 가수를 알기 전에 이석원님의 산문집 『보통의 존재』를 읽은 기억이 있다. 왜 '보통의 존재'인지, 이석원은 누구인지 검색해보다가 언니네 이발관을 알게 되었다. 사실 책에 대한 인상은 남아 있으나 기억은 흐릿하다. 담담한 어조로 음악 활동에 대한 고충과 보통의 존재로서의 자신을 고백하는 좋은 글이었지만, 그의 음악을 모르는 채로 읽자니 충만하게 다가오지가 않았다. 끝까지 읽지 못하기도 했고. (군대에 있는 중에 읽었기에 곧바로 언니네 이발관의 음악을 찾아 들을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그렇게 언니네 이발관이라는 밴드를 잊은 채 있다가 최근 우연찮게 「아름다운 것」을 듣게 되었다. 이석원님은 글에서나 음악에서나 담담하게 잔인함을 들려주는 사람이구나,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잔인함에 으레 따라 붙는 폭력성, 잔혹성 같은 것과 동떨어진, 적확함이 주는 잔인함. 그것을 그저 흘러가는 일처럼 말하는구나. 다른 무엇도 빌려오지 않은, 큰 감정도 싣지 않은 듯한, 그저 한 사람이 한 사람에게 하는 말이 이렇게 잔인할 수 있구나. 


이후 언니네 이발관 5집 『가장 보통의 존재』 수록곡을 찾아 듣고 있다. 우스운 표현이지만, 각기 다른 노래들이 이다지도 일관된 정서를 보여준다는 것이, 또 그 나름대로의 아름다움을 가진다는 것이 신기하게만 느껴진다. 명반이라는 단어는 이런 앨범을 일컫는 것이겠지.


오늘 우연히 가본 카페에서 발견한 『보통의 존재』는 군대에 있던 것과 달리 흠집조차 없는 새것이었다. 조만간 한가한 낮에 다시금 그 카페를 가서 책을 읽어야겠다. 


하고 싶은 말이 없어지지 않을 거라 했지


불교의 무상(無常)이라는 말을 고등학교 시절의 한 선생님께선 이렇게 풀어주셨다. 없을 무에 항상 상, 즉 인생에서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 항상 그대로인 것은 없다. 그 진리에서 우리는 '내가 열심히 하고 있는 지금도 죄다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는 게 아니라, 결국 언젠가 바래고 말 성취 같은 것에 집착하지 않고 매일매일을 열심히 살자고 생각해야 할 것이라고. 


다른 생각을 해본다. 나의 지금은 언제까지 지금일까. 인생은 무상한 것이니까, 엄밀히 따지자면 지금이란 없을지도 모르겠다. 내가 속한 현재를 지금이라고 인식하는 순간, 그 순간은 지나가 과거가 되고 있을 테니까. 생각이 거기까지 미침에도 우매한 나는 안온한 지금이 계속되기를 바랐다. 좋아하는 사람들과 거리낌 없는 시간을 보내고, 미래에 대한 걱정을 미뤄두고 지금의 열정과 행복에 충실할 수 있는 시간이.


그러나 지금은 너무도 빠르게 과거가 되어간다. 분 단위, 초 단위라는 측량이 무용할 만큼 빠르게 시간은 흘렀고 이제는 미래에 대한 걱정을 하지 않는 사람이 이상한 사람 취급을 받는다. 열정과 혈기를 쏟았던 대상은 지워져간다. 거리감. 나는 과거에, 아니 그 때의 지금에 우두커니 서 있는데 남들은 촉각을 다투며 지금을 갱신해가고 있다.


「아름다운 것」이 지독하게 잔인하게 들렸던 것은 이 노래가 지나간 것을 지나갔다고 인정하는 과정을 무섭도록 적확하게 묘사한 탓일까. 그것에 몸뚱이가 꿰뚫린 나는 노래에 대고 괜한 화풀이를 하고 있는 게 아닐까. 나는 나의 아름다운 것을 버리기 싫다고.


여담


 가사와 담담한 보컬에 대한 이야기를 주로 했지만, 이 노래를 더욱 아름답게 만들어주는 것은 과잉되지도 않고 모자라지도 않는 훌륭한 반주 구성이라고 생각한다. 드럼 리듬과 베이스라인의 조화가 짜릿하다.


「인생은 금물」 과 「산들산들」도 즐겨듣고 있다. 특히 「인생은 금물」의 그 부조화스러운 가사와 멜로디가 참 좋다.









작가의 이전글 「도망가자」(선우정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