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4일간의 황금 설 연휴 첫날이다. 대부분이 고향에 계신 부모님, 친척, 친구, 지인들을 만나기 위해 귀성길을 떠날 때, 나는 홀로 기약도 없고 목적지도 없는 산책길을 떠났다. 나도 원래대로라면 오늘 분명 내가 오기를 목 빠지게 기다리고 계셨을 부모님을 뵙기 위해 고향 섬으로 내려갔겠지만 이번 설연휴는 나 홀로 방구석에서의 고립을 결정했고, 어머니께 내 결정에 대해 전화로 말씀드렸다. 이번 설에는 급한 일이 좀 있어서 못 내려갈 것 같다는 말을 전했고 “응 그래 알겠어. 어쩔 수 없지~”라고 말하는 아쉬움과 섭섭함이 느껴지는 어머니의 힘없는 대답을 듣고 나니 마음 한편, 씁쓸함이 밀려온다.
사실 급한 일 따윈 없었다. 금전적인 결핍과 더불어 정신적인 결핍이 새해가 다가올 때쯤부터 심해지기 시작했고, 도저히 이런 상태로 고향에 내려가는 것이 무리라고 판단되었다. 금전적인 결핍이야, 늘 그래왔던 대로 친구들에게 도움을 청하면 됐겠지만 정신적으로 회의감과 공허함, 그리고 우울감을 떨쳐내지 못한 상태로 고향에 내려가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4일간의 설 연휴 기간 동안 어떻게든 내 인생에서 이벤트성 마냥 찾아오는 금전적, 정신적 결핍의 근본적인 원인을 파악하고 이를 극복할 대안을 찾고 싶었다.
나름 열심히 살아왔다고 생각했는데 내 인생은 왜 항상 이 모양 이 꼴인 건가?
왜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항상 제자리걸음인 걸까? 불안, 우울, 공허, 회의와 같은 부정적인 감정들에서 해방될 수는 없는 건가? 지금 충분히 심각한 상황이고 변화나 노력이 필요한 시점인걸 아는데도 왜 나는 아무것도 못하고 아무것도 하지 않으려고 하는가? 나는 왜 이렇게 게으르고 나태해졌을까?
이런 생각들에 사로잡혀 있을 때 종종 독서를 하거나 동기부여 영상을 보거나 누군가를 만나 술을 마시고 대화를 하면서 이러한 부정적인 감정들이 어느 정도 해소되고 위안을 얻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행위들은 일시적인 해결책일 뿐, 근본적인 문제의 뿌리는 어느새 또 잡초처럼 자라나서 나를 괴롭히기를 반복했다.
이번만큼은 나도 참을 수 없었다.
어떻게 해서든 나를 괴롭히는 이런 부정적인 감정들을 뿌리째 뽑아버리고 싶었다.
석가모니, 니체, 쇼펜하우어가 인생은 고통이라고 말했듯, 고통은 우리가 짊어지고 가야 할 숙명일 수도 있고, 이를 극복하는 건 거의 불가능에 가까울 수도 있지만 이제는 도저히 참을 수가 없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이것들을 내 머릿속에서 지워버리고 싶었다. 아니 없앨 수 없는 것이라면 적어도 이따금 올라와서 활개를 칠 수 없게끔 내 생각 깊은 곳에 꽁꽁 싸매고 묻어버리고 싶었다. 심지어 단 하나의 방법이 나 자신에게 최면을 거는 것일지라도, 영화 매트릭스에서 나왔던 두 개의 알약(빨간색, 파란색) 중 진실을 외면하고 거짓 세상에서 맘 편하게 살 수 있는 파란색 약을 선택하는 한이 있더라도, 무슨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서라도 이번만큼은 진지하게 해결 방법을 찾기로 결심했다.
파란약을 먹고 현실을 망각하는 한이 있더라도 고통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싶었다.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나는 앞으로 나아갈 수 없을 것 같았다.
점점 나태와 게으름에 빠지고 자기 합리화의 늪으로 나 자신을 내 던지고 있는 것을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설령 완전한 해결방법을 찾을 수는 없을지라도, 적어도 이를 극복할 수 있을만한 실마리라도 찾고 싶었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나는 4일간의 설연휴 기간 동안 내가 할 수 있는 뭐든 걸 해볼 작정이었다. 최근 고전과 철학에 흥미를 느껴 관련 책들을 엄청 사서 읽어대기 시작했다. 특히 고전과 철학책은 아니지만 룰루밀러의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와 헤르만헤세의 ‘밤의 사색’을 감명 깊게 읽었다. 그리고 아직 읽지 않은 책들을 일단 읽어볼까도 생각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이제는 더 이상 책과 동기부여 같은 영상에서는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을 것 같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제 나를 설득할 수 있는 사람은 이 세상에서 단 한 명밖에 존재하지 않는 것 같았다. 바로 나 자신뿐이었다. 그래서 내면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볼까 해서 얼마 전에 읽었던 선불교와 명상 관련 책인 스즈키 순류의 ‘선심초심’이라는 책을 다시 꺼내 보면서 명상하는 방법과 마음가짐에 대한 방법을 다시 한번 숙지하였고, 엉성한 자세를 바로 잡고 명상이라는 걸 진지하게 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시작한 지 30분도 채 못 버티고 온몸에 연결되어 있는 신경세포들이 여기저기서 발작버튼을 누르기 시작했다. 그래서 명상은 앞으로 천천히 해나가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지금 당장 극약처방은 아닌 것 같았다.
결국 지금 당장 내가 할 수 있는 건 한 가지 방법 밖에 없다고 결론이 났고 그건 바로 산책이었다.
산책은 예전부터 해왔고, 그저 걷기만 하면 되었다. 명상이나 독서처럼 가만히 앉아서 무언가를 해야 하는 인내심이 필요한 것도 아니고, 걷는다는 행위를 끊임없이 반복하다 보니 방구석에 처박혀서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느끼는 답답함도 없다. 그저 걷다가 문뜩문뜩 올라오는 생각들을 그저 뿌리칠 필요도 없고 생각이 나는 대로 내버려 둘 수 있고 그렇게 계속 생각을 관찰하다 보면 가끔 정리도 되고 좋은 영감과 해결방법을 찾기도 했다.
그래서 나는 오늘 산책으로 끝장 보기로 결심하고 오후 3시 30분쯤 좁은 원룸 문짝을 열어젖히고 넓은 도시의 땅을 한 발 한 발 밟아가기 시작했다.
내안에 깊게 뿌리내린 고통과 부정적인 감정들을 뿌리째 뽑아버리고자 선택한 산책 여정
목적지는 정해지지 않았다. 생각할 주제도 정하지 않았다.
하지만 산책을 끝내는 기준 하나는 세웠다. 나는 오늘 내가 만족할만한 생각이 정리될 때까지 되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만약 어느 정도 내가 만족할만한 생각이 정리되면 다시 내가 살고 있는 수원 망포역 인근에 위치 한 나의 좁디좁은 원룸으로 돌아올 생각이었다.
그렇게 나의 무모한 산책은 시작되었고, 걷고 또 걸었다.
수원시 망포에서 출발해서 지금 나는 화성시에 위치한 어느 카페에 와서 이 글을 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