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몽키즈(12Monkeys, 1995) - 영화 리뷰 에세이
| 만약 바이러스로 50억 명이 죽게 될 사실을 혼자만 알고 있다면?
인간애가 있는 대부분의 사람이라면 아마도 주변 사람들에게 위험성을 알리려 하지 않을까? 나와 내 가족이라도 살려야지 하는 마음도 있겠지만, 바이러스란 그 정도로 해결될 수 있는 것은 아닐 테니 말이다. 아무도 믿어주지 않는 진실을 말한다는 것은 올바른 명분이 있을 때야 비로소 그 가치를 가지는 것이지만, 진실이 아닌 것들이 홍수인 시대에 사는 우리는 누군가가 곧 인류가 멸망한다고 말한다면 고개부터 가로젓게 되지 않을까?
올바른 명분이라는 말이 나와서 말이지만, 누군가가 무엇인가를 주장할 때 그 목적이 무엇인지 따져본다면, 아마도 그것이 명분에 불과한지 아니면 진실인지 조금은 이해가 되지 않을까?
몇 해 전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메르스(MERS)나 사스(SAS) 그리고 현재의 돼지열병(ASF)에 이르기까지 바이러스의 공포는 우리에게도 이미 친숙하다. 그리고 그 공포를 가장 잘 미리 체험할 수 있는 영화 중의 하나가 이 12 몽키즈일까 한다. 여기에 등장하는 과학자들은 인류를 구하기 위한 올바른 명분과 목적이 있다는 데서, 이를 위해 희생하는 인물들의 행동 또한 공감이 간다.
| 이 영화에 대한 애착, 그리고 배우들.
이 영화를 몇 번쯤 봤을까? 20번? 30번? 잘 기억이 나지는 않는다. 지금은 기억도 까마득한 비디오테이프 시절부터 블루레이 그리고 넷플릭스(Netflix)에서 스트리밍으로 몇 번이나 다시 보기까지 플랫폼이 많이도 변했다. 비디오 가게에서 2000원에 어떤 영화를 볼까 고민하던 정감은 사라졌지만, 스트리밍 서비스를 통해 어느 때고 볼 수 있다는 장점만 받아들여 본다. 돌이킬 수는 없으니......
브루스 윌리스(Bruce Willis)를 모를 사람이야 별로 없겠지만 액션 대작인 다이하드(Die Hard)나 제5원소(The Fifth Element, 1997)보다는 개인적으로 그가 출연한 영화 중에 가장 좋은 작품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물론 식스 센스(The Six Sense, 1999)도 기억에 많이 남아 있다. 블루문 특급(Moon Lighting, 1985), 허드슨 호크(Hudson Hawk, 1991)의 유쾌한 코미디 캐릭터가 더 브루스 답다고 생각하지만 말이다.
이 영화에서 브래드 피트(Brad Pitt)는 특별하다. 가을의 전설(Legends of the fall,1994)의 트리스탄은 모든 여성들이 선망하는 남자의 전설이 되고 나서 이 영화에서 최고의 돌아이 연기를 선보였으니. 연기력마저 검증된 슈퍼히어로 미남이 되어가는 과정을 잘 볼 수 있는 영화가 아닐까 한다.
| 2035년 미래
시대는 2035년. 1997년에 일어난 바이러스 사건으로 인류의 1%만 지하에 생존해 있는 상황이다. 미래를 소재로 한다면, 무기 하나쯤이라도 현실 이상의 무엇이 있겠지만, 그걸 여기에서 기대한다면 실망이 앞선다. 바이러스로 인해 지하에 사는 인간에게 비닐로 된 방호복이 전부다. 주인공인 제임스 콜은 반 강제적으로 지상에 나가 바이러스를 연구할 증거를 채집하는 일을 수행한다.
스팀펑크스타일의 미래 배경과 그게 어울리는 기괴한 과학자들. 그래도 이들의 명분은 순수하다. 인류를 위해 바이러스를 연구하는 일. 무사히 임무 수행을 마치고 나온 제임스. 12 몽키즈에 대한 단서를 알아낸 제임스는 우수한 기억력과 의지력으로 조금 더 어려운 미션을 제안받는다.
| 1990년, 볼티모어
과학자들이 준 미션은 1996년 바이러스가 퍼지기 직전으로 돌아가 증거를 채집하는 일. 하지만 실수로 1990년으로 보내지고, 시간 여행의 후유증으로 불안정한 상태에서 사고를 치고 경찰에 연행된다. 하지만 그의 신원은 알 수 없는 상태. 정신과 의사인 캐서린 레일리 박사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경찰.
캐서린의 차분한 대화 시도에도 자기 할 말만 하던 제임스는 아니나 다를까 정신병원에 갇히게 된다. 그리고 정신병원에서 제프리 고인스를 만나게 된다.
그나마 정신병동에서 정상의 범주(?)에 속하는 제프리는 제임스에게 병동을 안내해준다. 주변을 관찰하던 제임스는 자신은 미치지 않았다며, 자신이 이곳에 온 이유를 설명하지만 아무도 믿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캐서린은 그를 어디에서 본 것만 같은 익숙함이 마음에 걸린다.
TV 속에서 동물 실험에 대한 생각을 얘기하자 제프리의 공감을 사게 된 제임스. 제프리의 도움으로 정신병동을 탈출하지만 곧 발각되어 독방에 갇히게 된다.
얼마 지나지 않아 깜쪽같이 사라지는 제임스. 사람들은 이를 기이하게 여기지만 단서는 아무것도 없다. 그는 미래로 다시 소환되고 과학자들에게 그들이 자신을 1996년이 아닌 1990년으로 잘못 보냈다고 말해준다.
과학자들은 증거 수집을 위해 제임스를 다시 1996년으로 보내고......
제임스에게는 실수하지 말라더니 제임스를 1910년대로 보낸다. 어느 소속인지 모르는 군인들에게(1차 세계대전) 총을 맞고 다시 사라지는 제임스.
| 1996년, 볼티모어
1996년의 캐서린은 카산드라 콤플렉스에 대한 강연을 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도중 차에서 납치된다. 그 납치범은 바로 제임스 콜.
다짜고짜 필라델피아에 단서가 있다고 그곳으로 가자는 제임스. 캐서린의 입장에서는 6년 만에 다시 나타난 제임스가 무슨 일을 저지를지 몰라 두렵기만 하다. 캐서린의 공포와는 달리 엉뚱하게 음악에 관심을 보이는 제임스. 모든 것이 폐허가 된 미래에서는 경험할 수 없는 감성이 제임스의 어릴 적 향수를 자극해 눈물을 흘리지만, 캐서린은 그런 그가 두려워 울먹인다. 패츠 도미노의 명곡 블루베리 힐(Blueberry Hill) 음악과 함께 묘한 대비를 이루는 이 씬은 개인적으로 무척 마음에 드는 장면이다.
모텔에서 매번 꾸던 꿈을 또다시 꾸던 제임스. 꿈속에 나온 여인이 캐서린 레일리 임을 알게 되지만, 그녀는 그의 말을 믿지 않는다.
이튿날 다시 필라델피아로 향하는 제임스와 캐서린. 제임스는 변종이 생기기 전의 바이러스를 구하기 위해서 이곳에 왔다고 설명한다. 뉴스에서는 실종된 아이가 대대적으로 보도되지만, 아이가 헛간에 숨어서 거짓말을 하는 것이라 말해주는 제임스. 캐서린은 이를 믿지 않는다.
납치를 당했다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가 위협적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진정해가는 캐서린. 호시탐탐 탈출할 기회를 노리지만, 정작 그가 12 몽키즈의 증거를 발견하자 탈출하지 않고 그를 따라간다. 하지만 명확하지 않은 표식들. 길거리 홈리스들이 제임스에게 이상한 말을 던지자 뭔가 심상치 않는 일이 일어나고 있음을 감지하는 캐서린. 페인트 자국을 따라가다가 폭도들에게 캐서린이 강간을 당할 위기에 처하자 제임스는 그를 죽이고 만다.
단서를 찾아 따라간 곳에서 제프리 고인스가 12몽키즈와 연관이 있음을 알게 된 제임스와 캐서린 곧바로 그를 만나기 위해 떠난다.
얼마 후 바이러스로 50억의 인류가 사라질 거라는 말을 믿지 않는 캐서린. 제임스의 총상을 보고 인근 주유소에서 의료 도구를 구하려고 하지만 그녀가 도망갈까 봐 고민하는 제임스. 어느 순간부터 신뢰가 생겼는지는 모르지만 점차 제임스를 위험하지 않다고 판단한 캐서린은 그를 치료해준다.
제임스는 삼엄한 경비를 뚫고 제프리 고인스를 만나지만, 바이러스의 출처를 묻다가 파티장은 아수라장이 된다. 이쯤 되면 바이러스로 노벨상을 받은 그의 아버지도 무엇인가 연관되어 있다는 단서를 준다.
도망쳐 나온 제임스는 트렁크에 가둔 캐서린을 꺼내 주고, 화가 난 캐서린은 제임스를 원망하며 둘은 심하게 다툰다. 제프리로부터 자신이 바이러스 아이디어 제공자라는 말을 들은 제임스는 혼란에 빠지고 자신이 50억의 사람들을 죽인 사람이라며 자책한다. 그가 자신만의 세계에서 헤어 나오지 못한다고 여기는 캐서린은 자신이 치료해주겠다며 그를 위로한다.
미래보다 1996년을 더 좋아하는 제임스 자연을 예찬하며 즐거워하던 제임스는 물장구 소리와 함께 다시 깜쪽같이 사라진다.
또다시 제임스가 사라지는 현장을 목격한 캐서린. 경찰에게 관련된 내용을 진술하고 안정을 취한다. 집에서 실종된 아이가 헛간에 숨어 있었다는 기사를 보는 캐서린은 제임스가 예언한 말이 사실임을 직감한다.
한편 다시 미래로 돌아간 제임스는 단서를 찾아냈다는 사실에 과학자들로부터 축하를 받고, 범죄에 대한 사면까지 받는다.
제임스를 믿기 시작하는 캐서린. 50억의 인구가 죽을 거라는 사실에 사람들에게 알리지만 자신이 제임스를 믿지 않았듯 다른 사람들도 캐서린을 정신 이상 취급한다.
다시 과거로 돌아온 제임스는 캐서린을 만난다. 그 사이 캐서린은 제임스에 대한 증거(뉴스의 소년을 제임스가 예견한 일, 그가 1910년대로 시간 여행을 한 일)를 확보하고 그가 말한 바이러스의 존재를 믿게 된다. 하지만 그녀의 믿음과 달리 정신이 불안정해진 제임스는 캐서린의 말대로 자신이 정신적으로 아프다고 말한다.
뉴스에 나온 양치기 소년에 대한 이야기는 바로 제임스 자신이다. 바이러스로 50억의 인구가 죽는다는 사실을 제임스 만이 알고 있기 때문에...... 하지만 그를 이해하고 연민을 느끼는 캐서린. 바다를 본 적이 없다는 그의 말에 바다를 보여주려고 한다.
수배 중인 두 사람은 변장을 하고 공항으로 향한다. 공항을 가던 택시에서 12몽키즈의 실체를 알게 된 두 사람. 12몽키즈는 동물 학대를 해방하기 위한 환경단체였음을 알게 되고 안심한다.
아무도 자신들을 믿지 않는 세상에서 둘의 사랑은 운명처럼 예견된 것인 듯 사랑을 확인하는 두 사람.
캐서린의 책 사인회에서 종말론의 성향을 보였던 사람. 공항에서 캐서린은 그가 고인스 박사의 조수라는 단서를 알아내고, 바이러스의 유포자임을 예감한다. 이를 제임스에게 알리고 그를 쫓아가는 두 사람.
50억의 인류의 생명을 앗아간 사람을 저지하려는 두 사람과 달리 진실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제임스와 캐서린은 범죄자에 불과하다. 죽음을 무릅쓴 두 사람에게 비극의 결말이 다가온다. 그 사이 무사히 도망치는 바이러스 유포자. 제임스의 죽음을 안타까워하며 눈물을 흘리던 캐서린은 그의 말이 생각난 듯 주변을 둘러본다. 그리고 제임스와 닮은 어린아이를 발견하는 캐서린. 그를 향해 미소를 짓는다. 제임스가 말한 잊히지 않는 어떤 여인의 모습은 바로 캐서린의 그 모습이었던 듯 슬픈 그녀의 표정이 어린 제임스의 눈망울에 담기는 안타까운 잊히지 않는 장면이다.
| 남은 미래는?
제임스가 영화 속에서 일어날 일은 바꿀 수 없다고 말한다. 다만 바이러스의 원형을 미래의 과학자에게 제공해서 치료제를 개발하는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그런 제임스의 운명의 굴레는 가혹하다. 6살 공항에서 봤던 비극의 모습이 자기 자신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잊히지 않는 꿈속의 그녀는 바로 그가 사랑하는 여인이었음을 말이다. 그리고 어떤 노력을 해도 그것은 바꿀 수 없다. 마치 우리가 아무리 안타까워해도 주변의 비극은 일어나는 우리네 세상처럼 말이다.
| 과연 이 영화는 그저 상상의 산물일 뿐일까?
얼마 전 많은 많은 피해자를 남긴 옥시 사태, 그리고 세월호. 우리 삶 주변에도 그런 비극은 존재한다. 다만 당사자가 아니어서 그 아픔과 고통을 그들만큼 느끼지 못할 뿐. 현대에 살아가는 우리에게 왜 바쁘고 열심히 살아야 한다는 명분을 주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우리는 남의 일에 공감하고 진실을 같이 추구할 만큼 여유로운 세상에 살고 있지 않은 것은 사실인 것 같다. 그래서도 내 옆에서 일어나는 비극에 촛불 하나를 들 정도만큼의 도움 밖에 주지 못하는 것도 안타깝다. 그런 의미에서 이 영화가 주는 메시지는 영화적, 문학적 상상력 이전에 더 가슴에 와 닿는다.