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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겨울 나그네 Jun 26. 2020

방글라데시,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나라?

방글라데시,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나라?그건 새빨간 거짓말이었다.

 직접 가보기 이전에는 방글라데시 하면 가장 먼저 떠올랐던 이미지는 행복지수가 가장 높은 나라였다. 물질적 풍요와 행복이 비례하지 않는다는 영국 로버트 우스터 교수의 연구 결과로 교과서에 소개됐던 내용이고, 오랫동안 기억에 남아있다. 그러면서도 의구심을 버릴 수가 없었다. 정말 이 나라 사람들의 행복지수가 높은 것이 맞을까 하는 생각과 동시에 평생 방글라데시를 방문할 일은 없을 것이라고 여겼다.


인생은 늘 예측불허이다. 그렇기 때문에 인생이란 더 재미난 여정이 아닐까 싶다. 살아생전 방문하지 않을 것 같던 나라를 3번 방문했다. 자의로 방문한 것은 아니었지만 출장의 목적으로 다녀오게 됐다. 해외 출장을 많이 다니는 일을 하게 될 것이라 생각도 못 했고, 방글라데시까지 자주 방문하게 될 줄은 더더욱 몰랐다. 


 비행기에서 내려 공항 입국 심사대로 이동할수록 심상치 않은 느낌이 들었다. 뭔가 오지가 나올 것만 같았다. 입국심사대부터 예사롭지 않았다. 인구밀도 1위 나라의 위엄을 뽐내기라도 하듯이 입국장의 인구밀도는 높았다. 방글라데시를 찾는 사람 자체도 많았겠지만, 느긋하게 독수리타법으로 입국심사를 하고 있는 직원도 한몫했을 것이다. 뼛속까지 한국인이었는지 매우 답답했다. 어쩌면 한국이 유별나게 빠른 나라일 수도 있을 것이다. 필리핀, 스리랑카, 태국 모두 한국의 엄청난 속도에 비해서는 아주 느렸었다. 


 공항을 빠져나가니 더욱 눈을 크게 뜰 수 밖에 없었다. 면세점은 구멍가게처럼 작은 규모로 서너 곳 정도만 있었을 뿐이었을 뿐만 아니라 처음 만난 현지인은 팔이 하나 없는 채로 외국인인 나에게 구걸을 했다. 눈을 마주치지 않고 라이딩을 나온 회사 차량으로 이동했다. 매정한 행동이었지만, 외국인이 그렇게 돈을 꺼내면 주변에 있는 많은 거지가 돈을 구걸하기 위해 몰려들고, 돈을 주지 않고서는 빠져나갈 수 없다는 이야기를 여러 차례 들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 차를 타고 이동하는 중에도 차가 정지할 때마다 문을 두드리며 구걸하는 거지들이 정말 많았다. 


 세상에서 가장 행복지수가 높은 나라라는 말은 새빨간 거짓말처럼 느껴졌다. 저렇게 구걸을 하면서 행복하다는 것이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물론, 너무 궁핍한 삶에서 외국인과 함께 사진 찍는 것처럼 작은 것에도 큰 만족을 느낄 수 있겠지만 그 지표 하나로 이 나라의 행복지수를 논하기는 어렵다고 봤다. 한국에서는 30분이면 갈 수 있는 거리를 2~3시간은 이동해야 했고, 비가 내리기라도 하면 미흡한 상하수도 시설 때문에 바퀴까지 물이 넘실거려 5시간까지 시간이 걸릴 수도 있을 정도의 도로였다. 수도인 다카 시내를 제외하고는 제대로 된 신호등은 물론 도로에 차선조차도 제대로 그려지지 않았었다. 다 낡아빠진 버스 사이로 매연을 마셔가며 인력거를 끄는 운수 노동자들까지 보고 있으니 이래도 행복하냐고 몇 번은 소리쳐서 묻고만 싶었다. 


 행복한지 물어보는 질문에 그렇다고 대답할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곳도 있긴 있었다. 고급 레스토랑이나 카페에 있는 사람들은 적어도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옷차림도 보통의 방글라데시 시민들과는 달랐고, 얼굴은 물론 잘 먹고 지낸 덕분인지 체격도 좋아 보였다. 2019년 기준 방글라데시 한 달 최저 임금이 13만원 정도 수준이었는데, 한 잔에 6,000원 정도인 커피를 쉽게 마실 수 있는 사람들이면 매우 행복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최고 부유층만을 대상으로 통계 조사를 한 것은 아닌가 싶은 의심이 생겼다. 높은 문맹률 때문에 선거할 때면, 출마한 후보에게 숫자 1,2,3,4 대신 사과, 원숭이, 바나나와 같은 그림을 부여할 정도라는 말에 그 의심은 더욱 증폭될 수밖에 없었다. 


행복은 분명 물질에서만 비롯되는 것은 아닐 것이지만, 인간다움에 대한 권리가 이토록 보장되지 않는 나라의 사람들을 향해 ‘그래도 행복하겠구나’라고 생각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의식의 흐름은 아니었다. 첫 번째 방문할 때도 그랬고, 두 번째, 세 번째 방문할 때도 이 생각엔 변함이 없었다. 극단적으로는 과거 영국이 식민지였던 나라에 대한 책임 회피성 통계를 만들고, 식민지배에 대한 과거 책임에서 조금 자유로워지고 싶었던 이데올로기를 만들고 싶었던 것은 아닌가 싶었다. 


방글라데시 사람들이 로버트 우스터 교수의 연구 결과처럼 행복했으면 좋겠다. 그렇지만 그 나라를 몇 번 방문해 본 외국인의 입장에선 그 연구와 조사는 새빨간 거짓말 같다는 인상을 아직도 지울 수가 없었고,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는 말과 통계의 거짓말이라는 단어가 머릿속을 스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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