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주 일요일마다 KBS 1 TV의 <전국 노래 자랑> 최우수상 발표 순간만을 기다렸던 때가 있었다. <전국노래자랑>의 열혈 팬이어서가 아니다. 그 프로그램이 끝나고 방영되는 애니메이션을 시청하기 위한 것이 주목적이었다. 재방 삼방을 기다리는 것인데도 어린아이의 기다림은 항상 길게만 느껴졌고, 직접 마주 했을 땐 늘 흥미로웠다. 그 당시 방영된 <아기 공룡 둘리>, <날아라 슈퍼 보드> 등 웬만한 애니메이션의 서사 구조는 외울 정도로 많이 시청했는데도 기다림은 항상 길게만 느껴졌다.
그뿐만 아니라 오락실에 새로 나온 게임을 하기 위해서도 항상 기다려야 했다. 내 차례가 얼른 왔으면 하는 바람에 게임을 하고 있는 누군가의 실수가 달콤하게 느껴졌고, 기다림 끝의 동전을 넣는 순간 떨어지는 동전의 소리가 짜릿한 기분을 표현하는 효과음처럼 들리는 것만 같았다. 마침 보고 싶었던 비디오의 대여가 끝나기 무섭게 바로 빌려왔을 땐 경매에 나온 물건에 낙찰받은 것 같은 쾌감을 느끼기도 했다. 도서관에서 대여 중인 책을 오매불방 기다리다 빌려왔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이제는 접할 수 없는 종류의 기다림이 되어버린 것들이다.
스포츠 중계나 본방 사수를 원하는 프로그램이 아니고서는 보고 싶은 TV 프로그램은 더 이상 기다릴 필요도 없게 됐다. TV 다시 보기 서비스는 너무도 잘 갖춰져 있어, 오랜 시간 뭔가를 기다렸다가 시청해본 일은 많이 줄어들게 됐다. TV가 한 대 밖에 없어 가족들과 불꽃 튀는 채널 쟁탈전도 실시간 스트리밍 서비스 덕분에 이제는 보기 쉽지 않은 광경이 되어버렸다. 보고 싶은 비디오를 기다리는 건 이젠 상상 조차할 수 없다. 넷플릭스나 스마트 TV를 통하면 웬만한 영화는 집 밖으로 발걸음 하지 않고도 바로 시청할 수 있는 세상이다.
그뿐만은 아니다. 스마트한 세상에선 대중교통 도착 정보도 휴대폰 하나면 바로 알 수 있게 해 주었다. 버스가 언제 올지 목이 빠지도록 기다리다가 탑승했을 때의 괴로움이나 “짧은 기다림” 끝에 대중교통을 빠르게 이용했다는 성취감 같은 것은 이제 느낄 수 없는 종류의 감정이 아닐까 싶다. 아파트 지하 주차장까지 찾아오는 카카오톡 택시 덕분에 멀리서 보이는 택시를 기다리며, 다른 승객들보다 크게 손을 흔들며 택시를 잡아본 기억도 아득하기만 하다.
그만큼 세상이 기다림에 대한 불편함을 많이 해소해 주었고, 사람들 개개인은 시간 관리를 더욱 효율적으로 할 수 있게 됐다. 혹독한 대가(?)라면 기다림 속에서 누릴 수 있었던 상상하는 즐거움은 줄어들 수밖에 없게 됐다. 무엇인가 성취했을 때 느끼는 만족감의 정도는 예전보다는 낮아졌다는 것이 아닐까 싶다. 기다림을 버릴 수 있게 되면서, 그 기다림과 함께 묻어날 수 있는 다양한 종류의 정서들도 함께 흘려보낸 것만 같다.
2019년 화제 속에 방영된 Jtbc 드라마 <스카이 캐슬>. 1회부터 시청하지 않은 시청자들도 재방 기다릴 필요 없이 1회부터 다시 보기를 하면, 본방을 따라갈 수 있게 됐다. 욕망이 빠르게 충족된다는 점에서 아주 긍정적이다. 다만, 20년 전이었다면, 직접 시청하지 않은 회차의 내용을 누군가에게 말로 들어야만 했을 것이고 그것을 통해 혼자서 상상하는 즐거움도 있었을 텐데 그런 것은 모조리 사라지게 됐다. 동시에 혹자는 “스카이 캐슬“을 주요 포털 검색창에 입력하는 순간 주요 스포일러도 빨리 알아차릴 수밖에 없는 허무함 혹은 안타까움을 느껴야 했을지도 모르겠다.
<2020년 우주의 원더 키디>라는 애니메이션이 있었다. 그 애니메이션이 방영되는 시간 자체를 기다려본 적은 있지만, 2020년은 어린 시절 기다려본 적도 없고 이렇게 성큼 다가올 것이라 생각도 못했는데, 2020년도 이제 6개월 조금 더 남은 시점이 됐다. 세월이 흐르는 동안 “기다림”의 가치도 훌쩍 흘러가 버린 것 같다. 그만큼 더욱 편리하고 효율적이라고 믿는 세상에서 삶을 영위해 나가고 있지만, 사람들이 정서도 효율적으로만 변해 가는 탓인지 세상은 딱 필요한 만만큼만의 감성만 지니도록 강요하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기다리는 시간 동안 지닐 수 있는 다양한 종류의 상상력과 감성은 시간 효율성을 최고의 가치로 추구하는 사회에서 더 이상 허락하지 않는 것만 같아, 예전에 그 기다림의 순간이 그립기도 하고 그 순간들의 기억이 아련하게 가슴을 두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