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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산책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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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이너리 Jan 27. 2023

선택의 갈림길을 마주쳤을 때

[산책일기 02화] 선택에 관하여

나의 현재 모습은 내가 지금까지 했던 모든 크고 작은 선택의 결과라면?


(2023년 01월 21일 토요일에서 22일 일요일로 넘어가기 직전 늦은 저녁)


목적지와 주제도 정하지 않고 심지어 만족할만한 생각이 정리될 때까지 집으로 돌아오지 않겠다고 다짐한 채, 그저 내 마음이 이끄는 대로, 내 마음에 따라 내 두 다리가 한 발 한 발 내딛는 대로 걷고 또 걷던 도중에 나는 한 가지 거슬림을 인지하기 시작했다.


마침 마음도 우울하고 적적해서 여러 생각들이 올라오고 있었고 그 생각이 부정적인 생각이든 긍정적인 생각이든 좋았던 기억이든 나빴던 기억이든 뭐든 간에 억지로 차단하려거나 붙잡아두려고 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내버려 둔 채, 생각 속에 잠기려고 하면 자꾸 선택이라는 놈이 내 생각 속에 끼어들어서 훼방을 놓는 것이었다.


그 선택은 바로 산책 중 수도 없이 마주치는 갈림길 중에서 어느 방향으로 걸어갈 것인가에 대한 선택이었다.

물론 어디로 가야 할지 고민하는 것 또한 내 마음속에서 올라오는 생각이겠지만 이 선택지를 고민하는 것이 순수하게 올라오는 생각이라고 느껴지지 않아서 썩 내키진 않았다.

허나, 언젠간 이 산책도 끝나는 시간이 올 테고 비록 처음부터 정하지는 않았으나 결국 산책을 끝낸 지점이 이 산책의 최종 목적지가 될 터였다.


산책중에 갈림길을 마주할 때마다 어느쪽을 선택할지 고민해야했다.


갈림길에는 두 갈래 길도 있고 세 갈래 길도 있었다.

갈림길이 없을 때는 그냥 선택의 번거로움을 느끼지 않아도 되지만 두 갈래길 혹은 사거리와 같은 세 갈래길을 마주하게 될 때는 내가 걸어온 방향을 제외하고 3가지 선택지가 존재했기 때문에 나도 모르게 멈칫하며 한참을 고민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의 경우 내가 걸어온 방향 되돌아가는 것을 고려하지 않았기 때문에 사거리를 만났을 때는 오른쪽과 왼쪽 그리고 직진하는 3가지 선택지 밖에 없었지만 따지고 보면 선택할 수 있는 선택지는 왼쪽, 오른쪽, 직진 말고도 왔던 길을 다시 되돌아가는 선택지와 어느 길도 선택하지 않는 선택지까지 크게 5가지 선택지가 존재했다. 어찌 됐건 그 사거리에서 계속 멈춰서 있을 수도 없는 노릇이고 다시 되돌아가는 것은 애초에 선택지로 생각도 안 했기 때문에 눈앞의 3가지 갈림길 중 선택해야만 했다.


약간의 스트레스를 안고 어느 방향을 선택할지 고민하고 있던 찰나에 불현듯, 나에게 있어 최고의 인생 영화였던 ‘미스터 노바디’라는 영화의 주인공 ‘니모’가 어린 시절 빵하나만 살 수 있는 동전 하나를 쥐고 군침 도는 빵이 진열되어 있는 빵집 앞에서 어떤 빵을 선택해야 할지 고민하다가 결국 어떤 빵도 선택하지 못하고 발검음을 옳기는 장면에서의 대사가 생각났다.


우리는 시간을 되돌릴 수 없어요. 그래서 무언가를 선택하는 건 힘든 일이죠 (…) 선택을 하지 못한 채로 있을수록 모든 건 가능성인 채로 남아있어요.
(영화 '미스터노바디' 대사 中)

나의 인생 영화 중 하나인 미스터노바디(자코 반 도마엘 감독), 이 영화 강추입니다!


이 영화는 내 최고의 인생영화였던 만큼 모든 스토리와 대사가 나에게 큰 영감과 감동을 주었지만  유독 이 대사에서 강한 전율을 느꼈던 기억이 난다. 저 장면에서 처럼 항상 먹고 싶은 빵은 여러 가지이지만 항상 빵하나만 살 수 있는 정도의 동전이 주어진 니모처럼  인생을 살다 보면 언제나 우리는 선택 순간들을 마주하게 되고 우리는 항상 되고 싶은 것, 갖고 싶은 것, 이루고 싶은 것, 소망하는 것은 여러 가지이지만 그 선택의 순간에는 선택할 수 있는 선택지는 제한적이고 비록 우리의 운명을 결정지을 선택의 순간을 마주하게 돼도 섣불리 선택의 발걸음을 내딛지 못하는 것 같다.


그래서 나는 산책을 하면서 마주하게 된 여러 갈래 중 하나를 선택하여 발걸음을 내딛는 과정이 우리 인생과 많이 닮아 있다는 생각을 했다. 나는 산책을 하면서 이 길을 선택할 수도 있고 저 길을 선택할 수도 있다. 하지만 두 길을 다 선택해서 걸어갈 수는 없다. 이 길을 선택했을 때 아름다운 호수공원이 나올 수도 있고, 삭막하기 그지없는 각진 아파트 단지가 나올 수도 있다.


저 길을 선택했을 때 에너지 넘치는 도시의 번화가가 나올 수도 있고, 한강이 나올 수도 있고, 산과 바다가 나올 수도 있다. 또 다른 이 길을 선택했을 때 길이 막혀 되돌아갈 수도 있고 사고를 당할 수도 있고 이상한 사람을 만나서 좋지 못한 경험을 할 수도 있다. 또 다른 저 길을 선택했을 때 좋은 인연을 만날 수도 있고 어떤 깨달음을 얻는 경험을 할 수도 있고 생각지도 못한 경험을 하거나 기회가 찾아올 수도 있다.


비록 수많은 갈림길 중 한 순간의 선택일지라도 어떤 길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내 산책 여정의 모든 과정과 경험이 바뀔 수 있었다. 별 것 아닌 것 같은 순간의 선택인 것 같지만 이 선택으로 인해 만들어지는 서로 다른 과정들이 결국엔 이 여정의 최종 목적지를 결정할 것이고, 이 여정을 통해 나는 전혀 다른 생각과 감정 그리고 경험을 얻게 될 것이다.


비록 목적지를 정해놓지 않고 그저 내 의식의 흐름에 몸을 맡기고 생각이 정리될 때까지만 걷고 또 걷는다고는 했지만 결국 내 마음 한편에서 무언가 보기를 바라고 얻기를 바라는 마음이 자리 잡고 있지는 않았을까?

이런 이유로 내가 갈림길을 마주했을 때 잠시 멈칫하여 고민하고 섣불리 발걸음을 내딛지 못했던 걸까? 하지만 나는 지금 내 의식적인 상태로 생각을 하고 글을 쓰고 있기 때문에 내 무의식이 무얼 원하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렇다고 내 무의식은 답을 알고 있을지도 의문이다. 그저 단순히 바라는 것만 있는 녀석 일 수도..


모든 길은 자신이 선택하기 전까지는 가능성인 채로 남아있다.

내가 산책을 하기로 선택하고 걸어가기 시작하니 수많은 길을 마주하게 되었고 길 하나에도 여러 갈래로 나누어져 그중 하나를 선택하고 걸어가기를 반복하면서 내가 선택하여 걸어갔던 길은 비로소 가능성의 영역으로만 존재했다가 새로운 생각과 경험으로 실체가 되었다.


모든 길, 모든 문은 그곳에 가기로 혹은 그 문을 열기로 선택하기 전엔 모두 가능성인 채로 남아있다. 선택을 하는 순간 가능성의 문이 열리기 시작할 것이다.


내가 선택하지 않은 여러 길은 내가 갈 수도 있었다는 가능성으로만 남아있게 될 것이고 내가 그 길을 선택했다면 전혀 다른 생각과 경험으로 실체화가 되었을 것이다. 결국 어떤 길이든 선택의 순간에서 한 가지 길을 택할 수밖에 없고 내가 그 길을 가려고 선택하는 순간, 그것은 가능성으로만 머물지 않고 내가 묵묵히 걸어가는 과정 속에서 점점 실체화되어 그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어떤 길을 선택하든 그 길을 걸어가는 과정과 결과를 어느 누구도 알 수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어떤 길이든 한 발짝도 내딛지 않는다면 우리는 한 곳에만 정지된 채 머물게 될 것이고 모든 길은 가능성인 채로만 남아있게 될 것이다.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살면서 누구나 되고 싶은 것, 이루고 싶은 것, 갖고 싶은 것들이 있었을 것이고 아직까지도 그 소망을 품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되고, 그것을 이루고, 그것을 갖고 싶다는 소망만 하고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그것들은 저절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모두 여러분이 될 수도, 이룰 수도, 가질 수도 있었던 가능성인 채로만 남아있게 된다.

무언가가 된다고, 이룬다고, 갖는다는 선택을 해야만 비로소 그것은 가능성인 채로만 남아있지 않게 된다. 그리고 선택하고 노력하는 과정에서 그것은 여러분에게 실체로 다가올 것이다.


물론 선택에 따른 리스크는 존재한다.  그 선택의 무게가 크면 클수록 자신의 인생에 큰 영향을 미칠 만큼 파장을 일으킬 수도 있다. 하지만 기억해야 한다. 선택을 하지 않으면 모든 건 가능성인 채로만 남아있다. 그리고 그것을 선택하지 않는 것 또한 선택한 것이라는 걸. 단지 가능성인 채로 남겨두는 선택을 했을 뿐이라는 것을. 오늘 대략 6시간가량 걸으면서 선택에 대한 아주 깊은 고찰을 하게 된 것 같다.


그리고 한 가지 깨달은 점이 있다면, 지금의 나의 모습과 감정은 지금까지 내가 살아오면서 무수히도 많은 크고 작은 선택의 결과였음을 알게 되었다. 나는 해병대원이었기도 했고, 아프리카 봉사단원이기도 했고, 호주 워홀러이기도 했으며, IT 분야의 기획자이기도 했고, 마케터이기도 했고, 영업인이기도 했으며, 창업자이기도 했다. 그리고 공장 노동자이기도 했고 백수이기도 했으며 지금은 개발자이기도 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이것들 모두 내가 그것이 되기로 선택한 것이었음을 깨달았다. 내가 일이 안 풀리고 부정적인 생각의 늪에 빠져있을 때마다 나는 엄청 미련하고 멍청한 선택만 해왔구나.. 하는 생각을 자주 했었고 현재 내 모습에 불만족을 느끼고 자기 비하를 일삼으며 비극의 주인공 코스프레나 하면서 지지리 궁상이나 떨어대며 자기 합리화라는 족쇄를 스스로 채워서는 아무것도 바꾸려고 하지 않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에 대한 빌미를 만들기만 했었던 것 같다. 바로 현재의 내 모습처럼.


만약 내 지금의 모습은 내가 지금까지 했던 모든 크고 작은 선택의 결과라면 이제 더 이상 내 인생을 점점 어둡게 하는 선택을 하지 않으려 노력할 것이다. 나를 부정적인 감정의 소용돌이로 밀어 넣는 선택을 하지 않으려 노력할 것이다. 앞으로는 내가 해왔던 크고 작은 선택의 패턴을 재조정할 때인 것 같다. 아직 늦지 않았다. 아니, 선택에 늦은 나이란 없다.


그리고 인생에 정답이 없다는 말이 있듯이 이 길을 선택할 수도 있고, 저 길을 선택할 수도 있다. 아니면 그 어느 것도 선택하지 않는 선택을 할 수도 있다. 인생을 만드는 선택들 또한 옳고 그름이 없으며 모든 길은 옳은 길이다. 그것이 옳은지 그른지 판단할 수 있는 주체는 오로지 자신뿐이다.


내가 해온 크고 작은 모든 선택들이 결국 지금의 나를 만들었고 지금의 내가 앞으로 하게 될 선택들은 미래의 나를 만든다.


이것은 오늘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을 수도 있는 6시간가량의 산책 여정을 통해 얻은 생각이다.

오늘부로 이 것을 나의 인생 제1원칙으로 삼기로 선택했다.


오늘에서야 비로소 프랑스의 실존주의 철학자이자 소설가였던 장폴 샤르트르(Jean paul sartre)가 남긴 명언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게 된 것 같다.

우리에게도 친숙하고 누구나 한번쯤 들어봤을 법한 그의 명언을 끝으로 오늘은 이만 마무리하도록 하겠다.


Life is C between B and D.
(Life is choice between birth and death.)

인생은 B와 D 사이의 C이다.
(인생은 삶과 죽음 사이 선택이다.)


P.S : 자연은 인간의 사정을 봐주지 않습니다. 나의 기분과 감정이 어떻듯, 상황이 어떻든 자연에게 그것은 단 1도 중요하지 않습니다. 이 세상은 우주의 법칙대로, 자연의 순리대로 움직일 뿐이죠. 지금 눈을 감으면 내일이 오지 않기를 아무리 바란다고 해서 내일 아침 해가 뜨지 않을 리 없고, 밤이 싫다고 어둠이 찾아오지 않을 리 없습니다. 그리고 지구는 태양의 주위를 항상 같은 시간과 각도로 돌고 또 돌겠죠.

우리 인간은 이것을 거스를 수 없습니다. 시간도 마찬가지입니다. 시간은 우리를 기다려주지 않습니다. 모든 인간은 태어나고 죽습니다. 그리고 모두가 동일한 시간의 흐름 속에 살다가 죽습니다. 비록 운명의 수레바퀴가 누군가를 조금 더 일찍 죽게 할 수도 더 많이 살게 할 수도 있지만 미래를 안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우리 모두가 이 사실을 항상 기억하면서 주어진 시간 속에서 의미 있는 삶을 살아가기 위해 보다 나은 선택을 하고 나은 인생을 살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오늘 선택에 관한 글을 쓰긴 했지만 선택이전에 중요한 것이 인생을 살아가는 마음가짐이라고 생각합니다. 마음가짐은 우리의 선택에 영향을 줄 것이기 때문입니다.
생각이 바뀌면 선택이 바뀌고 선택이 바뀌면 행동이 바뀔 것입니다. 그리고 행동이 바뀐다면 우리의 인생 또한 바뀌게 될 것임을 저는 믿습니다.


2023년 01월 22일 새벽 2시 20분, 병점역 인근 찜질방에서


내일도 이어서 저의 산책 여정은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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