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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즈베리 Jan 12. 2024

새해 첫 요리 배숙

배, 대추 감기 특효약

12월 28일 8개월 된 아기의 기침소리가 심상치 않았다.

가벼운 콜록콜록이 아니라 에에에웩 에에에에웩 작은 가슴통에서 올라오는 기침이 시작되면 아기는 얼굴이 빨개지고 입 주변으로 침이 흐르며 고개를 들지 못했다. 12월에 열심히 돌아다니다가 집에 돌아와서 긴장이 풀려서일까? 아기는 기침 소리를 시작으로 콧물, 기침, 살짝의 미열 그리고 가래가 끓기 시작했다.


8개월 만에 인생 첫 감기에 걸렸다. 하루 이틀 지켜봤지만 감기는 점점 더 심해져 갔다. 기침을 할 때마다 맘마를 전부 다 토해냈고 옷을 갈아입혀 놓으면 기침을 하다가 위에 얼마 남지 않았을 것 같은 분유마저 다 토했다. 한밤 중 침대 커버를 세 번이나 갈고 아기 옷을 다섯 번을 갈아입혔다. 안 되겠다 소아과에 연락해 봐야겠다.


한국이었으면 한걸음에 소아과에 가서 진료를 봤을 테지만 원체 병원 가기 어려운 독일이라 소아과에 예약 이메일을 넣었다. 이내 온 답장엔 "우리 소아과는 1월 15일까지 문을 닫습니다. 병원을 가야 할 경우에는 종합병원 응급실을 이용해 주십시오" 하아... 소아과가 15일 동안 문을 닫는다니... 독일은 내가 다니는 병원 외에 새로운 곳에 가서 진료를 보려면 새 환자 등록을 해야 한다. 새 환자를 안 받아주는 병원도 있고 받아준다 하더라도 예약 날짜가 한두 달 뒤는 기본이다. 답답하고 속상한 마음이 들지만 어쩌겠는가... 우리 아기는 응급실에 갈 상태까진 아니니 집에서 민간요법으로 다스려보기로 했다.


우선 막힌 코를 뚫기 위해서는 잠자리에 양파를 잘게 썰어 놨다. 같은 방 다른 침대에서 자는 우리 셋. 내 코가 다 아프지만 아기를 위해 이 정도는 향기롭다고 생각하며 잠을 청했다.


기침은 셋째 손가락 둘쨰마디에 쿠킹포일을 얇게 접어 밴드로 감싸서 붙여주면 된다고 했지만 감아주자마자 쪼꼬미가 그 밴드를 떼려고 안간힘을 쓰기 시작했다. 잠잘 때까지 계속 뗄 것 같아서 이건 실패했다. 


그리고 마지막 배숙!


독일 마트에서 중국에서 온 배를 파는 것을 발견했다. 우리나라 배와 서양배의 사이인 것 같은 니시라고 써진 배다. 전기밥솥에 배를 넣고 이유식 큐브 용으로 구매해 온 대추를 넣고 물을 자작하게 부운 후 만능찜 모드 20분을 돌렸다. 달달하고 구수한 냄새가 온 집안을 감쌌다. 


코를 킁킁이고 있자니 머릿속에 외할머니의 얼굴이 그려졌다. 7살쯤 되었을 때 외할머니 댁에 놀러 갔다. 어린 시절 여름 빼고 매일 감기를 달고 살던 나는 그날도 코를 훌쩍이고 기침을 해댔던 것 같다. 외할머니가 배와 무를 삶아서 배숙을 해주셨는데 나는 그 냄새가 너무도 싫어서 한입도 먹지 않겠다고 버팅기고 할머니는 한 입만 먹어보라고 계속 말씀하시던 그 장면이 불현듯 떠올랐다.


분유병에 배숙을 담고 물로 희석시켜서 아기에게 먹이고 있자니 그때 할머니가 얼마나 속상하셨을까 생각이 들었다.  이 배숙 한 입만 먹으면 아기가 기침을 그칠 것 같고 내일부터 다시 건강해질 수 있을 것 같은 마음이 드는데, 두 입술을 앙 다문채 벌리지 않는 내 모습을 보며 얼마나 속이 타셨을까


참 철없는 손녀였다. 이제 죄송한 마음이 드는 것이 너무 늦어버렸지만 아기에게 배숙을 먹이는 내내 마음속에 눈물이 흘렀다. 할머니 죄송해요. 이제야 할머니의 마음을 알게 된 것 같아요. 사랑해요 할머니


새해 첫날 쓰리디 쓰린 마음을 붙잡고 어제보다 철든 마음으로 한 해를 살아가야겠다고 다짐했다.


아가야, 배숙 먹고 감기 얼른 낫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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