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면 01화] 프롤로그
반평생 가면을 쓰고 살아왔습니다.
반평생 가면을 쓰고 살아왔습니다.
그것도 저에겐 과분하고 어울리지 않은 무거운 가면을 쓰고 살아왔습니다.
여태껏 가면을 쓰고도 별 탈 없이 잘 살아왔습니다만 이제는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일상에서의 제 모든 말과 행동이 낯설고 부자연스럽게 느껴지기 시작합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반평생을 살아오면서 나 자신으로 살아본 적은 언제였는지조차 기억나지 않습니다. 아무래도 저는 순수함을 가져야 마땅했을 어린 시절부터 일찍이 가면을 만들어내고 있었던 모양입니다.
그렇다고 가면 속 숨겨진 진짜 '나'다운 모습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아는 것도 아닙니다. 아니, ‘나’ 다운 모습이라는 것이 존재하긴 하는 걸까요? 그리고 ‘나’ 자신으로 살아가는 것 자체가 가능한 일인지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오늘날 수많은 매체에서 영향력 꽤나 있는 자들이 ‘나’ 자신으로 살아가는 법, ‘나’ 답게 살아가는 법이랍시고 마치 나다운 인생을 살아가는 비밀을 알려줄 것처럼 떠드는 소리가 심심치 않게 들려옵니다.
저도 한때는 이런 사탕 발린 말들에 매료되어 제 두 눈과 귀가 멀어버린 채로 살아왔습니다,
술에 취하듯 그들의 말에 점점 취하고 마약에 중독되듯 자기계발서적과 인문학강의에 중독되어 마치 성서를 읽듯, 한 문장도 놓치지 않으려 노력했고 그들의 말이 인생의 진리인 줄로 착각하며 그들의 말, 그들의 행동에 대한 맹목적인 믿음을 갖고 살아갔던 적도 있었습니다만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보니 과연 이 작자들은 자기 자신으로 살아 본 적은 있을지, 그리고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 알기는 하는지 의문이 듭니다.
혹시라도 그들 또한 저와 다른 사람들처럼 가면을 쓰고 살아갔던 것이라면,
그리고 그 가면을 쓴 채로 마치 인생의 비밀은 안다는 듯 사탕 발린 거짓 오물을 여기저기 뿌려댄 것이라면,
그것이 인생의 진리인 줄 곧이곧대로 믿으며 그 오물을 뒤집어쓰며 아무렇지 않게 살아가는 것이 우리의 인생이라면,
온통 거짓과 부조리와 모순으로만 가득 차 있는 것이 우리 인간의 삶이 아닐까요? 이런 삶을 살아갈 가치나 의미가 있는 것일까요?
제가 지금까지 써 내려간 글과 이야기들 그리고 타인에게 해왔던 말과 행동들, 이 모든 것에 거짓이 없었음을 밝힙니다만 그렇다고 진실만을 써 내려갔던 것인지 이제는 제 스스로도 의문이 들기 시작합니다.
나름 저에겐 양심이라는 사치스러운 감정이 남아 있었던지 다른 사람에게 제 이야기를 들려줄 때, 단 한 번도 없는 이야기를 지어낸 적이 없었습니다. 제가 실제로 경험하고 해 왔던 일들을 과장과 왜곡 없이(장담은 못하겠습니다만 어쨌든 저는 그래왔다고 생각합니다)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말해왔습니다.
항상 제 이야기를 할 때면 빼놓지 않고 주구장창 떠들던 꽤 괜찮은 레퍼토리가 있습니다.
'꿈을 갖게 된 배경', '변화하게 된 계기', '도전적인 삶', '인생 가치관'... 등 이 이야기들은 왠지 고난과 시련을 극복하고 꿈을 향해 전진하는 자의 성공 스토리 같아 보입니다.
허나, 이 모든 이야기들은 꿈에 대한 열정에서 비롯된 진실되고 순수한 동기가 아닌 제 내면 속에 존재하는 짙은 어둠을 감추기 위한 수단으로 만들어진 거짓된 동기들이었습니다.
타인에게 제 본모습이자 내면의 어둠을 들키는걸 극도로 두려워한 나머지 이것을 어떻게든 감추기 위해 저는 필사적으로 어둠과 대적할만한 밝은 무언가를 찾으려 애를 썼습니다.
내면의 어둠 위에 밝은 것을 덫칠하면 어둠이 사라질 것만 같았습니다. 밝은 것으로 대표되는 꿈, 희망, 극복, 행복 과 같은 밝은 점들을 제 어둠 위에 찍기 시작했고 그 점들은 어느새 꿈과 야망이라는 형태의 가면으로 만들어져 제 얼굴 위에 써지기 시작했습니다.
인간은 자기가 믿고 싶은 대로 믿는다는 말이 사실이었나 봅니다. 저는 꿈이라는 가면을 쓰고 살다 보니 이것이 제 진짜모습인 줄로 착각하기 시작하면서 제 자신조차 속이는 지경까지 이르렀습니다. 그리고 본격적인 꿈이라는 이름의 가면을 쓴 한 남자의 연극이 시작되었습니다.
가면을 벗은 제 본모습이 어떤 모습인지도 모를뿐더러, 이것이 존재하는지조차 의문이 든다고 말씀드렸습니다만 적어도 지금까지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주었던 제 모습들은 꿈과 야망이라는 재료로 견고하고 단단하게 만들어진 가면을 쓴 모습이었다는 사실 하나만큼은 확실하게 말씀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더 이상 무거운 가면을 쓰고 살아가는 것이 벅차오르기 시작합니다. 큰 야망과 꿈이라는 가면은 저에겐 도무지 어울리지 않을뿐더러 감당조차 할 수 없는 그릇이라고 깨닫기 시작했거든요. 이제 말로 제 진실된 이야기를 말할 때가 온 것 같습니다.
이제는 솔직하게 다 훌훌 털어놓고 스스로 만든 삶의 무게에 조금은 해방되고 싶은 저의 간절함일 수도 있겠습니다. 아직까지 제 주변 사람들에게 심지어 가까운 가족과 친구들에게 조차 솔직하게 털어놓지 못했던 제 가면과 진실을 이 글에서나마 밝히고자 합니다. 아무래도 글은 발행하기 전까진 다시 주워 담을 수 있다는 보험 같은 게 있어서 어쩐지 더 솔직해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이 순간에도 글의 전개와 결말을 저조차도 모르겠습니다. 그저 쓰고 있을 뿐, 그뿐입니다.
'나의 어둠을 마주하고 결국 그 어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나 자신으로 살아가게 되었다'라는 둥의 결국 고통을 극복한 시시콜콜한 성찰기나 해피엔딩으로 끝날 수 있고
'인간의 삶은 부조리와 고통 그 자체이고 어둠은 절대 사라지지 않은 채, 평생 우리를 괴롭힐 것이며 결국 죽음만이 해방에 이르는 길이다'라는 둥의 허무주의적이고 비관적인 새드엔딩으로 끝날 수도 있겠습니다.
뭐가 됐건, 저는 제가 생각하기에 진실이라고 생각하는 제 이야기를 써 내려갈 것이고, 이것 또한 또 다른 가면일 것인지 아닌지는 여러분의 판단에 맡기겠습니다.
살다 보니 인생에 정답은 없고, 자신이 믿는 대로 혹은 믿고 싶은 대로 살다가는 것이 우리 인간의 삶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럼 이제 제가 만들어낸 가면의 정체와 이 가면을 쓰고 살아왔던 제 이야기, 그리고 저의 진실을 이야기해보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