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취미가 뭐예요?

<주간 나이듦> 일곱 번째, 취미가 있으신가요?

by Soo

취미 찾아 삼만리

지금부터는 넘쳐나는 시간을 어떻게 써야 할지 모르는 영장류 1인이 움직인 기록입니다. 혹시 저처럼 현관문 열기 어려우신 분들께 참고가 되길 바랍니다.

처음에 관심을 가진 건 각종 자격증이었다. ‘증’ 얼마나 좋은가? 있어 보이고. 뭔가 도움이 될 것도 같고. 어디 가서 뭐 배운다는 말하기도 좋고...


<바리스타 자격증> 커피는 좋아하지만 위염이 있는지라 중도포기. 커피를 하루 두 잔 이상 마시면 병원 가야 하는 나로선 넘기 힘든 벽이었다.


<방송통신대학교 관광학과> 2학년까지 다녔으나 ‘철학의 이해’를 D 받으면서, 장학금을 놓치고 급격히 흥미를 잃음(백수가 방통대를 장학금 없이 다니긴.... 싫었다. 이건 무슨 자존심이냐)


<한국사 능력 검정시험> 방통대 시험 때문에 국사 공부하다가 알게 된 최태성 선생님, EBS 한국사 강의에 홀딱 빠져 3번을 반복 청취함. 그러나 정작 한국사 시험은 안 봄. (사실 아침 시험시간에 못 일어나는 바람에... 자괴감이 옴)


<관광통역사> 한국사 수업을 활용할만한 시험이 뭐가 있을까 찾다가 관광통역사 자격증 시험을 치게 됨. 쉽게 보고 덤볐으나 울면서 공부함. 아무리 책을 읽어도 암기가 되지 않아서 시험은 아주 간신히 턱걸이로 합격. 이후로 모든 ‘시험’에 알레르기가 생김.


<공인중개사 자격증> 시험 알레르기 플러스 교재 보고 바로 포기.


<일본어> 학원을 다니려면 1시간 거리의 종로까지 나가야 하고, 백수 주제에 학원비가 비싸다 생각되어 포기. 한동안 동네 주민을 모아 주 1회 스터디를 했으나, 흐지부지 끝남. 역시 공부는 내 돈 써가며 하는 것이라는 교훈.


<성격검사 강사 자격증> 사설 단체에서 하는 자격증은 돈 백은 우습게 깨진다는 사실을 알게 됨.(공부는 재미있었음.)


<전산회계> 보통 재취업센터 가면 가장 많이 권하는 수업. ‘회계’, ‘세무’ 이런 단어 무서워서 등록 포기.


뭘 더 해야 하나, 내 이력에 뭘 더 늘여야 하나를 고민하고 있는 내게 남편은 “너는 맨날 돈 될 것만 찾는구나. 그냥 의미 없는 일들을 해봐.”라고 툭 던졌다. 또다시 머리에 종소리가 뎅뎅 울렸다. 실컷 놀아보겠다며 뭔가를 배우기 시작했는데, 그 마저도 교육적이거나, 스펙에 도움되는 자격증만을 보고 있는 나. 왜 놀지를 못하니.

그래서 시작된 주민센터 문화강좌~ 빠밤


<가정요리> 앞에서도 잠깐 이야기했지만 정말 많은 도움을 받았다. 무엇보다 주방에 서는 부담이 사라졌다는 사실만으로 아주 큰 소득이었다. 더 이상 요상스러운 조미료를 사 대지 않고 집에 있는 재료로 그럭저럭 맛을 낼 수 있는 레벨로 올라왔다는 사실만으로 감동이다. 비슷하게 생활 만족도가 올라가는 수업으로는 ‘정리 수납’이 있다.


<소이캔들> 화장실 배관을 타고 올라오는 아랫집 담배냄새 처단용으로 배웠다. 만드는 법이 손에 익은 후부터 방산시장에서 몇 가지 재료 조합으로 시판 캔들보다 훨씬 맘에 드는 결과물을 만들고 있다. 만들면 만들수록 향기가 주는 편안함의 매력에 빠지는 중이다.


<캘리그래피> 저는 섬세하지 못합니다. 죄송합니다.


<메이크업> 화장하고 어디 갈 데가 없어. 다 까먹음. 아이라이너에 속눈썹 붙이고 눈을 깜빡이며 현관문 열어줬더니 남편이 누구시냐고 함.


<부동산 상식 강좌> 일반 부동산 상식을 알려주는 짧은 강좌. 주로 투자를 하러 다니는 사람들이 강사로 온다. 막상 이사할 때는 돈이 없어서 강사가 알려준 곳으로는 못 간다는 슬픈 현실.


<수채화> 어렸을 때 미술학원 다녔던 기억 떠올리며 등록. 선긋기부터 정육면체, 구 데생, 정물화를 그리며 머리에 쥐가 나기 시작했다. 평생을 사무직으로 살았더니 예술 쪽 뇌를 몇십 년 만에 움직인 탓이다. 수채화가 머리를 이렇게나 쓰게 하는 작업인지 몰랐다. 고스톱을 못 쳐서 치매 예방에 대한 걱정이 좀 있었다. 그러나 수채화로 치매 예방을 할 수 있을 거 같다.


오랜만에 취미생활 같은 취미를 한다고 남편과 엄마로부터 전용 스케치북이며 붓과 물감을 선물이 도착했다. 받은 선물을 다 쓸 때까지만 다녀야지 맘먹었으나, 2년이 지난 지금 아직도 반이 남았습니다. 콜록.


나와 비슷하게 시작한 사람들은 어느새 ‘작품’을 내는 수준으로 성장했다. 셀프 휴강을 밥 먹듯 하는 나로선 이제 겨우 사진을 보고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수준이 되었다. 진도가 늦으면 어떠랴. 그릴 때마다 신기하고 어렵고 재미있다. 당분간 더 매력적인 뭔가가 나타나기 전까진 계속할 예정이다.


당신의 취미는 무엇입니까?

만약 저처럼 쳇바퀴 도는 삶만 살아온 사람이라면, 이번 기회에 취미를 찾는 여행 한번 해 보시면 어때요? 나에 대해 하나씩 알아가는 재미도 꽤나 쏠쏠하답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운동 시작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