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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몬이 May 29. 2023

[경험] 쿠팡풀필먼트/출고

각각의 힘듦이 있는 곳

#1. 궁금한 건 못 참지!

지난주 생각을 비워내고자 쿠팡 입고 공정을 선택해 일을 해봤고, 안 쓰던 근육을 쓰니까 하루가 사라지는 경험을 했다. 단순한 일들이지만 만만치 않다는 걸 깨달아버렸다. 예상했던 것보다 단순업무의 노동 강도는 높았다. 무거운 박스를 들어 옮기고 앉았다 일어났다를 반복하며 다리와 어깨가 뻐근해지고, 쪼그려 앉을 일이 생기면 그냥 퍼질러 앉고 싶단 생각이 머릿속에 가득이었다. 하지만 궁금했다. 입고가 대충 어떤 일을 하는지 경험했으니 출고일은 어떨까 하는 호기심이 생겼다.



호기심은 없던 용기도 생기게 해주는 것 같았다. 호기롭게 출고 업무를 신청하고는 확정 문자를 기다렸다. 입고 후 딱 일주일 만이다. 아침 일찍이 출근 확정문자를 확인하고 이번에는 저번 입고를 통해 불편했던 부분을 보완하는 채비를 하고 시간에 맞춰 출근을 했다.(청바지에서 편한 트레이닝바지로, 스니커즈 운동화에서 등산화로) 약간 누가 보면 가벼운 산행을 떠나는 사람의 모습이었다. 



#2. 안 쓰던 근육까지 쓰려니

도착을 하고서 입구에서 동일하게 출근체크를 한다 그리곤 왼편의 사무실에서 본인확인의 QR체크인을 하고 사물함 열쇠가 달린 카드키를 부여받아 안내받은 2층으로 올라갔다. 입고는 물건을 진열하는 작업이라면 출고는 그 진열된 물건을 고객대신 장을 봐주는 작업이 전부겠지라고 생각을 했다. 그것은 나의 오만이었다.


물론 카트에 고객의 주문 상품을 담는 작업도 있다. 하지만 나는 '분류'라는 업무로 배정이 되었다. '분류'는 한 마디로 무작위로 포장되어 온 상품이 가득 담긴 박스를 가져와 부착되어 있는 송장의 지역을 확인하고 각 송장의 지역에 맞게 포장된 상품을 배송지역의 박스에 옮겨 담는 것이었다.(원래 다른 센터에서는 이 '분류'가 Hub 쪽에서 하는 작업이지만 서울센터는 작은 물품들은 출고 쪽에서 담당하고 있다고 한다.) 입고와 달리 2회 차 근무지만 출고는 처음이었던 나는 업무 전 간략히 분류 업무에 대해 교육을 받고 바로 투입되었다. 

분류는 2인 1조로 함께 하는 작업이었는데 거의 움직임 없이 허리를 자주 움직이는 정도였다. 입고보다 괜찮은데 생각했던 함정이었다. 작업 2시간이 지날 무렵 점점 허리를 움직여야 하는 작업은 왜 그리 많은 것이며, 분류박스에 쌓인 물건들은 왜 이리 무거운 것인가? 정말 티끌 모아 태산이 된다는 말을 직접 경험했다. 작은 물건들이 모여 쌓이니 그렇게 무거울 수 없었다. 


틈틈이 알고 있는 허리 운동과 스트레칭을 자주 해줬다. 그래도 부족했다. 심지어 나중에는 등 근육까지 괴성을 지르는 것 같았다. 점차 움직임이 둔해질 때쯤 식사시간이 되었다. 작업 중 받은 식권을 소중히 들고 식당으로 향했다. 노동 후 먹는 밥은 꿀이다. 평소라면 반공기를 먹을까 말까 한 밥을 완그릇하고 또다시 작업을 위해 좀비처럼 작업장으로 향했다. 


일 하면서 민폐를 끼치고 싶지 않은 마음이 커서 기존 근무자 분의 속도에 맞춰 잘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있었다. 입고는 혼자서 하는 업무인데 비해 출고 그것도 내가 작업하는 '분류'는 2인 1조이었기에 더욱이 폐를 끼치고 싶지 않았다. 


이런 조급해하는 태도가 느껴졌을까? 기존 근무자 분께서 굳이 본인의 속도를 따라오지 않아도 된다며 천천히 하라고 말해주셨다. 잔뜩 경직되어 있던 내게 그 말이 그렇게 따습게 다가왔다.


평소 안 쓰던 근육들은 괴성을 질러댔지만 생각은 오히려 단순해졌다. 그래 나는 처음 하는 일이고 좀 느릴 수 있고 실수만 하지 말자는 마음을 먹으니 마음에 여유가 조금 생기는 것 같았다. 생각을 바꾼 탓일까? 더디게 갔던 시간이 빠르게 흐르는 듯했고 두 번째 쉬는 시간을 맞이했다. 이번엔 잠을 자기보단 스트레칭을 잔뜩 하고는 마지막 3차전 근무를 위해 휴게실을 나섰다.



#3. 끝나도 끝이 아닌 

시간이 거의 3시 40분을 향할 때쯤 눈앞에 포장된 물품을 가득 실은 박스들이 거대한 산처럼 쌓여있는 것을 보았다. 순간 내 눈을 의심했다. 그때의 기분은 뭐랄까 박스를 분명 비워냈음에도 리셋이 되는 기분이었다. 토끼눈을 하고 같이 합을 맞추던 근무자분께 물었다. 대체 저 산처럼 쌓인 물품들은 무엇이냐고..


그랬다. 분류 작업은 그 시간 안에 분류를 끝마쳐야 하는 물품들이 있는데(시간 내 고객들이 주문해 로켓배송, 로켓와우로 배송이 나가는 물품들을 말한다.) 그 물품들을 전부 분류를 해야 작업이 끝난다고 그래서 3시 55분까지 그 작업량을 다 처리해야 해서 앞 근무시간에 좀 쉬엄쉬엄하면 퇴근시간 임박해 미친 듯이 작업을 해야 한다고.. 조금 일찍 알았더라면 하고 작은 한숨을 쉬었지만 한숨을 쉴 사치를 부릴 시간이 없었다. 그래서일까 기존 포장제품 검수를 하던 근무자분들과 관리자 분들까지 합세하여 분류 업무에 투입되기 시작했다. 정말 4평 남짓 작은 공간에 4명이 서로 요리조리 피해 가며 15분간 지옥의 분류작업을 시작했다.


함께 하면 이렇게 빠르게 처리할 수 있구나를 다시 한번 느낀 순간이었다. 정말 어마어마하게 많았던 박스 내 물품들을 그 15분 내에 전부 분류처리 한 것이다. 몸은 힘들어 말조차 안 나왔지만 뭔가 굉장히 뿌듯한 기분이었다. 53분 모든 작업이 마무리되었고, 먼지와 기타 쓰레기들을 청소하는 작업을 마지막으로 작업장을 벗어날 수 있었다.



#4. 퇴근!!

드디어 안내방송이 나왔다. 분류 작업장은 레일이 돌아가는 기계소리로 안내방송이 잘 들리지 않지만 눈치껏 사람들을 따라가며 퇴근 발걸음을 재촉했다. 1층 사물함이 있는 사무실로 내려가 개인소지품을 찾고 카드키를 반납하고 퇴근을 체크한 후 터덜터덜 지친 발걸음을 옮겨 퇴근 셔틀버스에 탑승했다. 버스 의자에 몸을 기대고 보니 저번에 뵈었던 분들의 얼굴이 보였다. 대단하게 느껴졌다. 단순하지만 강도가 은근히 높은 이 업무를 거의 매주 하신다는 말씀들을 나누시는데 나는 편하게 살고 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고 매번 편하게 집에서 손가락으로 시키는 내 택배들이 이렇게 많은 사람들의 힘으로 배달이 오는구나 하는 감사한 마음도 들었다.



#5. 칼 같은 급여 지급

근무 시작이 수요일 19시면 퇴근은 목요일 04시 이기에 근무시작날을 기준으로 따지 자면 급여는 익일 지급이고, 근무 종료일을 기준으로 삼는다면 당일 지급이다. 시간도 정확했다. 14시에서 16시 사이. 급전이 필요하거나 정말 그 정도의 금액이 부족할 때 최고의 아르바이트가 아닌가 싶다. 하지만 한 가지 당부해주고 싶은 말이 있는데, 당일 아르바이트지만 가볍게 생각하지 않았으면 한다는 것 같다. 작은 실수에 다칠 수도 있고 엄연히 누군가 값을 치르고 주문한 물품이기 때문이다.  




한 번 더 말하지만 경험은 충분히 해볼 만한 가치가 있다.

무엇이든 내게 쌓인 경험이 언젠가는 도움으로 바뀌는 순간이 올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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