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보다 더 인간적인 안드로이드(복제인간)에 관한 이야기.
상영 중인 따끈따끈한 조커 다음으로 소개해야지 하는 생각이 든 영화는 망설임이 없이 ‘블레이드 러너(Blade Runner)’였다. 불과 이틀 전 유명을 달리한 연예인의 기사를 읽으면서 안타까운 마음과 함께 악플러에 대한 잔혹함에 대해 화가 나기도 하였다. 도대체 무엇이 그녀를 정신적으로 견디지 못할 만큼의 고통을 안겨주어야 하는 것일까? 그리고 그렇게 만드는 사람들은 그녀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있는 것일까?
사회적 모순에서 비롯된 분노와 응어리들을 가장 쉽게 노출된 연예인에게 쏟아붓는 우리 사회의 현실에서 뭔가 진보적인 행동을 하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윤복희의 ‘미니스커트’도 당시에는 많은 사람들의 비난을 받았었다. 하지만 많은 시간이 흐른 지금에서는 얘기를 꺼내는 것조차 시대 흐름에 뒤떨어진 사람이 되기 십상이다.
‘몇 년 후였다면, 십여 년 후였다면, 아무 일도 아니었을 텐데……’하는 안타까움. 건강한 사회의 변혁은 오히려 그런 소수의 용감한 사람들의 언행에서 나온다는 것도 사실인데. 그런 다양성을 인정하지 못하는 사회가 얼마나 건강하지 못한 사회인가 하는 생각도 들다가 이렇든 저렇든 한 사람의 죽음에 대한 안타까움에 서론이 길어졌다(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하늘에서는 더는 상처 받지 않기를……)
이 영화는 더 인간적인 인조인간을 통해 인간이 어떤 존재인지를 되돌아보는 화두를 던진다는 데서 서두에 언급한 화제와 맞닿아 있다. 필립 K 딕은 필자가 존경하는 작가 중에서 손에 꼽는 인물이다. 블레이드 러너의 원작은 이 작가의 소설 ‘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의 꿈을 꾸었는가?’이다. 1968년에 출간된 이 소설은 놀라울 정도로 현재 시대의 모습들을 묘사하고 있다. 이 점 하나만으로도 작가의 혜안에 감탄할 수밖에 없는 소설이기도 하다.
이 영화는 2019년 11월 LA를 배경으로 한다. 핵전쟁의 여파로 태양은 고층 빌딩에서나 볼 수 있는 것이 되어버린 미래. 유전 공학 기술의 발달로 인간이 하지 못하는 외계에서의 전투, 노동 등을 하던 안드로이드 ‘넥서스 6’는 반란을 일으킨 이후 지구의 출입이 금지된다. 하지만 전투형 로봇인 ‘로이’를 비롯한 6명의 넥서스가 지구로 잠입한다.
은퇴한 블레이드 러너(넥서스 제거 전담 경찰) 데커드는 이 사건을 계기로 다시 소환되고 이들을 추적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놀라울 정도로 정교한 넥서스 차세대 모델인 레이첼을 만나게 된다.
핵전쟁으로 인한 묵시록적인 미래. 반젤리스(Vangelis)의 아름다운 음악과 묘하게 대비되는 어두운 배경은 사이버펑크 영화의 교과서로 손색이 없을 정도로 우아하기까지 하다.
넥서스가 제거될 때 ‘은퇴, retirement’라는 용어를 쓸 만큼 넥서스는 사람이 아닌 기계로 취급되지만 조사가 진행됨에 따라 데커드는 혼란에 빠진다. 자신은 사회적 생존을 위해 살인을 하고, 넥서스는 생존을 위해 싸우기 때문이다. 프리스(넥서스 6)의 대사는 이를 잘 대변한다.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 인간보다 우수한 능력을 가진 그리고 인간과 같은 욕망을 지닌 넥서스들은 하나둘씩 데커드에 죽어가며 로이는 이를 슬퍼하지만 마지막에 그를 살려주는 것 또한 로이(넥서스)이다. 그는 생이 다하는 순간 자비를 베풀어 데커드를 위험에서 구해주고, 마치 예수의 형상을 한 채 생을 마감한다.
디렉터스 컷에서만 볼 수 있는 유니콘 씬은 데커드도 복제인간일 수 있다는 의미를 암시한다. 그 전에는 개프의 종이접기 유니콘을 데커드가 줍는 장면이 마지막 반전이라 할 수 있는데 개연성이 부족했다. 리들리 스콧은 1992년 감독판에서 유니콘 신을 추가함으로써. 데커드가 넥서스일 수도 있다는 해석을 강화한다.
원작과 각색, 그리고 연출 모두 뛰어났던 이 영화는 비운의 명작이다. 개봉 당시에는 흥행에 참패했지만, 이 영화의 가치를 알아본 팬 들로 인해 1992년에 디렉터스 컷이 개봉되어 큰 화제를 낳았다. 1982년에 만들어진 영화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디테일이 살아 있는 고전 중에 고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