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고현정을 떠올리면 드라마 <선덕여왕>의 미실이 떠오르고, 미실을 떠올리면 배우 고현정이 떠오른다. 배우 고현정은 미실 그 자체였다. 배우의 눈썹 연기마저 화제를 모았을 정도로 캐릭터에 지배력은 대단했다. 때문인지 혹자는 드라마 제목을 <세주 미실>로 바꿔야 하지 않느냐고 하기도 했으며, 배우의 필로모그래피를 <선덕여왕>전후로 나눌 수 있을 정도로 미실이 다시 살아온 듯한 아우라를 보여줬다. 작가의 필력을 배우가 200% 이상 소화해준 덕분에, 명대사들을 더욱 빛을 발했다.
어느 한 가지만을 꼽을 수 없을 정도로 미실의 대사는 화제를 모았고, 개인적으로 설원에게 울먹이며 말했던 대사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왜 전 성골로 태어나지 못했을까요. 쉽게 황후가 되는 것을 이루었다면, 그 다음의 꿈을 꿀 수 있었을 텐데... 이 미실은 그 다음 꿈을 꿀 기회가 없었습니다.”라며 한에 복받쳐 있는 설움을 표현하는 장면이었다. 이 장면이 압권으로 다가왔던 것은 미실이라는 캐릭터가 어떤 역경과 고난이 찾아와도 약한 모습을 보이지 않는데, 이 장면에서만큼은 나약하게 나왔기 때문이었다. 또, 무엇보다도 본인이 아닌 선덕여왕인 덕만이 황제가 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드러나 있었기에 기억에 오랫동안 새겨졌다.
미실은 황후가 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모든 것을 가졌지만 황후라는 꿈을 위해 마야부인을 수장 시키려고도 했던 것은 물론, 자신의 친아들인 비담까지 버리는 매정함을 보여주기도 했다. 그에 비해 덕만은 궁으로 돌아가려고 결심했던 순간, 황제가 되겠다는 꿈을 품는다. 여기에서 덕만과 미실의 승부는 어느 정도 결정됐던 것이다. 미실은 어렵지만 노력하면 가능할 것 같은 꿈을 펼치려고 했지만, 덕만은 불가능에 가까웠던 것을 목표로 삼았기에 더 많은 노력을 처음부터 했어야만 했을 것이다. 후에 미실이 덕만처럼 황제가 되겠다는 목표를 재설정하지만, 한 평생 황후가 되기 위해 노력했던 미실에게 이미 늦었던 것이다.
극중 덕만이 황제가 되고자 하는 생각 자체가 당시 시대 상황에서 매우 혁명적이었기 때문에 사실 쉬운 생각은 아니었을 것이다. 성골 남자가 황제가 되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졌던 시대에, 덕만은 그 당연성을 거부하며 새로운 생각을 하며 노력을 했던 인물이다. 이 생각하는 크기의 차이에서 발생된 격차로, 미실과 덕만의 승부는 이미 처음부터 정해졌던 것이다. 물론, 미실은 덕만과 달리 성골이 아니었기 때문에 좀 더 불리한 조건이었지만, 당연성을 거부하고 더 나은 생각을 하는데 지위고하가 따로 있는 것은 아니다. 결국 생각의 크기, 새로운 생각을 할 수 있는 힘의 차이에서 미실은 덕만과의 대결에서 질 수 밖에 없었던 것 같다.
'이 나그네는 왜 더 긴 팔다리를 가질 수 없었을까요. 조금이라도 더 컸다면 더 나은 꿈을 꿀 수 있었을 텐데....이 나그네에겐 그럴 기회조차 없었습니다.’라고 미실의 대사를 패러디 하여 부모님께 말씀드렸다가 제정신이 아니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재미로 했던 말이긴 하지만 그 당시까지도 늘 무엇인가 도전할 생각보다는 나이, 학벌, 경제적 능력, 외모처럼 포기하고 싶은 이유들부터 끝없이 생각했던 것 같다. 주어진 조건이 좋을수록 더 나은 위치에 조금은 더 쉽게 다가설 수 있겠지만, 이 순간에도 덕만처럼 당연성을 거부하며 더 나은 생각을 하는 사람들에게 기적은 계속 일어나고 있다. 피겨 불모지였던 한국에서 그 누가 올림픽 금메달을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었지만, 김연아 선수는 당연성을 거부하고 불가능에 도전했다. 이처럼 불가능한 일도 세상에 많지만, 누군가는 불가능할 것 같은 것도 현실이 될 것이라 믿음으로 오늘을 열심히 살아가고 있다. 미실과 덕만은 그 동안의 삶을 반추하는 스승이자 구도자 같은 캐릭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