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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유 Oct 18. 2019

블레이드 러너 2049(Blade Runner2049)

인간보다 인간적인 복제인간들의 이야기 - 영화 리뷰 에세이

| 40년 만에 부활한 블레이드 러너. 2019년에서 2049년으로......


학창 시절에 우연히 보았던 블레이드 러너는 필자에게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전혀 상상해보지 못한 미래 세계도 그렇거니와 인간과 똑같은 모습의 복제인간이라니. 게다가 미국 시대상을 반영한 미래의 모습은 질풍노도의 시기를 보내던 청소년에게는 어둡고 음울하지만 매력적인 세상으로 다가왔다.


당시 블레이드 러너의 흥행 실패는 어두운 영화의 감성을 제외한다면, 지나치게 이질적인 미래상이 관객의 공감을 불러일으키기에는 부족했다는 평가도 있었다. 하지만 이후 팬들에 의해 재조명된 이유는 영화가 주는 인간에 대한 주제의식을 제외하고라도 작가가 주는 미래상에 대한 선견지명 또한 한몫했을 것이다.


필립 K. 딕이 1970년대에 이 소설을 썼을 때야 지금처럼 안드로이드나 AI 기술이 없던 시절이니 엄청난 충격이었겠지만, 2019년에 이 영화를 본 사람들은 아마도 복제인간이 잉태가 가능한 설정을 제외하고는 미래상에 관해 이질감은 없었으리라 생각된다. 1970년대에 작가가 예측한 미래가 놀랍지 않은가?


전작과 마찬가지로 눈은 2049에서도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2049년의 농장의 모습. 마치 눈을 형상화한 듯하다.


|전작을 잇는 강렬한 이미지들


블레이드 러너(1982)에서 눈은 인간과 로봇을 구분하는 중요한 매개체이다. 주인공인 K가 이미 넥서스로 나오기 때문에 홍채를 통한 넥서스 감별은 이번에는 볼 수 없지만, 인트로에서는 그런 이미지들을 강렬하게 보여준다.



| K는 누구인가?

외롭고 어두워 보이는 캐릭터라 잘생긴 샷을 얻기 힘들었다. 


신형 모델인 K(라이언 고슬링)는 넥서스를 제거하는 LAPD 소속의 블레이드 러너다. 반란을 일으켜 지구에 잠입해 있는 구형 넥서스들을 제거하는 임무를 수행한다. 신형 모델은 인간에게 반항적이지 않으며, 인간으로부터 멸시를 받더라도 반응하지 않고 피하는 존재다.



| 사건의 시작

죽은 나무 아래 깊은 곳에서 발견되는 유골

구형 모델인 사파를 제거한 직후 그의 농장 마당에 있는 죽은 나무 아래에 유골함을 발견하는 K. 본부에 알려 이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30년 전에 아이를 낳다가 죽은 여인의 유골임이 확인되고, 그녀의 뼈에 일련번호를 발견하고 충격에 빠진다. 전작에 등장하는 타이렐 회사(복제인간을 만드는 회사)는 기술의 정점에 있었으며, 마지막으로 만든 넥서스는 잉태와 출산이 가능하도록 제작되었다는 설정이다. K의 상관인 조시는 충격적인 이 사건을 덮기 위해 K에게 모든 것을 심지어는 아이까지 제거하라고 지시한다.

유골에 새겨 있는 시리얼 넘버. 아이를 낳은 인물이 넥서스라는 증거.


| 복제인간의 끝은 어디인가?

창조주의 형상을 한 월래스 회장. 타이렐의 생산이 가능한 넥서스 개발을 위한 잔혹한 모습을 보인다.

타이렐 회사를 이어받은 월래스 회사. 복제인간인 넥서스를 비롯 가상 AI를 만드는 회사이다. 회장인 니안더 월래스는 예수의 형상을 한 모습으로 나타나며, 잉태가 가능한 넥서스를 만들기 위해 서슴없이 넥서스를 죽이는 아이러니컬한 모습을 보인다. 그가 맹인이란 사실은 '눈'이 인간을 구분 짓는 중요한 매개라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넥서스가 태어나는 장면. 비닐에 포장되어 있는 상품과도 같은 이 장면은 꽤나 인상적이다.

우주에서의 지배권을 강화하기 위해 넥서스의 대량 생산을 원하는 니안더 회장. 하지만 넥서스의 생산에는 한계가 있었고 그는 출산이 가능한 넥서스를 원한다. 잉태가 가능한 넥서스가 실패로 끝나자, 최초의 넥서스의 아이를 찾으라는 명령을 내리는 월래스 회장.


| 복제인간에게도 사랑이 있다.


좀 많이 미인인 가상 여자 친구 조이. 아나 드 아르마스. 쿠바 출신의 절세미인 배우.

가상 여자 친구가 이 정도의 미모를 갖고 있다면, 현실 여자 친구는 필요 없겠네 하고 생각이 드는 조이. 복제인간이 가상 캐릭터를 사랑하는 이 건조한 설정은 아나 드 아르마스의 눈부신 외모로 로맨스로 흘러간다. 바깥세상을 경험할 수 있도록 에매네이터를 여자 친구에게 선물로 주는 K. 가상의 캐릭터에 대한 애틋한 K의 감성이 그대로 전해진다.

바깥세상을 처음 겪어보는 조이. 가상 여친이라 사물이 투과되는 장면이 인상적이다.


그의 사랑에 보답하듯. 실제 창녀를 고용해서 자신과 싱크를 맞추고 K와 사랑을 나누는 조이. 사랑이 끝난 후 냉정하게 창녀를 내보내는 모습은 가상의 캐릭터도 감정이 있음을 보여준다.


창녀 마리에트와 싱크 중인 조이. 이쯤 되면 마리에트나 조이 둘 다 사랑스러울 듯


| 나는 누구인가? K의 진실.


상사인 조시의 명령에 자신의 이식된 추억을 말하는 K.
그의 기억 속에 목각 인형이 실제 존재하는 것임을 알게 된다. 블레이드 러너에서 동물 형상은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자신은 넥서스고 기억은 이식된 것이라 생각하던 K는 상사의 명령으로 잉태가 가능한 넥서스와 관련된 증거를 없애기 위해 수사를 진행하던 도중 자신의 기억이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누군가의 기억임을 알게 된다. 그리고 수사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기억 속에 나무 인형을 발견하게 된다. 자신이 그 아이임을 알게 되자 충격을 받는 K. 정신감정에 오류를 일으키고 만다.


넥서스의 기억을 만들어주는 메모리 메이커. K는 그녀로부터 자신의 기억이 실제 존재하는 것임을 알게 된다.


오류로 인해 정직을 먹은 K. 목각 인형이 방사능 구역에서 온 것임을 알게 되자, 그곳으로 향한다.


| 데커드는 아버지인가? 어머니는 레이첼인가?


엄마 찾아 삼만리를 가는 K. 

이 영화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씬이다. 색감과 분위기가......

자신의 뿌리를 찾기 위해 방사능 구역까지 찾아간 K. 방사능은 없었지만 그곳에서 데커드를 만나게 된다. 아버지와 조우하게 된 K 갑자기 'I'm your father'의 스타워즈 대사가 생각났지만, 여기엔 반전이 숨어 있다.


전설의 데커드, 아버지 등장!

우여곡절 끝에 만나게 된 블레이드 러너의 전설 데커드. 데커드는 K를 오해하고 죽이려 하지만, 데커드를 아버지라 생각한 K는 인내심 있게 그가 진정할 때까지 기다리며 두드려 맞는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K를 추적해 온 월래스 회장의 수하들이 공격해오고 데커드를 납치해 간다. 그 과정에서 소멸하게 되는 조이. 사랑한다는 말을 남긴 채 사라지고 절망하는 K의 모습이 인상적이다.


조이의 마지막 순간. K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전하며 러브에게 살해된다.


| 넥서스 해방군.


최초의 아이를 신성시 여기는 넥서스 해방군 조직. 인간에게 저항하기 위해 군대를 조직한다.


마리에트가 심어 놓은 추적기를 통해 K를 구조하는 해방군. 그리고 자신이 최초의 아이가 아니라 최초의 아이를 보호하기 위해 복제된 아이였다는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 되는 K. 자신들의 존재를 알리며 자신들의 노출을 막기 위해 데커드를 죽여달라고 요청한다.


| K의 선택.


자신의 아이를 보호하려는 데커드. 인간보다 더 인간적이고 싶은 넥서스 해방군. 넥서스에게 생명을 만들게 하려는 월래스. 넥서스의 비밀을 막으려는 조시. 인간이든, 복제인간이든 모두 자신들의 명분을 위해서 K를 이용하고 소모품으로 여기는 자들이다. 이쯤 되면 라이언 고슬링의 얼굴만큼이나 K가 불쌍해진다.


게다가 사랑하는 조이마저 잃은 K의 상황은 절망적이다. 

이런 상태에서 '조이'는 무수히 많이 복제된 프로그램에 불과하다. 


그는 사실 '조이'와 다르지 않다. 복제인간의 아이를 복제한 산물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Ctrl+C, V에 불과한 K는 해방군의 요청대로 데커드를 찾아간다. 러브와 치열한 격투 끝에 데커드를 다시 만나게 된다. 해방군의 요청대로 데커드를 죽이는 것이 아니라 살려주는 K. 비록 복제된 아이이지만 데커드를 아버지라 생각하는 것일까? 하지만 러브와의 전투로 치명적인 부상을 당한 K. 


어떤 슬픈 영화보다도 슬펐다. 복제의 산물만이 희생이라는 의미를 전달한다.


반젤리스의 익숙한 슬픈 음악과 하얀 눈과 함께 K는 생을 마감한다. 모든 세력들은 나름대로의 목적과 명분으로 행동하지만, 복제의 산물에 불과한 K는 아무런 목적이 없이 데커드를 위해 희생하고 생을 마감한다. 그리고 데커드는 K덕분에 처음으로 자신의 딸과 만나게 된다.


| 시뮬라크르의 역설


들뢰즈의 시뮬라크르는 플라톤의 그것을 넘어 새로운 정체성을 창조한다. 복제물의 복제물의 희생이 바로 그것이다. 인간의 욕망보다, 넥서스의 욕망보다 더 숭고한 인간다움은 복제물 K의 희생을 통해서 우리에게 무엇이 인간의 가치인지 우리가 잃어가는 것이 무엇인지를 되돌아보게 하는 메시지를 남긴 채 막이 내린다.


| 영화란 무엇인가?


빠르고 자극적이며 시각적인 콘텐츠를 소모하는 요즘 시대에 이 영화가 (국내에서) 흥행하지 못한 이유는 너무나도 자명하다. 3시간의 런닝 타임 동안 관객의 호흡을 뺏어가는 화려한 전투씬 하나 조차 제대로 없으니 말이다. 하지만 K라는 캐릭터의 설정은 1982년의 블레이드 러너가 재조명을 받은 이유와 마찬가지로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인간보다 더 인간적인 복제인간에 대한 충격적인 이야기에서 복제의 산물이 더 인간적인 그리고 인간다움을 많이 잃어가는 우리 시대의 현실을 날카롭게 보여주는 어쩌면 우리 스스로를 고발하는 문학작품과도 같은 영화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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