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비유 Nov 12. 2019

여친과 보면 이별하는 전설의 영화.

그랑블루(Le Grand Bleu, 1988) - 영화 리뷰 에세이

| 오랜 영화의 향수 그리고 정은임의 영화음악.


 정은임의 영화 음악을 들어본 적이 있는 세대라면 영화가 재미있는 스토리를 보여주던 것이 아닌 들려주는 것으로 기억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지금처럼 밤이 화려하지 않던 시절 새벽녘 고요한 방 안에서 책을 읽다가 방송이 시작한다. 그러면 한 시간 동안 귀를 쫑긋 세우고 차분한 정은임의 목소리로 영화를 듣는 것이었다. 지금의 유튜브가 정보 전달의 느낌이라면, 그때는 영화적 감성을 전달하는 느낌이었달까? 

 그때 진행방식은 이랬다. 영화를 짧게 소개하면서 중간중간에 OST 혹은 영화의 대사를 들려준다. 그렇게 듣다 보면 보지도 않은 영화가 생생하게 머릿속에 그려진다. 그리고 기회가 될 때 영화를 찾아보게 된다. 때로는 영화보다 OST를 먼저 사게 되는 때도 있었다. 기억은 가물거리지만 바그다드 카페의 ‘Calling you’가 생생히 기억난다. 페미니즘이 뭔지도 모르던 시절, 음악과 함께 끝없이 이어지는 사막의 한적한 도로를 본 것이 아니라 상상했다. 

https://www.youtube.com/watch?v=ko23koYtOfc

글을 읽으면서 함께 듣기를 권해 드린다. 그랑블루의 The Big Blue Overture by Eric Serra



| 여친보다 돌고래를 사랑한 남자.

 

 그런 감성의 영화 중의 하나가 바로 그랑블루다. 바다를 가로지르는 오프닝이 느리게 전개된다. 그리고 그와 함께 돌고래 소리가 연상되는 에릭 세라(Eric Serra)의 음악이 잔잔하게 흐른다. 국내 개봉은 1988년이 아닌 1993년이었는데, 영화가 개봉했을 때는 여성들의 머스트-와치(Must-Watch) 영화였다고 한다. 남자 친구하고 보러 가면 헤어진다는 속설이 돌 정도로 자끄(장 마끄 바, Jean Marc Barr)의 매력이 오묘했다고 한다. 


| 1965년 그리스, 엔조와 자끄의 유년 시절

 

 이야기는 자끄와 엔조의 어린 시절을 흑백 화면으로 보여주면서 시작한다. 물속에 떨어진 동전을 주워달라는 친구들의 요청에 입수하려는 자끄. 마을의 골목대장인 엔조(장 르노, Jean Reno)가 나타나 이를 가로채 간다. 

장 르노와 어찌나 닮았는지......

 이를 지켜보던 신부님은 자끄에게 조그만 선물을 준비한다. 동전을 꺼내 달라는 신부님은 자끄의 입수와 함께 사라진다.

 아버지와 단둘이 살던 가난한 소년 자끄. 아버지는 잠수부로 자끄와 함께 조업에 나갔다가 사고로 죽게 된다. 


| 돌고래의 심장을 가진 남자.


 시간이 흐르고 1988년. 보험 사정사인 조안나 베이커는 안데스 산맥의 오지로 파견을 가게 되고 그곳에서 자끄 마욜이라는 남자를 만나게 된다. 돌고래의 심장을 갖고 있는 그를 처음 본 순간, 사랑에 빠진다. 

 

얼음을 뚫고 입수하는 자끄
그의 심장은 물에 들어가면 느려진다.

| 사랑에 빠지면 여자는 뻔뻔해진다?


 프리다이빙 대회 챔피언인 엔조는 자끄를 대회에 초대한다. 실력자인 자끄는 경쟁보다는 그저 바다가 좋을 뿐이다. 그는 결국 참가하기로 하고 시칠리로 향한다. 

시칠리로 돌아온 자끄는 오랜 가족들을 만난다.

자끄에게 반한 조안나는 로렌스 박사로부터 자끄가 대회에 참가한다는 소식을 듣고, 상사를 속이고 시칠리로 향한다.

자끄의 심박을 출력한 종이를 가져온 조안나.
시칠리에 보험 계약이 잘못되었다는 핑계로 출장을 가는 조안나

 조안나는 우연을 가장하여 자끄와 만난다. 세 명의 주인공은 시칠리의 한 레스토랑에서 조우하게 된다.

사랑은 전략을 우연으로 만든다.

 | 프리다이빙 대회, 경쟁과 우정.


 파티에서 술에 취해 서로를 도발하는 자끄와 엔조. 그들은 즉석 해서 숨 참기 시합을 한다. 수중에서 샴페인을 마시는 이 장면은 영화 속 명장면으로 남아 있다. 

실험 결과 불가능하다는 샴페인 씬. 하지만 우정의 감성을 보자.
엔조의 프리다이빙
자끄의 프리다이빙

 서로의 기록을 경신하며 세계 최고의 자리에 올라서는 두 사람. 자끄는 깊이 들어가면 깊이 들어갈수록 다시 되돌아올 명분을 찾는 일이 어렵다고 말한다. 조안나를 두고 돌고래와 밤을 지새우는 자끄를 보며 그를 사랑하는 조안나의 외로움은 점점 커져간다.


| 그 심연에는 무엇이 있을까?


 사랑에 빠진 조안나는 거짓말을 한 이유로 직장에서 해고를 당하고 고민 끝에 결국 자끄가 있는 시칠리로 온다. 엔조는 자끄의 기록을 깨기 위해 무리한 시도를 하다가 바닷속으로 영원히 떠난다. 엔조를 바닷속으로 보내며 잠수병에 걸린 자끄는 바닷속으로 들어가려고 한다. 그곳에 무엇이 있었을까? 그들이 말하는 전설처럼 그 깊은 곳에 인어가 있었는지 그는 자꾸 바다 깊은 곳으로 내려가려고 한다. 


 결국 조안나는 그를 보내준다. 최고 기록의 아래에 까지 내려간 자끄는 돌고래와 함께 심연으로 사라진다......

돌고래와 함께 심연으로 사라지는 자끄.


| 사랑으로도 채울 수 없는 외로움에 관한 것


 '나는 이 세상에서 가난하니 높고 쓸쓸하게 태어났다. 


 하늘이 이 세상을 내일 적에 그가 사랑하는 것들은 모두 가난하고 높고 쓸쓸하니......'


 심연으로 사라지는 자끄를 보면서 백석의 '흰 바람벽이 있어'라는 시가 떠올랐다. 유년 시절부터 고독한 삶을 살아온 자끄에게 조안나의 사랑은 어색했던 것일까? 극 중에서도 드러나듯 자끄는 사람들의 세계가 낯설다. 그에게는 깊은 심연이 마음의 안식처였는지도 모르겠다. 알 수 없지만, 왠지 그의 외로움이 심연으로부터 전해져 오는 듯한 엔딩이 많은 사색에 잠기게 한다.


작가의 이전글 중년의 도전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